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너도
언젠가 너도, 피터 레이놀즈 그림, 앨리슨 맥기 글, 김경연 옮김, 문학동네
언: 언제나 삶은 계속 되어왔으니
젠: 젠가처럼 와르르 무너져도
가: 가장 단단한 흙으로 돌아가는 날
너: 너의 적요한 울림은
도: 도리어 무에서 태어나는 생명을 보리라
아이들에게 읽어주기보다는 엄마인 저를 위해 손에 들 때가 많은 그림책입니다. 탄생과 성장, 죽음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보이는 그림책 앞에서 딸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경험했던 많은 일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림책 엄마의 심정으로 때로는 애틋하게, 때로는 뿌듯하게, 때로는 아쉽게 보냈던 날들 앞에서 성장하여 똑같이 엄마의 길을 걸어갈 딸아이를 그리다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그 상황에 직면해서는 눈물이 꽃처럼 터지곤 했습니다. 언제까지 계속될 것 같은 인생이지만 언젠가는 모두 이 세상을 하직하는 날이 있음을, 어여쁘고 젊고 창창한 날들을 보내고 나면 누구나 그 길을 가게 된다는 것을, 잊고 있지만 기억해야겠지요. 이별의 슬픔과 상실의 고통, 결핍의 서러움이 물안개처럼 피어나는 날이면 이 책을 들여다보면서 마음이 고요해지기를 기다리곤 합니다. 딸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집니다.
딸에게.
어느 덧 26살의 아가씨가 되었구나. 뱃속에서 꼼지락거리는 네가, 진통 끝에 낳은 3킬로그램의 조그마하고 보드라운 네가, 밤마다 예닐곱 권의 그림책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졸랐던 네가, 처음 유치원 가는 날 아빠 손을 잡고 나풀거리며 뛰어가던 네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여서는 또래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해 자주 울고 들어오던 네가, 급식시간이면 못 먹는 반찬을 요구르트 병에 꾸역꾸역 담아 몰래 밀반출했던 네가, 중학교 교복을 입고 환하게 웃었던 네가, 해가 갈수록 소금에 절인 배춧잎 모양으로 한없이 절망의 수렁으로 빠져들던 네가, 이제는 조약돌처럼 조금은 단단해져 스스로를 사랑하게 된 것을 보고 조금은 안도한다.
엄마의 딸로 태어나줘서 고맙다. 때로 너의 슬픔과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고 더욱 상처를 깊게 파이게 해서 미안하다. 되돌릴 수 없는 건 다 잊고 좋은 일만 기억했으면 좋겠다만 여전히 힘겨운 날들을 보내고 있는 너로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겠지. 하지만 딸아, 그래도 마음을 조그만 넉넉하게 내서 세상을 재미지게 살기를 바란다. 세상을 너 안으로 끌어들이지말고 너를 세상 밖에 두기를 바란다. 살아왔던 날들보다 빠르게 세월이 몇 번씩 요동을 치고 지나가면 엄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 그때가 되면 딸아, 널 사랑했던 엄마가 있었다는 사실을 조금은 기억해 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