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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맹 May 16. 2024

너네 회사도 팀장님이 맨날 그거 찾아?

저번에 말한 거! 그거 있잖아! 아 그거어!!


 긴장하지 마! 그거에 맞서는 슬기로운 방법


누군가 부를 때 무조건 긴장하는 순간이 있다면?

동네에서 어떤 아이가 다가오면 긴장하지 않는다. 위협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내에서 누가 번호를 따러오면 긴장하지 않는다. 뭐 할지 예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누군가 불렀을 때 사람이 긴장하는 이유는 딱 두 가지다. 위협을 느끼거나, 예상치 못할 때다.


익숙함을 떠나 누군가 부를 때 무조건 긴장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상사가 부를 때이다. 친구가 부르는데 긴장할 리는 없으니까.. 왜일까? 위협과 예상치 못함을 동시에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쨍그랑 깨지는 유리접시 김대리님. 뭘까 또..


"김대리! 저번에 말한 거 그거 어떻게 됐어?"

"아! 네! 지난번 신제품 런칭 기획안 수정했는데 아직 구매팀에서 컨펌 안 나서 대기 중이었습니다."

"뭐?? 그거 말고.. 아 맞다. 말 나온 김에. 그거 생산 일정 어떻게 맞출라고 아직도 대기 중이야!?"

"죄송합니다. 빨리 해달라고 요청 넣겠습니다."

"그리고.. 뭐였더라.. 있잖아! 저번에 지시한 거!"

"네? 아.. 이번 회식 장소요?"

"야!! 내가 지금 회식장소 가지고 이러게 생겼어!?"


영문도 모른 채 연달아 콤보 공격에 쥐어 터지는 김대리.. 위기를 탈출하고자 뇌즙을 마구 쥐어짠다.

"그럼.. 혹시 품질 보고서 건 말씀이신가요?"

"어 어! 그래. 그거 어떻게 됐어?"

"이미 다 작성해 두었습니다."

"아 진짜! 다 했으면! 바로바로 가져와야 될 꺼 아냐! 오늘 상무님 보고해야 되니까 빨리 줘!"

"아.. 네. 죄송합니다. 바로 드리겠습니다."


일은 다 해 놓고도 결국 3 콤보를 달성한다. 한 대도 안 맞을 만한 게 어떻게 연속기로 발전하는 걸까? 신기하다. 무슨 일 터지면 관망부터 하고 보는 몹쓸 초맹. 역시나 이 때다. 위협이 스치는 예상 못한 팀장님의 부름. 꼭 때 맞춰 들린다. 절묘하다.


아씨.. 누구 한 명 깨지면 그 다음은 꼭 내 차례더라..


"어이 초맹! 어이!"

어이? 어이가 무슨 호냐? 도산 안창호 선생, 율곡 이이 선생, 어이 초맹 선생 뭐 이런 거냐? 어이없어.


"저번에 그거 있지? 왜 그거 있잖아. 잘 되고 있나?"

"흐음.. 저번에 말한 건 한 대여섯 개 되는 거 같은데,  그거가 그중에 어떤 걸까요? 헤헤"

"아 그거 있잖아! 저번에 우리 팀에서 하기로 한 거!

"이잉? 여기서 하는 일은 다 우리 팀에서 하기로 한 거죠. 남의 팀 거는 제가 잘 몰라서.."

"아.. 그 뭐였드라.. 갑자기 생각이 안 나네. 그 있잖아! 그거! 얘기한 지 오래 안 된 건데.."

"저도 문의받는 게 많아서 가물가물한데영. 생각나면 말씀해 주세요! 저도 궁금하네요. 히히"


지난주 임원이 프로젝트 상황을 물어봤다. 그는 정리해서 보고 드리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일단 정리하라고 내게 떤져 놓았다. 자료는 메일로 이미 아침에 보냈다. 그러나 일부러 모른 척한다.


"아! 생각났다. 저번에 프로젝트 건! 그거!"

"아! 그게 그거였군영. 어제 정리 다 끝났어요."

"어이! 다 했으면 말이야! 바로바로.."

"메일요 메일! 오전 8시 27분 46초!!"

"어?? 어.. 어.. 메일.. 그래. 여기.."

팀장님은 당황하며 황급히 메일 사서함을 들여다본다. 그도 예상 못했으리라. 이렇게 나올 줄은 말이다.


요기요 요기! 메일로 보내 놨다니깐! 자! 당황하지 마시고!


