건민이는 울면서 말했다. 속상하다는 뜻이었다. 아이들을 만난 지 근 한 달쯤 지난 지금 건민이는 이런 비슷한 말과 행동을 자주 반복했다. 전담시간에, 다모임을 마치고 돌아올 때, 방과 후에서. 작년에 전학을 온 건민이는 사실 새 학기를 처음 우리 학교에 보내는 것이다. 적응이 어려워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속상한 이유를 물어보면 여럿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응당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지나가던 친구가 손을 흔들며 가다가 자신의 옆구리에 맞았다는 등 상대가 고의로 준 피해는 아니었지만 건민이는 꽤 과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오늘(4.4.(목))은 방과 후 난타를 하던 중 한 여자아이가 교실로 달려왔다. 건민이가 다 때려 부수고 싶다고 울고 있다고 나를 부르는 터였다. 방과후실에 가보니 방과후 강사님이 사정을 얘기했고 여러 아이를 진정시키는 나의 모습을 본 우리 반 아이들은 담임선생님을 불러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건민이를 데리고 교실로 왔다.
“다 때려 부수고 싶다고 말했니?”
“화 나는 기억이 떠올라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근데 때리진 않았어요.”
나의 뇌 회로의 첫 반응은 이렇게 자주 화가 자주 쌓이는 건민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답답하고 짜증도 났다. 근데 갑자기 찰나의 기억이 났다. 나도 예전에 억울하거나 화가 났지만 적절하게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집에 와서 소리를 친다거나 운전을 하다가 불쾌한 기억이 떠올라 어떤 사람과 싸우는 상상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떠올리려 한 건 아닌데 갑자기 수면 위로 올라오는 불편한 기억들. 그런 것이 나에게도 있었다.
어렸을 적 나는 속상한 일이 있어도 아무에게도 표현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내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았고 선생님은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편안한 존재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꾸역꾸역 내 속에서 억압해 버렸다. 꽁꽁 숨기고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갑자기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그때 속상했다고 말이다. 건민이의 행동은 그의 마음속 작은 아이가 나를 좀 위로해 달라는 외침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그래서 나는 건민이에게, 그리고 어렸을 적 나에게 인간적인 연민을 느꼈다.
나는 내 이야기를 해주었다.
“너 많이 힘들었겠구나. 선생님도 그런 경험이 있어.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 화가 났던 기억이 불쑥 떠오르더라. 집에 가만히 앉아있을 때도, 운전을 할 때도 말이야. 그럴 땐 선생님도 소리를 치거나 운전을 하며 그 사람과 싸우는 상상도 해. 그럴 땐 얼마나 힘든지 몰라. 그런데 말이야. 그 기억이 수업시간 때 떠오른 거야. 갑자기 그 기억이 떠오른다고 선생님이 너희를 가르치다가 갑자기 모두 다 때려 부수고 싶다고 얘기를 하면 그걸 보는 건민이 기분은 어떨까?”
“무서울 것 같아요.”
“그럼 아까 너를 보는 친구들 기분은 어땠을까?”
“... 무서웠을 것 같아요.”
건민이는 나의 말을 들으며 조근조근 대답했다. 그리고 이해하고 있었다. 화가 나는 건 잘못이 아니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 상황과 상관없이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내 말을 찰떡같이 이해한 건민이는 울음을 그치고 난타교실로 갔다. 마음의 상처를 털어버리고 다시 뚜벅뚜벅 자신의 인생 속으로 걸어가는 모습. 늠름해 보이는 뒷모습을 꽤 오래 교실 문 앞에 서서 바라보았다. 나의 제자이며 또 나이기도 한 그를 조용히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