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그 찰나의 임팩트!
오피스 게임은 입성하면 제로 베이스다!
"야! 업체 말만 믿으면 어떡해! 확인을 했어야지!"
"죄송합니다. 업체 일에 너무 이래라 저래라 하는게 좀 그래서.."
"성인군자냐? 공자야? 노자야? 무슨 도덕경 보고 왔어? 지금 이거 사고 터졌다구!"
"아.. 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이런 일이 없도록.."
"아! 돌아버리겠네.. 쟤 이거 누가 뽑았어!! 대체 회사 어떻게 들어온 거야?"
오늘도 요란하다. 그럼에도 매번 묵묵히 일하는 김대리님. 접시 많이 들고 댕겨야겠다. 그래도 그렇지. 말이 넘 심한거 아닌가. 누가 뽑았냐니.. 그 위대하신 회사님이 직접 뽑았겠지. 나름 현란한 스펙 앞세워 죄다 압살하고 원픽으로 들어온 분이라 들었다.
아.. 무슨 일부터 생기면 충분히 관망하고, 그 다음 생각하는 몹쓸 초맹. 그 때의 묻어두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걸 이제는 추억이라고 해야 할까..
면접장. 긴장되었다. 심박 수가 올라감을 느꼈다.
'아씨.. 떨어지면 어쩌지.. 공부 좀 열심히 할 껄..'
'면접 스터디라도 해볼 껄 그랬나?'
'어차피 떨어질꺼.. 쫄리는데 그냥 집에 갈까?'
대기실에서 본 지원자들. 누군지 모르는 그들. 모두 나보다는 나아 보였다. 그들 가운데 가장 초라한 초맹. 다들 뭐하는거지? 종이 쪼가리에 뭘 덕지덕지 써서 열심히들 읽고 있다. 닳겠다 아주. 저렇게까지 해야 되나? 아무 준비하지 않았다. 그래. 내츄럴리즘. 미니멀리즘. 닥치면 뭐라도 답하겠지. 몰라 나두!
면접 보고 나오는 사람들인가? 누군가는 좌절의 한숨을 쉬고, 누군가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렇구나. 한숨에 내포된 다른 의미마저도 보이고 있을 찰나!! 호명한다. 내 차례다. 여러명 같이 들어간다. 이런.. 뭐야.. 혼자 들어가는거 아니었어?
자기소개 타임이다. 어떻게든 한 마디라도 더 해 보려고 필사적이다. 유학생활 한 얘기. 한국말도 일부러 굴리는거 봐.. 은연 중에 지 쏘울대라서 쏘울충만하다고 개드립으로 스펙 내비추는 재수탱이도 있고. 암튼 이 곳은 경쟁 분위기인가?
암만 봐도 저들보다 내가 나은게 하나도 없어 보인다. 다들 주둥이가 현란하다. 말에 맞춘 저 손짓. 아이돌 칼군무 추듯한다. 리듬과 박자도 정확하다. 저건 딱 봐도 거울 앞에서 맞춰 온 자세가 분명하다.
이 몹쓸 강건너 불구경하는 습관은 이 날도 어김없이 발동하고 있었다. 곧 내 차례임에도 말이다. 이어 내 순서를 직감한 순간 여러 생각들이 머리속을 복잡하게 맴돌았다.
"안녕하세요. 별거 없는 보통 아이 초맹입니당! 오늘 저를 보신 여러분들 모두에게 좋은 기분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당! 헤헤"
"오늘 만족 못하면 어떻게 하실 꺼에요?"
"네?" (아씨.. 첫 질문이 무슨 네거티브냐..)
그렇지만 억지로 패시브 야누스의 미소를 발동한다.
"그럼 당연히 고객님들께 애프터 서비스 들어가요."
이어서 다른 지원자들에게 질문이 돌아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질문이 몇 바퀴 돌았다. 여전히 내게 질문이 없다. 직감했다. '아. 망했다.' 딴 생각이 났다. '빨리 가고 싶다. 오늘 집에 가서 모 먹을까..'
그러던 찰나 면접관 한 분에게 질문이 들어온다.
"으음.. 초맹씨. 본인의 장점 3가지와 단점 3가지를 한번 얘기해 보시겠어요?"
아. 느꼈다. 저 무성의한 말투. 김 샌다. 이건 관심있어서 던진 질문이 아니다. 아무 질문 안하기 그래서 대충 던진거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시키면 해야지. 다시 야누스의 미소 장착!
"저의 장점은 톡톡 튀는 창의적인 아이디어.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넓은 배려심. 무슨 일이든 다 받아들이는 바다와 같은 포용력. 이 세가지입니당. 그리고 저의 단점은 남의 말을 너무 잘 듣는 나머지 귀가 좀 얇은게 있구요. 그리고 다른 단점은... 음.. 어.."
아씨.. 큰일났다.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래서 준비를 해야되는구나. 어쩌지? 버퍼링이 걸렸다. 계속 로딩중이다. 자. 이제 어쩐다?
어찌어찌 어렵게 1루까지 출루는 했는데. 도루를 할까 말까? 순간 찰나의 판단력과 바람 같이 빠른 속도가 내게 있기는 한 건지? 이러다 2루까지 냅다 질러보고 잡히면? 오만한 심판의 목소리 "아웃!"에 나가 떨어질테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그 짧은 1초 동안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다. 지금이 바로 그 타이밍이다. 일단 도루다. 몰라 나두!