이 두 가지 사례의 차이가 보이는지?

김대리는 기억을 더듬는 팀장을 돕고자, 하나씩 자기가 하는 일을 말한다. 근데 팀장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 원하는 게 안 나오자 일단 팬다. 그러자 김대리. 다시 다른 일을 말한다. 이때부터는 아마 돕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위기탈출용이었을 것이다.


근데 어쩌나? 이것도 원하는 게 아니다. 안 나오면 또 팬다. 결국 원하는 게 나왔는데도 한번 더 팬다. 왜 바로 안 가져오냐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마도 뜻은 왜 처음부터 안 나왔냐는 소리일 것이다.


나름 호도 있는 '어이 초맹' 선생. 일단 모르쇠로 일관한다. 괜히 다른 일 꺼냈다 책 잡힐 필요 없다. 지시한 사람도 기억 못 하고 어버버 하는데.. 독심술사냐? 어찌 알겠는가? 그런 건 알아도 몰라야 된다.


자신도 기억을 더듬어 메모리 탐색에 당한 두통이 괘심 했을까? 아까와 같은 '바로바로' 공격이 들어온다. 근데 어쩌냐? 원하는 건 이미 줬다. 먼저 보내둔 걸 확인했어야지? 그치? 맞지?


팀장들은 여러 사람이 하는 일을 다 알지 못한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일들을 파악한다. 그들의 뇌는 이를 감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쉽게 잊는다. 아마도 임원이 지나가다 생각나서, 그거 어떻게 되어가냐 똑같이 물었을 것이다. 팀장은 보고 준비 중이라고 애드립부터 쳤을 거고. 그다음 후다닥 팀원들에게 쥐어짜 낸 그림이다. 거기 끼인 사람들은 그 갑작스러움 때매 불에 데인 강아지마냥 당황하는 것이다.


의중을 모르면 계속 깨지게 되어 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고 있는 이때! 김대리. 억울했나 보다. 아까의 자책골을 만회하려 정성스러운 컬러 프린트 알록달록하게 입혀 팀장님 자리에 간다.


"말씀하신 보고서 가져왔습니다. 내용이 좀 많은데, 잠시 회의실로 가시면 제가 자세하게 설명을.."

"아 이걸 페이퍼로 다 언제 보라는 거야! 모 이렇게 많아? 시간 없어! 핵심 요약만 해서 메일로 보내!"

이것으로 그는 또 한 번의 자책골을 넣는다. 결국 하루 4 콤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다.


상대의 의도와 자료의 용도를 모른다면, 섣부른 행동은 언제든 자책골이 된다. 모르는 상태에서 꺼내드는 카드는 늘 자충수다. 그것이 과잉충성이라도 말이다. 보고서 필요하면 출력해 달라, 요약해 달라, 설명해 달라 직접 하겠지.. 뭐 하러 그렇게까지..


팀장의 현재 상태는 빨리빨리. 지금 관심사는 그냥 임원 보고 딱 하나. 그 외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거기서 과잉충성해 봐야 그 충심마저도 '저번에 그거 있잖아!'가 되는 거다. 상대가 원하는 게 드러나기 전까지는 절대 먼저 꺼낼 필요가 없다.


보고 있으면 늘 짠한 분.. 위로해 주자.


책상 너머 축 처진 김대리님의 어깨가 보인다. 조용히 위로의 말을 건네려던 찰나 김대리님의 메신저 프로필 대화명이 보였다. 얼레?

'팀장님. 오늘 생신 축하드려요~ ^^;'


모야 이거? 저런 설정은 참 말도 없이 잘하네. 옆에 저 이모티 땀방울은 또 뭔데? 아.. 또 마음이 짠해져 버렸다. 나름 이렇게 짠하게 회사생활하고 있던 것을.. 아마도 4 콤보로 털릴 줄은 몰랐던 것 같다.


근데 김대리님아.. 그 대화명 얼른 바꿔라! 이따 5 콤보 달성할라. 팀장님 생일 오늘 아니다. 음력이다.


위협과 예상을 벗어나는 부름을 받더라도 긴장하지 말자. 그거 있잖아에 긴장 타는 순간 패를 먼저 까다 자책골을 넣는다.


오피스 게임은 다 같이 열심히 사냥한다고 해서, 똑같이 레벨 오르고 똑같이 보상받는 게임이 아니다.


"무슨 얘기인지 이제 느낌 알겠지?"

"뭐? 모르겠다구?"


"아! 그거 있잖아!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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