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앗이로 포장된 고지서. 그 불편한 이름 경조사
무조건 이익 남기는 경조사 대처법
모든 월급쟁이는 세금과 퇴사를 피해 가지 못한다.
그리고 이에 필적하는 돈 봉투가 또 하나 있으니, 바로 경조사다. 마음을 표하는 수단에서 비롯된 이 경조사는 풍요로운 자본주의 사회를 맞아 어느 순간 수금의 형태로 변질된 지 오래다.
결혼은 회사에 있을 때 하는 거다. 자녀 결혼은 반드시 현직에 있을 때 시키고 보는 거다. 결혼했다고 바로 퇴사하면 바보다. 출산, 돌잔치까지는 버텨서 수금 한번 쭈욱 땡기고 나가줘야 이득인 거다. 그렇다. 뭐만 하면 다 돈이다. 물론 요새는 자녀까지 들이밀고 돈 내놓으라 하면 욕먹는다.
경조사는 어디서 얼마나 챙겨야 하는 것일까? 줄 때는 얼마를 줘야 하는 것일까?
세금이야 액수를 확실히 정해주기 때문에 고민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말없이 월급에서 자동 로그아웃 시켜버리는 특성상, 더더욱 고민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백지 수표로 위임되는 경조사 고지서는 늘 고민이며 문제다. 자칫 수많은 뒷담과 원성을 야기하기도 한다.
결혼식 축의금
경조사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결혼식이다. 매년 봄가을. 받는 고지서가 많아져 부담스럽다. 그러나 실은 주는 쪽이 더 부담스럽다. 이들에게는 청첩장이란 고지서를 과연 어디까지 돌려야 맞는 것인가가 가장 큰 이슈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두 가지 고민을 하게 된다. 꼭 가야 하는가와 얼마를 줘야 하는가이다.
우선 안 가도 되는 경우다. 퇴사를 앞두고 있다면 무조건 면죄부다. 나가서 일부러 연락하고 안 본다는 전제 하에, 굳이 갈 필요 없고 돈 줄 필요도 없다.
거리가 너무 멀어 버스를 대절하는 경우는 안 갈 구실이 생긴다. 이때는 돈만 부치는 거다. 계좌 말고 인편으로 보내면 약간의 성의 점수가 올라간다.
그다음 생각할 건 바로 나의 상황이다. 내가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앞으로 할 예정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이미 기혼자라면 최소한만 하는 거다. 갈 필요 없다. 이는 주말 수당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회사 생활 계속할 거라면 돈은 보내야 한다.
이때 액수를 최대한 낮추는 게 좋다. 같은 팀은 5만 원, 다른 팀은 3만 원 때리면 된다. 애매하다는 생각이 드는 상대라면 답은 쌩이다.
눈치 보인다고? 말 나올까 봐 그렇다고? 괜찮다. 기혼자는 받아먹을 일도 없다. 그리고 결혼식 축의금은 많이 줘도 기억 못 한다. 즉, 돌아오는 게 없다 이 소리다.
만약 안 친하고 몇 번 안 본 사람이 청첩장 고지서를 꽂았다면? 안 가도 그만이지만 괘씸하다면 5만 원 내라. 가족들 한 3~4명 끌고 가서 식권 4장 받은 후, 결혼식 전에 얼굴 도장 찍고 예식 시간에 바로 뷔페로 향해라. 그리고 먹튀를 시전 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이후 사람 많이 동원해 줬다고 생색은 옴팡지게 내는 거다. 그게 더 이득이다.
내 결혼식을 신경 쓰는 건 나 밖에 없다. 남들 아무도 신경 안 쓴다. 자리만 지킬 뿐이지 관심 없다. 남의 결혼식은 축하의 느낌보다는 해치우는 느낌이다. 어파치 보여주려 하는 것. 양가 중 누가 더 빠방하냐 과시하고 기세등등 대결하는 것. 이거잖아?
친한 사람이라면 축의금 액수로 생색내는 게 아니다. 예식 일을 도와주는 게 더 확실하다. 사회, 축의금 받아주기, 짐 보관 맞아주기 같은 소소한 도움이 더 낫다.
단, 축가는 추천하지 않는다. 도움이 되느냐의 여부를 떠나 계속 회자된다는 점에서 주의가 요구된다. 특히 음향도 별로인데 억지로 끌어올린 클라이막스의 삑사리는 평생 박제되어 사내에 뿌려진다. 목청은 그런 데서 뽑아내는 게 아니다. 광대가 되지 마라.
축의금을 주던 받던, 일단 회사 사람들에게 많은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 두 가지만 생각하면 된다. 기본만 한다. 그리고 뿌린 돈은 채권, 받은 돈은 빚이다.
