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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운세 01

매매 성사에 손해가 따른다

by 인상파

사고 팔 일이 무엇이 있을까. 팔 일은 없고 살 일은 있을 수 있으니 아무쪼록 물건 살 일을 만들지 말아야겠다. 오늘 하루정도는 마트에 가는 것까지 삼가해야겠다. 일요일. 어머니가 다른 형제들 집에 가시지 않고 우리 집에 계셨다. 어머니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센터로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셔서 많이 피곤하실 게다. 깨우지 않았더니 늦도록 주무셨다. 식사가 늦어 시장하셨는지 식탁으로 오셔서는 잘 드셨다. 어머니는 드실 때에도 눈을 감고 드시는데 다 드시고는 내리 눈을 감고 계셨다. 그렇게 식탁에 앉아 있기라도 하면 좋은데 어머니 머리는 자꾸 한쪽으로 기울어져 잠을 이겨내지 못한다. 어머니가 들어가 눕겠다고 어디로 가면 되냐고 물으신다. 야단이다. 드시고 곧바로 누우면 소화가 안 돼 자꾸 꺽꺽 하실 텐데. 그리고 하루는 또 얼마나 길 것인가. 이상하게 어머니가 집에 계시는 날이면 나의 시간도 어머니의 잠처럼 느릿느릿 잘 가지 않는다.

나무 블록 상자를 가져왔다. 어머니가 지금보다 조금 더 정정하실 때는 나무 블록을 가지고 탑도 쌓고 집도 짓고 도미노 놀이도 하곤 했다. 하지만 인지 능력이 떨어지고 손아귀의 힘이 빠지자 나무 블록에 대한 흥미를 잃으셨다. 오늘도 나무 블록을 보시며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으신다. 나무 블록을 쌓아보자고 했더니 그까짓 것 해서 뭐하냐며 다 귀찮다는 표정으로 떴던 눈을 다시 감아버리신다. 그래도 안 한다고 말씀은 하셔도 딸이 살살 달래면 못 이긴 척 딸의 말을 들어주신다. 어머니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치매다. 치매 걸린 줄 모르고 있는 어머니에게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면 머리와 손을 써야한다며 부추겨 나무 블록을 쌓게 했다. 어머니가 쌓은 나무 블록은 높이 올라갈수록 균형이 맞지 않아 위태로워 보였다. 나와 어머니가 식탁 위에서 블록을 가지고 놀자 신이 난 것은 맹이 녀석이다. 맹이는 꼬리를 흔들며 쌓아놓은 블록 사이를 이리 저리 휘젓고 다니다가 탑을 와르르 무너뜨리고 말았다. 나무 블록이 거실 바닥으로 쏟아지자 맹이는 놀라 도망쳐버리고 어머니는 그제야 블록에서 눈을 떼셨다. 어려운 숙제를 끝마친 듯 어머니가 이제 들어가 누워야겠다며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어머니가 한숨 늘어지게 주무시고 나니 다시 늦은 점심시간이 되었다. 잠자고 밥 먹고 잠자고 밥먹고가 되풀이 될 것 같아 겨울 날씨 같지 않게 따뜻하여 이번에는 아파트 놀이터로 바깥바람을 쐬러 갔다. 추위를 많이 타서 두꺼운 겉옷을 입혀드렸는데도 동 출입구를 나서자마자 춥다고 엄살을 부리며 어서 들어가자고 재촉을 하셨다. 지나가는 아이들이며 화단에 물든 나뭇잎이며 풀잎을 구경하면 좋을 터인데 주변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으시다. 아파트 화단에 억새가 하얗게 피어 그걸 꺾어 드렸더니 허연 것 날린다며 치우라고 오히려 야단이셨다. 어머니의 무관심이 속상해 일부러 억새 이삭을 손으로 비벼 떨어뜨리며 어머니의 앞에 휘날렸다.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어머니에게 눈 좀 떠보라고 하며 그 옆에 얼굴을 들이밀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언젠가 오늘 찍은 이 사진이 어머니와 함께 한 날을 기억하게 하리라.(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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