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 이동. 어디가 왕이 될 입지인가?
순간의 선택이 게임을 좌우한다.
어디를 가지? 어디가 좋을까?
회사에서 초특급 장인과 같은 특수한 역할을 맡지 않는 이상 부서를 이동해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많은 오피서들이 같은 회사인데도 누구는 할만하다고 하며, 누구는 못해먹겠다고 한다. 오피서들의 게임 난이도를 가르는 것은 부서와 보직이다.
회사 자체가 가족 같은 회사라면 그냥 가족만 좋다. 애초에 가서는 안 된다. 물론 처음 신입사원 때도 부서 배정을 잘 받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처음 이상한 부서에 배치받았다고 게임이 끝나지는 않는다. 빨리 깨닫고 3년 안에 이동할 생각을 하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부서 이동이 중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그에 따라 기사회생이 되기도 하고, 잘 나가다가 한 번에 나락 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부서 이동에는 몇 가지 포인트를 잘 살펴야 한다.
부서 입지 파악이 우선
부서 이동을 할 때는 그 부서의 입지 파악이 가장 우선이다. 이 부서가 요직인지 한직인지를 우선 따져봐야 한다. 본사와 지사라면 당연히 요직은 본사에 있다. 그다음 살펴볼 것은 자금줄이다. 돈이 어디로 벌리는지를 보면 된다. 잘 나가는 사업부인지, 주력 제품을 만드는 곳인지를 보는 것이다. 일단 그런 곳은 망할 위험이 낮다. 같은 회사 내에서도 대접을 잘 받는다. 그러나 보조적이거나 구색용 사업을 하는 곳이라면 피하는 것이 좋다. 만년 실적에 허덕이며 죽어라 일만 해 대고 버림받기 딱 좋다.
회사가 내수 중심이라면 해외사업부는 힘을 못 쓴다. 주력이 수출이라면 반대다. 사업부 내에서도 임원의 출신성분이 중요하다. 임원이 영업, 마케팅 출신이라면 관련된 팀에 힘을 실어준다. 반면 연구원 출신이라면 R&D에 힘을 실어준다.
사업부가 아니라면 그다음은 그 부서가 필수재에 해당하는지를 살펴보면 된다. 경영지원과 같은 부서는 보통 평타는 치는 부서이지만 안정적이다. 회사가 없애지 못하는 필수재 부서이기 때문이다.
보통 부서 이동에서 가장 각광받는 최상급지는 전략, 기획, 사업 분석 같은 부서다. 권한이 막강하고 다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 좋다는 얘기는 들어가지고. 소위 있어 보이는 부서다. 최상급지다. 그래서 너도나도 서로 가고 싶어 눈이 뒤집힌다.
단, 과장 밑으로는 그런 부서를 가서는 안 된다. 인터넷 서칭, 회의 준비, 시장 조사 이런 잡일러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저런 데는 최소 과장은 달고 사업부 경험을 충분히 밟고 가야 영전 코스가 되는 거다. 쪼렙이 가면 연일 사냥하고 광물 캐는 자동사냥 잡부일 뿐이다. 그냥 알바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마지막으로 신생 사업부나 이상한 보여주기용 TF는 무조건 피해야 한다. 회사가 신생 사업부를 열어 제낄 때는, 뭔가 다른 사업 포트폴리오를 가져가려고 위에서 오더가 떨어진 것이다. 뭐 말은 그렇다.
어느 임원이 맡는지를 보라. 별 힘없는 임원이 덤탱이 쓴 채 맡고 있다. 회사는 미래에 중요한 사업이라 투자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꼬실 것이다. 믿지 마라. 매년 말 바뀌는 게 회사다. 전략론에서 뭐라 가르치는가? 상황에 따라 전략을 바꾸라고 하지 않는가? 그 바꾸는 전략에는 사업 철수도 하나의 전략이다. 자영업자는 3년 안에 약 90%가 망한다. 심지어 대기업에서 벌이는 신생 사업도 3년 안에 약 70%가 접는다. 그럼 이제 닭 쫒던 개 지붕쳐다보며 갈 데 없어지는 건 순식간이다.
대어메리칸 TF, 즐거워크 TF, 핵심영업력 강화 프로젝트 이런 이상한 태스크 포스는 다 피해야 된다. 임원들이 "일 열심히 하고 있어요."라고 오너에게 보여주기 위한 용도다. 저기 모인 사람들은 뭘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일은 해야겠기에 쓸데없는 일 벌려대며 아무 데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그리고 그 책임을 물어 해산된다. 그럼 또 어떻게 되는 거지? 맞다. 똑같이 새되는 거다.
회사가 커서 부서들이 뭐하는지 잘 모르겠다? 눈에 잘 띄는 곳인지 아닌지를 봐라. 몇 년 다녔는데도 저 부서가 뭐하는지 모르겠다? 눈에 잘 안 띈다? 그렇다면 실적이 저조할 가능성이 높다. 부서 입김이 약하다는 소리다. 거기에 야근까지 많다면, 그야말로 발 담그는 순간 바로 망할 각이다.