"저의 또다른 단점은! 없습니다!!"
"........................................................"
잠시 주변이 조용해졌다. 다들 눈이 똥그래져 쳐다본다. 지원자들마저 고개를 돌려 쳐다본다. 쟨 모지? 하는 표정. 이어서 나이 지긋하신 면접관 한 분이 째려보며 공격기를 발동한다.
"사람은 장점보다 단점이 많아요. 근데 장점 3개 얘기하고 단점은 1개 밖에 없어요? 그게 말이 돼요?"
"네! 저는 장점이 단점보다 많아요. 저는.. (꼴깍)"
"....................................................................."
"훌.륭.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당!!" (몰라 나두)
"푸하하하하하하하!!!아 모야!!!"
"훌륭한 사람이래!!!!! 파하하하"
순간 다 터졌다. 면접관들부터 지원자들까지. 면접관 한 분은 물을 마시다 뿜어냈다. 한 분은 의자에서 비틀거렸다. 옆의 지원자들마저 앉아있던 두 손의 공손 모드까지 모두 해제되어 버렸다.
그럼 잠깐. 이제 뭐지? 도루는 성공인가 아웃인가? 심판의 판정은? 엇? 눈빛들이 호감으로 바꼈다. 분명하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 저희 만족 못 시켜면 A/S 해 주겠다고 했잖아요. 무상보증기간은 얼마나 해 주나요?"
"음.. 특별히 기간 제한은 따로 안 드리겠습니당!"
"그럼 계속 무상보증해 준다구요? 너무 퍼주시는거 아니에요? 그러다 후회해요."
"실은 잠깐 생각해보니까, 2년 보증이라고 하면 계약직 같애서 대충 2년 쓰고 짜르실 꺼잖아요? 그래서 A/S 기간이 썩 내키진 않지만.. 흐음.."
"아니 어떻게 알았어요? 으하하하하하!!!!"
이번에는 책상 치는 분까지.. 무장해제 2연타다.
"다른 대외활동이나 해외연수. 인턴십. 이런 거는 좀 안 해 봤나요?"
"그런 건 나중에 와서 말씀 드릴께요."
"네? 지금 여기서 얘기 못 할 만한 이유가.."
"아.. 제가 좀 신비주의여서요.."
"네?? 푸하하하하하..... 시..신비주의래...."
사실 한 게 없었다. 그렇다. 어쨌든 뜻하지 않게 또 3연타. 이어진 질문으로 4연타까지 이르렀다. 이젠 뭐 말만 하면 막 터진다. 왜 그러지? 암튼 이 들뜬 분위기가 정상으로 추스려지기까지는 10분 정도 더 걸렸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더 얘기하고 싶었는데 못한 말 있으면 편하게 얘기해 주세요!"
마무리인가보다. 다들 준비해 온 열정과 각오의 멘트를 하얗게 마지막까지 태워냈다. 대충 비슷했다.
"많은 것을 보여드리지 못했지만, 저는 열정과 배움의 자세 그리고 언제나 정진하는 마음으로 회사의 미래를 함께 해 나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면접관님들 모두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지막.. 준비한 건 없다. 저런 멘트 우린 모른다.
"오늘 어떠셨나요? 다들 만족하셨어요? 또 보고 싶다.. 오늘 집에 갔는데 생각나더라 하면 연락 주세요! 아님 말구요. 저 오래 안 기다립니당! 아 맞다. 주말에 연락하면 여기 안 와요!"
그날 그렇게 최종 5연타를 찍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무 기대 안 했지만 결과는 합격이었다.
모든 불리함을 떠 안고 있을 때는 남들과 다른 길을 가면 된다. 내세울 게 없다면 상대의 예상을 완전히 깨면 된다. 다른 노선을 택해라.
옆 사람? 신경 쓸 필요없다. 비교하지 마라. 모든 초점이 나에게 향해 있으면 된다. 어떤 경우라도 돌파구는 있다.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사람? 훌륭한 사람? 다 거짓말이었다. 지금도 훌륭하지 않다. 다만 그날 이후로 뇌리에 박혔다. 훌륭한 사람.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사람. 그렇게 나아가는 것 뿐이다. 그렇다. 그런 것이다. 그런가부다. 후후..
[초맹의 정의]
훌륭한 사람 :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사람
공식 : 장점의 총합 > 단점의 총합 or 장점의 수 - 단점의 수 > 0 일때, 훌륭함 성립
감상에 젖어 의자에 반쯤 누워 있을 때쯤,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와 보니 팀장님의 아우성이 들린다!
"어이 초맹! 어이! 몇 번을 불러?! 모해? 자냐? 자?"
"넹? 넹? 아니에영. 다 듣고 있었어영! 헤헤."
"아 이것들이 오늘 진짜! 쟤는 또 누가 뽑았어?!"
우당탕탕! 와르르르! 오피스 게임은 그렇게 시작 되었고 계속되고 있었다.
P.S. 김대리님 힘 내요! 어제 화장실에서 울었다고 소문 다 났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