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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맹 Jul 29. 2024

아니 뭐 회사에 이런 팀장이 다 있어?

어느 날 이상한 팀장이 왔다.


이것이 바로 현자의 리더십이다.


새로운 TF팀이 생겼다. 뭘 사업의 핵심을 혁신한다나 모래나. 몰라 나두. 팀장님이 새로 왔다.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분이다. 카리스마는 별로 없어 보인다. 사람 괜찮은 분이다. 공사구별 잘한다. 쓸데없는 일을 시키지 않는다. 스스로 하는 일도 많다.


팀장이 새로 오면 긴장 타며 탐색전 돌입이다.


5분 지각해도 별말 안 한다. 눈이 마주쳤다. 피식 웃고 못 본 척한다. 모라 안 하니까 더 이상하잖아. 아씨.. 혹시 마음속에 스샷 찍고 있는 거 아냐?


"김대리님. 지난주 중국 실적 어떻게 되지?"

"대략은 아는데.. 정확한 숫자가 아직 확인 안 돼서.. 자료 취합되는 대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괜찮아. 그냥 어바웃만 얘기해 줘요. 추이만 보면 되니까 숫자 안 정확해도 돼."

"아 그럼.. 주간보고에 내용 정리해서.."

"괜찮다니까. 그냥 메신저로 대충 아는 거 쳐 줘."


그렇다. 그는 자잘한 일, 쓸데없는 일을 다 단순하게 만들어버렸다. 팀원들이 형식에 치우칠까 봐, 일을 줄 때면 중요도를 상기시켜 줬다. 저분은 평범해 보이지만 아우라가 뭔가 좀 다르다. 결이 다르단 말이지. 느낄 수 있다. 동물적인 본능과 촉각으로..


김대리 잘하고 있어! 여기서는 안 깨져도 돼.


이대리님. 보고 자료를 제출한다. 팀장님은 이대리님의 설명을 들으며 자료를 찬찬히 본다. 자료를 책상 위에 터업 패대기친다. 앗 저 모션은? 팀장들의 힙합 공격?! 역시나! 나왔다.


"이대리님. 아니 시간 충분히 줬는데 자료가 이거 왜 이래요? 말이 안 나오네.."

"네? 아.. 한다고 했는데. 죄송합니다. 수정할 점 한번 말씀해 주시면, 제가 빨리 고치겠습니다."

"아니! 죄송한 게 아니라!!!"


뭐지? 딱 봐도 깨질 각이다. 뭔가 많이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일단 분위기 이상해진다. 옆 팀도 놀라서 무슨 일이지 하며 다 쳐다본다.


"너무 잘해 놨잖아! 이대리님 이렇게 해 오면 너무 완벽해서 내가 할 일이 없잖아요! 잘못했지?"

"아하하.. 그럼 담부터 좀 더 대충 할께요!"

"그래 그거지! 잘잘한 수정은 내가 직접해도 되고, 이대리님 실력 아니까 적당히 해 오면 돼! 자꾸 이러면 내가 할 일 없어져서 집에 가야 된다구!"

"아 그랬군요! 제가 잘못했네요~ 푸힛"


결재는 바로바로. 결정장애 따위는 없다.


와.. 무슨 분위기냐 이거? 모양새는 깨진 건데 훈훈하다. 저분 반전 오지네. 완전 신박하다. 평소 생각해 보자. 깰 때는 개 같이. "장난하냐?!" 칭찬은 들릴 듯 말 듯. "수고했어." 이게 디폴트 아니었던가?


그렇다. 이 분은 정반대다. 부하를 칭찬할 때는 다 들리게. 액션은 철저하게. 주변 시선 사로잡고. 임팩트는 오지게. 이 분의 전매특허다.


어디 있다가 온 분일까? 기발하다. 전날 무리했다 싶으면 다음 날 조용히 팀 전체에 메신저를 돌린다.

