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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맹 Jun 05. 2024

인사가 각성하면 회사에 벌어지는 일

Part 2. 인사는 천사다.


인사가 천사가 되면 사람이 보인다.


전편 : 인사는 만사가 될 때 괴물이 된다.


“미친 칼잡이 년”

어느 순간 오피서들이 뒷담하며 부르는 별칭이다. 어디서나 인정받는 HR이 되었다. 인사에 사람이 빠진 지 오래다. 어차피 HR은 휴먼 리소스 아닌가?


사람을 자원으로 대한 이후 모든 것들이 편해졌다. 프로페셔널한 HR 스페셜리스트로 인정받는 나날들. 근데 공허했다. 허전했다.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던 듯하다. 마음과 내면이 편하지 않았다. 기억해야 할 무엇인가를 계속 잊고 지내는 느낌. 그게 뭘까? 기분 탓일까?


오랜만에 동기를 만났다. 상당한 혜안을 가진 자다. 무언가 스치는 공허함은 문득 그를 떠올리게 했다.

"뭐 걱정 있어? 표정이 왜 이렇게 썩었어?"

"글쎄.. 뭐 매일 똑같지. 걱정이랄께 있나?"

"왜? 이번에는 나 짜르려고 만나자 그런 거야?"

"아냐. 그냥 본 지도 좀 됐고. 회사생활도 재미없고."

"난 또 이번에 내 차례인가 했네. 너 칼잽이잖아."


때로는 누군가에게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아.. 미친 칼잡이 년이란 거 모두 알고 있었구나..  

"재미없어 그런 거. 난 그저 회사가 자연이라 여기고 거기 순응하는 것 뿐이야."

"회사가 자연이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근데 자연은 동물 식물들만 사는 게 아니라 사람도 같이 살거든. 그렇게 사람도 자연의 일부가 되는 거지. 순응한다고 가만 놔두면 사람은 어떻게 살아? 그게 자연인가? 재앙이지. 서로 물고 뜯는 원초적 동물들만 살아남지 않을까? 결국 그러다 다 죽을 거야."


자연? 순응? 사람? 그렇다. 아무것도 없는 정글 같은 자연. 사람이 살 수 없다.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한 것이다. 비바람을 막아주는 집도 필요하고, 여러 생활환경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있다면 적어도 함께 공존하는 것이 자연일 것이다.


그날의 대화는 내 안에 요동치며 한 동안 마음속 커다란 반향으로 자리 잡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떠올랐다. 잊고 지내던 바로 그거.

"HR은 사람이 안 보이는 순간 끝난 거야." 그때 예전 팀장님의 그 말씀. 잊고 있었다. 사람이 빠져 있었다. 맞다. 다 돈으로 보였다.


하루에 몇 번이나 인사를 하는지 떠올려 봤다. 형식적인 인사 외에 그 어떤 인사도 없었다. 특히 죄송한 인사는 언제였는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혼자 남은 사무실. 현타와 함께 생각과 번뇌가 많아진다.


거울을 봤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 웃음이 사라져 있었다. 사람에 관심 어리던 눈매에는 가느다란 주름이 파여가고 있었다. 곱게 화장한 얼굴도 그 민낯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제 더는 아름답지 않았다. 거울 속의 나를 철저히 부정하고 싶을 만큼..


내가 하던 일은 인사가 아니었다. 휴먼 파이낸스였다. 사람이 좋아서 왔는데, 마음대로 사람의 가격을 매기며 후려치고 있었다. 더러웠다. 역겨웠다. 어쩌다 이런 괴물이 되어버렸을까.. 추했다.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왜 이제서야 깨달은 것인지.. 눈물이 났다. 멈추지 않았다. 그날 한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드디어 이력서에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된 하루. 아침부터 쌓인 이력서를 본다. 보인다. 환하게 웃는 사진 속 표정. 사진 속의 그가 궁금해진다. 어떤 사람일까?


밀려있던 연차 처리 서류. 직원들은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 강제로 쓰게 하는 연차 제도 부당하다. 분명 회사에도 리스크가 있다. 매번 해 온 스킬. 감정을 차단하는 냉정한 이성. 이럴 때 발휘하는 거다. 사람 짜르고 죽일 때 하는 게 아니라..