모를 때는 눈에 잘 띄는 곳이 일단 상급지라고 생각해도 좋다. 담당 임원이 짱짱한 경우, 가면 고생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기피하기도 한다. 근데 반대다. 담당 임원이 짱짱하면 다음 영전 코스를 생각하고 행보를 한다. 팀장들은 많은 실적 압박을 받지만, 아랫물까지 그렇게 타격이 오지는 않는다. 그래도 대접은 좋다.
부서 구성원 파악
부서의 급지가 어느 정도 추려졌다면 실속이 얼마나 있겠는지를 봐야 한다. 첫째는 팀장의 입지다. 본부 내에서도 그 팀의 팀장이 어떤지가 중요하다. 오피서들의 실생활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자는 팀장이기 때문이다. 만약 팀장이 초임이라면 고생길이 열린 것이다. 험난한 시행착오와 마이크로 매니징을 겪게 된다.
반면 팀장이 만년 부장이라면 그 팀은 한직이라는 소리다. 적당히 하고 놀기는 좋다. 가장 괜찮은 건 팀장이 3~5년 정도 되었고, 이미 다른 팀에서도 팀장 경험이 있다는 정도다. 이는 팀이 안정적이고 실적도 괜찮게 낸다는 얘기다. 다만 팀장이 외부에서 새로 온 지 얼마 안 됐다면 팀 리빌딩으로 오피서들의 물갈이 각이 예상되니 주의가 필요하겠다.
팀장 못지않게 팀원의 구성도 중요하다. 딱 봐서 여초다? 가는 게 아니다. 남초라면 아마도 분위기가 딱딱할 것이다. 성비는 남녀무관 5:5 ~ 7:3 정도가 적당하다. 7:3을 넘어가면 한쪽으로 쏠린다. 그리고 그 부서에 내 덱에 넣어둔 친한 선후배 한둘쯤 있다면 적응하기도 좋고 일하기도 좋다. 단, 동기가 있는 곳은 피해야 한다.
보통은 동기 추천으로 같은 부서에 가거나 한다. 동기가 도와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니다. 동기가 있는 곳으로 가는 순간 동기 아래가 되어 버리는 거다. 족보도 꼬인다. 그다음 팀장은 너가 아니라 동기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 같이 한 부서에서 일하다 보면 상하가 애매하기 때문에 다툴 일이 많아진다. 동기는 그렇게 멀어져 가는 것이다. 이 게임에서 마지막에 항상 너를 담그는 건 바로 동기다. 명심하자!
그럼 부서 이동을 어떻게 하느냐? 인사에서 공석이 나오고 부서 이동 지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건 하는 게 아니다. 그냥 HR과는 뭘 하는 게 아니다. 또한 그 부서에서 안 받아줄 가능성도 농후하다. 비밀이라도 다 금방 소문나고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특히 부서 이동에 실패했을 때, 현 부서에서 게임 난이도가 아주 높아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부서 이동은 팀장이 먼저 권유하여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부서든 폐기하고 싶은 꾸러기들이 한둘씩은 있기 마련이다. 이 케이스는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절대 좋은 부서에는 못 간다. 이렇게 떠 밀려서 가면 100% 잡부로 전락하게 된다. 두 경우 모두 상대 부서에 있는 사람들이 하기 싫은 잡일을 모아 떠밀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마라. 가고 싶은 부서와 협업할 거리를 만들어라. 아는 사람이라도 있다면 가서 뭐라도 도와줘라. 자연스럽게 점점 그 부서 사람들과 안면을 터라. 우리 팀 일보다 그쪽 일을 더 잘해줘라. 손해 보는 일이 아니다. 투자다.
그 부서도 공석이 생긴다. 그럼 너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이미 적응되어 있고 검증되었기 때문이다. 굳이 어떨지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사람을 뽑을 이유가 없다. 그럼 그 부서에서 아는 사람의 추천이나 팀장의 오퍼가 올 것이다.
오퍼는 먼저 던지는 쪽이 아쉬운 거다. 그럼 각을 재보면서 몇 가지 딜을 하면 된다. 잡일은 안 받는다. 어떤 일을 하고 싶다. 이렇게 해 나가면 좋을 것 같다. 얘기를 하며 각을 봐라. 그리고 개런티를 받아라. 아마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 이상, 충분히 딜이 될 것이다. 그걸 스카웃이라고 한다. 그때 넘어가면 된다. 그리고 별로면 그때 가서 거절해도 된다.
다만, 현재 팀이 힘들거나 못 마땅해서 하는, 탈출성 묻지 마 부서 이동이 있다. '여기만 아니면 아무 데나 좋아!'라는 묻지 마 부서 이동은 크나큰 후회를 안길 것이다.
부서 이동에서 항상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이동 의지와 받아주는 부서의 허가 이 두 가지다. 그것만 맞아떨어지면 HR이던 현재 팀에서든 잡지 못한다.
내가 상급지가 되면 사람들이 찾아온다. 서로 와 달라고. 부서 이동은 골라서 하는 것이다. 골라서 하는 부서 이동은 그다음부터 오피스 게임의 판을 스스로 쥘 수 있게 된다.
P.S. 오피서들아. 연말이다. 갈아타기 타이밍이다. 거기서 되도 않은 일 그만하고, 상급지에 가서 눈도장들 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