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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운세 02

금전 운이 트이기 시작한다

by 인상파

며칠 전 셋째 언니가 어머니의 만기 적금 통장을 갖다 주며 해지를 부탁했다. 5년 전부터 다달이 10만원씩 부어 원금이 600만원이 되는 통장이었다. 5년 전이면 어머니의 일상이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던 때다. 적금을 들 당시 어머니는 만기가 되면 찾게 될 돈의 액수를 가늠해 보시고는 큰돈 만져볼 재미에 조금은 설레기도 하셨을 터. 하지만 적금을 납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치매 진단을 받으셨고 지금은 악화돼 돈에 대한 개념조차 없으시다.

그런 어머니를 모시고 은행으로 돈을 찾으러 갔다. 찾으러 갔다고 표현은 했지만 실은 찾는 것이 아니라 통장에서 통장으로 옮기러 갔다. 은행에 온 이유를 몇 번 설명해 드렸는데도 어머니는 거기가 어디며 왜 왔는지를 자꾸 물으셨다. 비밀번호는 알 수 없으니 재발급을 받았고 전자 문서 서명란에 이름을 쓰시는데 손아귀 힘이 약해 잡은 펜이 자꾸 미끄러졌다. 보다 못한 내가 대신 서명을 하려고 했더니 직원이 어머니가 직접 써야한다며 말렸다. 쓰지 못하시면 보고 그리기라도 해야한다고. 이름을 못 써서가 아니라 전자 문서가 문제라고 했더니 직원은 종이 문서를 준비해줬다. 집에서 이름 석 자 정도는 연습을 하고 왔는데 남들 앞이어서 그런지 어머니는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셨다. 글자 획이 빠지기도 하고 삐뚤빼뚤한 글씨는 추상화처럼 보였다.

찾을 금액은 원금에 붙은 이자가 100만원이 넘어 700만원이 더 됐다. 하지만 나나 어머니는 돈 한 푼 손에 만져보지 못했다. 해지한 적금을 어머니 입출금 통장으로 그대로 이체시켰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젊었을 때부터 돈이 생기면 저축을 하는 분이어서 늙고 병들어도 자식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아도 되는 형편이다. 당신 앞길을 스스로 준비하셨던 것이다. 오늘 해지한 돈도 어머니의 노후를 위해 쓰일 것이다. 어쨌든 돈을 찾으러 와서 돈을 만져보지 못하니 허망하다고 할까. 이렇게 큰 돈이 생긴 날에 어머니가 기분 좋게 한 턱 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통장에서만 숫자에서 숫자로 오가는 돈의 흐름이 조금은 기묘하다고 할까. 은행 업무를 마치고 어머니를 센터까지 모셔다 드리면서 어머니와 함께 은행 구경은 했으니 금전 운 근처에는 갔구나 싶었다.(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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