"근로자들과 상호합의 없는 일방적인 지금의 연차 제도는 위법성이 상당합니다. 직원들 여론도 매우 좋지 않구요. 연차 사용을 장려하며 잘 쓰는 사람에게 보너스 휴가와 휴가비 옵션 붙여주면 소진율도 상당히 증가할 겁니다. 더 쉬게 해 준다고 일 총량도 안 변하구요. 직원만족도 증가하고 절감효과 생각하면 비용도 안 듭니다. 홍보 효과 따져도 훨씬 이득이죠. 어차피 회사도 연차 다 소진시키고 싶은 거잖아요? 결정하시죠?" 윗선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 못 하다가 결국 결재했다.


각성한 HR은 스스로 일을 찾아서 만든다.


이슈를 체크한다. 연구소와 공장을 연계 관리할 매니저가 필요하다. 뽑을 필요없다. 회사는 돈 아끼고 싶잖아? 그렇지만 해결할 수 있다. 모두가 해피한 방법이 있다. 마음과 의지만 있다면..


오후에 잠시 틈이 생겼다. 지방 공장에 전화했다.

"안녕하세요. 부장님. HR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HR에서 이번에는 또 어쩐 일로 저를.. 예감이 좀 좋지 않네요?"

"아닙니다. 본사 연구개발실에 자리가 나서 추천하려고 연락드린 겁니다. 부장님 연구원 생활도 오래 하셨고, 지금 공장과도 연계된 핵심 포지션이에요."

"아 그래요? 그럼 저 다시 본사 가는 건가요? 실은 나가야 되나 어쩌나 죽지 못해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번에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저 이제 칼잡이년 안 하려구요. 그간 마음고생 많으셨죠?"

"이해합니다. 회사가 그렇죠. 나이는 먹었지만 지금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생겨 너무 감사합니다. 마지막까지 열심히 할께요. 정말 감사합니다."


들었다. 목이 메어 울먹이는 말투. 매일매일 얼마나 속앓이를 하고 있었을까.. 저 마음은 오죽했을까.. 이 마음의 소리를 그땐 왜 못 들었을까..


다시 좋은 자리에 불러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복도를 걸어간다. 익숙한 직원들이 눈에 들어온다. 뒤에서 씹던 애들이군. 눈 마주치자 피하려 한다. 어라? 누가 잡아먹나? 그래. 먼저 인사하자!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잘들 지내시죠?"

당황한다. 왜? 뭐? 뭐라도 한마디 해 봐. 민망하잖아.


"저.. 아까 사내 공지 봤는데요. 연차 잘 쓰면 이제 보너스 휴가도 준다고 하던데.. 진짜에요?"

"뭐 안 부족한 분들은 안 주구요. 다 쓰고 부족한 분들에게는 더 드리려구요. 별로인가요?"

"아 진짠가 해서요. 다들 진짜냐 아니냐 말 많거든요. 정말이면 빨리 남은 연차 다 쓰고 휴가 달래야지!"

"보너스 휴가는 5일, 휴가비 지원은 50만 원이에요. 7박 8일 해외여행 끊고 몰랐다고 더 달래면 안 돼요! 가서 소문 팍팍 내주세요."

"소문 막 내고 다닐께요! 재밌다. 앞으로도 이런 거 많이 해 주세요!"


요새 인사 왜 저래? 보너스 휴가 막 풀고..


신났다. 좋아한다. 별거 아닌 일에도. 어린아이 같이 즐거워한다. 이게 소확행이란 것일까? 근데 왜 내가 더 기분이 좋지? 이것도 나의 소확행일까?


거울을 보았다. 오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최고다.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만 같다.


각성한 HR은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그저 공감할 뿐이다.


인사는 만사가 아니다. 사람이 하는 건 늘 불완전하니까.. 그러나 사람이 빠진 인사는 거기서 끝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인사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널렸다.


의외로 오피서들은 큰 것을 바라지 않는다. 아니 사람들은 작은 것에도 쉽게 감동한다. 그만큼 세상이 삭막해져서일까..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중요하다. 그것은 그들의 오피스 게임을 작게나마 즐겁게 만들어 줄 것이다. 회사는 오피서들에게 편안한 곳이 되어야 한다. 진정성이 통할 때 그들은 기꺼이 일할 것이다. 그런 회사는 알아서 잘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는 오피서들에게 그 이유가 되어주고 싶다.


인사는 천사가 되면 자꾸 인사를 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오늘도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인사는 천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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