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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글 Apr 11. 2024

28화. 그땐 그랬지(3)

반(半) 픽션 <슈퍼맨은 없다_우리가 아이를 낳지 않는 진짜 이유>

 아들 주형이 다섯 살이던 때, 지혜는 주변에서 '자연 친화'를 테마로 한 키즈카페가 있다는 추천을 받았다. 지인은 '가격이 조금 나가지만' 갈만한 가치가 있다며, 더불어 '보호자 분리입장'이라 50분동안 자유시간을 얻을 수도 있다 조금은 흥분하며 그 곳을 추천 해 주었다. 아이의 사진이 잘나와 자신의 인스타에서 관련 게시글이 인기가 많았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조금만 관리하지 않으면 자칫 장난감이 부서지고 고장나거나 공간 구석구석에 먼지와 머리카락이 뒹구는 그저 그런 키즈카페만 데리고 다녀 주형에게 조금 미안했던 차, 색다른 경험을 시켜 줄 겸 나름 큰 맘먹고 예약하여 그 곳을 방문하였다. 물론 그저 그런 키즈카페의 비용도 만만치는 않았지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세련된 외관에 달라도 뭔가 다르구나 싶었다. 예약확인을 한 뒤 건네받은 베이지색 멜빵바지를 주형에게 갈아입혀 놓으니 더욱 그러했다. 뭔가 달랐다.

 초록 풀이 가득한 포토존 앞에 주형을 앉히고 핸드폰 들어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러댔다. 초록배경에 멜빵바지 조합이라니. 찍을 때 마다 인생샷이었다. 정작 주형은 위 아래가 붙어있는 멜빵바지가 영 어색하고 불편한지 엉덩이 주위를 연신 긁어댔다.


 수십장 찍은 사진을 넘겨보며 돈 쓰길 잘했구나, 싶던 차 주형은 선생님의 안내로 체험실로 들어갔다. 체험실 활동은 CCTV를 통해 부모대기실로 실시간 중계되었기에 아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체험실은 아이 넷과 인솔교사 한명이 들어가니 꽉 찰 공간이었다. 딱 그정도의 공간 바닥에 진한 고둥색의 흙이 깔려있고, 구석구석 키 작은 풀들이 밭게 심어져 있었다. 그리 크지도 않은 아이들이 몸을 이리저리 비틀면 서로 부딪치리만치 넓지는 않은 공간이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앞에 두고 이런 저런 설명을 하는 듯 했으며 아이들은 귀담아 듣기도, 딴짓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아이들은 예쁜 모양의 작은 삽자루가 손에 쥐어지자 돌연한 생기를 띠며 얕은 흙을 북북 파내고서 그제야 만족한듯 놀기 시작했다. 요즘 놀이터엔 모래가 도통 없기에 주형은 모래만 보면 눈이 돌아갔고, 다른 친구들도 그런 듯 했다.

 10분 가량이 지났을까, 아이들은 이제야 신나게 흙놀이를 하려하는 듯 한데 체험실 활동은 마무리 되는 듯 했다. 선생님은 아이들 하나하나 옷에 묻은 흙을 털어주고 흙바닥 밖으로 인솔했다. 흙놀이를 떠나기 싫어하는 주형의 아쉬움이 CCTV 저화질을 뚫고 뒷통수에서 묻어나왔다.

 이어지는 시간동안에는 15분 가량의 짧은 쿠킹클래스가 있었다. 밀가루 반죽 같은 것을 아이들이 조물락거리길래 저러다 언제 완성하나, 싶었는데 어느덧 나타난 선생님이 능숙하고 빠르게 마무리 지어 금세 쿠키가 완성되었다.

 그것으로 손가락 네개를 펼친 비용이 든 50분간의 체험활동이 마무리되었다.

 선생님들은 커다란 봉지에 아이들이 만든 듯 선생님이 만든 요리와 오늘 진행했다는 수업내용이 적힌 종이를 담아주었다. 쿠키는 예쁜 잎사귀 모양이 그려진 플라스틱 상자에 야무지게 담겨있었고, 감성 가득한 베이지색 비닐봉지는 행여 그 가벼운 내용물의 무게에 터질새라 한껏 도톰했으며, 수업 내용을 10분 단위로 쓴 것같은 종이는 '자연친화'적인 인상의 황토색 종이에 '자연친화'적인 명조체 글씨로 빼곡히 채워져있었다.


 지혜는 집으로 돌아와 주형과 쿠키를 나눠먹으며 그 날의 전리품을 다시 훑어보았다. 결국은 쓰레기통으로 향할 그것들을 치우며 지혜의 머리에 '별시럽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었다.

 우리집 화장실만한 공간에 흙을 채워넣고 그것이 자연이라고, 이것이 흙이라고 일러준 그 시간들과 그들이 수업사진이라며 보내줬던 이쁜 아이의 사진들, 흐뭇해하는 부모들, 그리고 그 종국에 남겨진 예쁜 쓰레기들. 그 모순적이고도 어지러운 상황이 다소 불편하기도, 부끄럽기도 했던 것이다. 지혜는 주형의 인생샷을 메신저 프로필 사진으로 올리려다 그냥 덮어버렸다.