"다들 요새 피곤하죠? 오늘 두 시간 정도 남았는데 대충 할 거 했으면 적당히들 가세요."

일의 총량과 시간과의 관계에 대해서, 그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팀장들이 성리학파 성격이 강한 반면, 이 분은 실사구시학파였던 것이다.


회의 시간이다. 실적이 떨어졌다.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눈치를 보며 회의는 시작된다.

"실적이 떨어진 이유나 원인 아시는 분 있을까요?"

"예정대로 행사 진행이 되었으면 지금보다 좋았을 텐데, 마케팅에서 지원 건 취소가 있었어요. 마케팅팀에 클레임이 필요합니다."


팀장님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말한다.

"찾고 싶은 건 근본 원인이에요. 남 탓하는 분위기로 가면 대책이 안 나와요. 책임 지우면 끝이니까."

뭐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그 간 데이터를 쭉 살펴봤어요. 이 아이템들은 다 미국시장 영향을 크게 받더군요. 지금 미국 시장 안 좋죠? 그게 근본 원인 아닌가요?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뭐죠? 시기별로 밀어주는 아이템 전략을 바꾸거나, 다른 나라로 수출 물량을 밀어주거나 해야겠죠? 미국시장 상황을 시기별로 고려할 때, 지금 실적이 이 정도면 못 나온 게 아니라 충분히 선방한 거잖아요. 여러분 맞나요? 그리고 윗선에도 이런 류는 국제 정세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각인을 시켜줄 필요가 있어요. 안 그러면 우리는 계속 쪼임을 못 당할 겁니다. 어떠세요?"


자 봐 봐! 이 실적은 못한 게 아니라 잘한 거라구! 맞지?


다들 놀랐다. 그렇다. 그동안 미국의 영향으로 목표 실적을 맞출 수 없음에도 지독히도 어메리칸 제국을 뚫으라는 압박을 받았다. 그 누구도 이 영향관계에 대한 분석을 하거나 윗선의 인식을 고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동안 우린 까라면 그냥 까고 포장에 덧칠을 입힐 뿐이었다.


대단하다. 다들 우린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못하고 있다고 줄곧 가스라이팅을 당했다. 근데 그게 아니었구나. 팀장님은 그 답을 단 며칠 만에 찾아버렸다. 어쩐지 요근래 말없이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더라니. 아무것도 안 하고 꼬꾸라진 실적을, 호실적으로 발칵 뒤집어 버린 것이다. 이후 전략 방향까지도 국제 정세를 고려해 같이 뒤집었다.


그렇다. 이로서 우리는 이제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모두가 비웃던 저실적이 충분한 호실적이었음을 명쾌하게 증명해 냈다.


커다란 고민을 나이스하게 해결하고, 이어서 회의는 다음 안건으로 계속된다.

"여러분. 제가 마땅한 아이디어가 없는데, 이거 꽤 중요한 건이라 방안을 좀 같이 세워야 해요. 좋은 생각이나 아무 의견이라도 있는 분!"


역시나 다들 눈을 피한다. 뻔하다. 말하면 까이거나 시키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니까. 그러다 언뜻 눈이 마주쳤다. 팀장님은 씨익 웃는다. 아씨.. 왜 이때 눈이 마주쳐? 이러면 뭐라도 말해야 되잖아.


"모하러 지금 일본 신제품을 내요? 어느 세월에? 중국에서 안 팔리는 제품군이 있어요. 전에 일본 테스트해 봤는데 반응 대따 좋았어요. 그거 모아다 일본에 그냥 뿌리면 돼요. 이건 좀 별로시죠?"

"호오.. 너무 좋은데요? 내가 생각했던 거보다 하기도 쉽고. 중국 재고 로스도 해결되겠네? 그냥 더 볼 것 없이 이거로 정합시다."


참석자들 모두 좋아한다. 그래 니들은 좋겠지. 내 희생으로 모두 일거리 하나 덜었으니까..