팀이 크다면 고지서를 많이 뿌릴 수 있고, 작으면 적어진다. 그냥 기대 말고 많이 뿌리지 않기를 추천한다. 만약 결혼으로 크게 한몫 땡기고 싶다면 많이 뿌리 되, 반드시 청구서는 되돌아온다는 생각을 해라.
청구서를 많이 뿌리면 실수가 많아진다. 욕을 오지게 먹고 명줄이 줄어든다. 사람이 많이 오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사람 많은 곳은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이후에 반드시 말이 나온다. 기껏 갔더니 본 척도 안 하더라. 안 챙겨주더라. 그래서 결혼식은 치르고도 많은 가십을 낳기 마련이다.
특히 무엇보다도 식장 뷔페가 별로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욕을 먹게 되어 있다. 이건 디폴트 번들값이다. 어딜 저따위 식장을 잡는 거냐? 그렇다. 결혼식은 축하해 주러 가는 게 아니다. 돈 낸 만큼 한 끼 잘 먹으러 가는 것이다. 이게 진실이다. 진리다.
가족 조의금
결혼 축의금은 축하 문화보다 수금 문화다.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세를 징수한다. 그러나 다 돌고 도는 빚잔치다 보니 이익이 확실하지 않다. 따라서 적게 내고 적게 받는 게 낫다.
조의금은 성격이 좀 다르다. 결혼식은 내가 직접 고지서를 돌리지만, 조의를 맞은 자들은 몇몇에게만 이야기할 뿐, 고지서를 직접 돌리지 않는다. 그래서 조의금은 그 횟수가 적고, 수금보다는 위로의 성격이 강하다.
조의를 맞이하는 오피서들은 보통 어느 정도 고령대에 접어든다. 무슨 소리냐? 높은 위치인 만큼 얻을 것도 많다는 소리 되겠다. 조의를 가지고 그렇게 생각해서야 되겠냐고? 위선자들. 다 말만 그렇게 하지. 보통 임원들의 조의 때는 눈에 들기 위해 전부 총 출동한다. 이게 위로하고 싶어서겠냐? 다 뻔한 이유지.
우리는 여기서 전략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많은 이들이 총 출동하는 경우 같이 갈 필요 없다. 눈에 안 띈다. 기억 못 한다. 오히려 저들과 시차를 두고 따로 가는 게 훨씬 낫다. 때로는 권력자들이 아닌 실무자나 이웃부서 사람들의 조의를 눈여겨봐야 한다. 이후 어떤 현실적인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일단 조의금 액수는 무조건 결혼식 축의금의 갑절이다. 가서 말동무라도 해주던가, 일이라도 도와주는 성의가 필요하다. 어차피 해줄 일도 없다. 말이라도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할 일을 찾아 두리번거리면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럼 그때 마지못해 물러나면 된다.
이 임팩트는 생각보다 상당하다. 앞으로의 오피스 게임에서 우군을 가지고 가는 효과를 지닌다. 그리고 만약 내가 조의 상황을 맞이하면 저들은 연락이 닿는 한 100 퍼 다 오게 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임팩트의 차이다. 결혼식 같은 대중적 이벤트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사람은 보통 자기 앞은 신경 쓰지만 뒤는 안 쳐다보는 경향이 강한데, 바로 여기가 신경 쓸 지점이다.
기본적으로 경조사는 회사에서 나간 사람들에게는 연락하는 게 아니다. 이미 연결고리가 끊긴 것이니까.
가끔 애매한 지점도 생긴다. 새로 들어온 신입은? 청구서에 신입 할인이나 면책특권은 없다. 그냥 빼먹어도 된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경력직이라면? 알게 뭔가? 그냥 수금하면 된다.
팀에 비혼자가 있다면? 알게 뭐임? 그냥 돌려서 수금하면 된다. 비혼이건 나는 솔로건 다 지 사정이다. 아무도 비혼 하라고 등 떠민 사람 없다.
단, 가까운 지인들이나 가족 친구들 경조사는 이 따위로 하지 말기 바란다. 오피스 게임에서의 경조사는 하나의 퀘스트 같은 것이다. 회사 다니는 목적이 이윤 추구면 거기 걸맞게 하면 된다. 선의로 하는 축하나 위로가 이 게임에서 어디 있는가? 모두 그런 척할 뿐이지. 그러니 뭐가 맞지? 하는 이상하고 정의로운 가치관에 휘둘릴 필요 없다. 계산기 두들겨 보고 철저히 실리를 쫓아가면 된다.
너무 계산적이지 않냐구?
뭐? 그러면 안 된다구?
세상 그렇게 살지 말라구?
위선도 적당히 부려라.
자본주의 게임에 그런 게 어디 있어?
사회적 경조사에 선의가 어디 있냐구! 이 위선자들아!!
P.S. 회사 생활 애매하다 싶을 때 기준이 되어 주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