"자아! 그럼! 초맹 아웃!"

"네?" (모지? 아웃?)

"나가세요! 아웃 이랬잖아!"

"네?? 저 왜? 아웃이란 게..."

"저는 아이디어 채택된 사람은 일 다한 거라서 더 안 시켜요. 시작이 반인데 다 시키면 누가 아이디어 내? 그니까 빨리 나가라구!"

"자! 남은 분들은 이 건 세부 진행사항, 각자 역할들 마저 정리 끝냅시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진다. 회의시간의 암묵적인 룰도 뒤집어 버렸다. 듣고 보니 그거 말 된다. 합리적이다. 눈치챘는가? 맞다. 그는 오피스 게임의 희귀 생명체 현자였다. 원래 이런데 있으면 안 되는 자다.


외근도 일찍 끝나면 그냥 가라고 한다.


외근을 나가면 보통 시간이 애매할 때가 있다. 그래서 적당히 퇴근시간 때쯤까지 질질 끈다. 그래야 다시 안 들어와도 되기 때문이다. 팀장님은 정기 외근 현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룰을 바꿔 버렸다.


"우리 팀 오늘 할 일은 이 외근이지? 이게 시간 얼마나 걸리든 다 상관없어요. 오전에 끝나면 일찍 가던지 놀다 가던지 알아서 하고. 대신 무슨 일 생기면 늦더라도 알아서 더 하세요. 현장에 나갔을 때는 현장 담당자 자율 재량입니다. 정확히 세 가지만 지켜주면 돼. 외근 시 이상유무 정도만 메일로 보낼 것. 일의 퀄리티가 떨어지면 안 되고, 마지막으로 일찍 끝나도 절대 전화하지 말 것! 다들 아시겠죠? 사실 좀 불안합니다. 오늘 제 불안이 틀렸다고 보여주세요."


이후로 외근을 나가는 이들의 집중력과 부지런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집중해서 제대로 빨리만 끝내면 나머지 시간은 자유기 때문이다. 일은 오히려 전보다 퀄리티가 좋아졌다. 빠르게 속전속결로 끝내는 덕분에 지사와 현장의 만족도까지도 높아졌다.


외근은 요러고 아이스크림도 먹으며 여유를 만끽하는 것


하루는 팀장님과의 외근을 마쳤다. 지나가던 길에 보인 아이스크림 가게. 나도 모르게 튀어 나왔다.

"요기서 아이스크림 먹고 한강 갈까여?"


그는 순간 당황했지만 바로 수락했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그날 많은 얘기를 들었다. 유학 생활 중 가세가 기울어 학업을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돌아온 이야기. 그래서 꿈이 소박하게 바뀐 이야기. 자라나는 아이와 추억을 남기고 싶어 매주 하루 이틀은 온종일 죽어라 놀아준다는 이야기. 원하는 집을 직접 짓고 싶어 돈을 번다는 이야기. 스스로 생각하는 오피서들의 가치관과 실사구시론.


그랬다. 그는 인간계의 영역에서 보기 드문 현자였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일까? 이따금 어쩔 수 없는 야근에도 팀원들은 아무도 싫어하지 않았다. 그 빼앗긴 시간을 이 분은 반드시 어떻게든 보전해 줄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회사가 원하는 실적? 그런 건 애써 쫓아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뒤따라 왔다. 아무도 이 현상을 과학적이나 학문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현자가 강림한 이래 많은 것들이 바뀌어 가고 있었다. 오피스 게임도 제법 할 만할 수 있다는 것을 느껴가고 있었다. 적어도 현자 주변의 이들은 말이다.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지위에 의존하지 않는다. 스스로 의식하지 않는다. 무엇도 조급해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아니어도 괜찮다.


리더십? 정답은 없다. 보여줄 수도 없다. 그저 느끼게 해 줄 뿐이다. 애초에 정답을 찾는 게 어리석은 짓이었던가? 리더십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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