 "장사 잘하네. 사업수완이 좋은거지."

 그 날 있었던 일을 남편에게 얘기하니 남편은 그 곳의 사업 아이디어를 칭찬했다. 조금 속이 상해 공감능력 부족이냐?라고 다소 날서게 대답해도 남편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요즘 부모들 심리를 잘 건드린거지 뭐. 사진 예쁘게 나와서 자기도 기분 좋았다며. 메신저 프로필 사진 바꾸려고 했다며. 흙도 만지고 쿠키도 만들고, 뭐 하는것 처럼 해서 그냥 키즈카페랑은 달랐다며. 아이디어 좋은거지. 가격을 좀 더 높여 받더라도, 요즘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걸 더 좋아한다니까? 프리미엄을 내걸어야 소비자가 과시할만한 것도 생기지. 그걸 이용하는게 나쁜게 아니잖아. 장사꾼이 장사모델 잘 잡은건 사업 수완이 좋은거지. 뭐 사기치는 것도 아니고. 예쁜 쓰레기들을 만든 건 디테일이 좀 아쉽긴 하네. 거기까진 영악하지 못 했어."

 지혜는 틀린 말 하지 않는 남편이 더 얄미웠다. 그리고 그런 사업수완에 놀아난 것 같은 자신이 한심해서 더 화가 났다. 그런 지혜의 표정을 살피던 남편은 더욱 몰아쳤다.

 "자기 저번에 주형이 숲체험 보냈을 때도 말야, 거기 보낸건 뭐 상관없는데. 근데 그 날 자기 주형이 가방에 뽀로로 물병 사서 꽂아주는거 보고 내가 어이가 없더라. 그거 주형이가 집에 그대로 들고왔으면 그나마 낫지, 산에서 잃어버렸다며. 잃어버린거냐 그게, 결국 산에다 버린거지. 그래놓고 숲체험이 왠말이야. 그런 애가 어디 주형이 하나겠어?“

 지혜는 갈수록 자신에게 불리해지는 대화에 아 됐어, 라고 대충 소리높이며 자리를 떴다. 명백한 남편의 승리였다.


 

 

 오랜만에 온 친정은 언제나처럼 편안했다. 시간이 멈춘 듯 변하지 않은 인테리어, 깔끔한 엄마의 정성으로 유지되는 말끔한 집,  언제나 똑같은 특유의 비누향까지. 현관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익숙한 온기에 장시간 운전으로 쌓인 피로가 날아가는 듯 했다.

 지혜는 주형의 외투를 벗기며 모래가 많이 묻었을테니 의류관리기에 넣어야겠다 생각하다 아차 싶었다. 친정에는 의류관리기가 없었다. 외투라 세탁기로 빨 수도 없을 듯 했다. 벌써 홈웨어로 갈아입고서 안방을 나오는 엄마를 향해 물었다.

 "엄마, 이거 주형이 옷 어떡하지? 스타일러 돌리려고 했는데."

 엄마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그냥 탈탈 털어서 베란다에 널어놔라. 스타일러는 무슨."

 "그정도로 흙먼지가 털어질라나?"

 지혜의 되물음에 엄마는 의미 모를 코웃음을 쳤다. 지혜는 그런 엄마의 반응에 조금 민망해져 자신의 자켓과 주형의 외투를 베란다로 가져가 탈탈 털고 옷걸이에 걸어 주변을 둘러보다 바닥에 얌전히 놓여있던 페브리즈 집어 칙칙 뿌려 널었다.


 밖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왔기에 편하게 소파에 앉아 쉬자니 부지런한 엄마는 손주가 좋아하는 딸기를 씻고 꼭지까지 따 쟁반에 예쁘게도 담아왔다. 포크 쓰지 않고 손으로 집어먹으려는 주형에게 포크를 쓰라 이른 뒤, 지혜도 딸기 하나를 입에 넣었다. 입안 가득 느껴지는 상큼함에 피로회복제가 따로 필요 없을 듯 했다. 하긴 요즘은 귀한 과일보다 피로회복제가 훨씬 싸긴 하지만. 엄마는 딸과 손주를 번갈아 바라보고서는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무 빡빡하게 키우지 마라."

 갑자기 저를 향해 들어오는 지적에 지혜는 자동 방어태세를 갖추며 대답했다.

 "뭐? 내? 주형이를? 아, 지금 포크 쓰는거 때문에? 아니, 손 더러워지면 또 씻어야 되고 귀찮으니까 그렇지."

 엄마는 지혜의 방어에도 미소를 잃지 않고 말했다.

 "아니, 그것도 그렇고. 아까 옷도 그렇고, 산소에서 손 닦은 것도 그렇고. 니그도 다 조금은 더럽게 컸다. 그래야 면역도 생기고 하지."

 지혜는 '너희도 그렇게 컸다'라는 엄마세대의 전형적 공격에 전형적 대응책으로 대꾸했다. 그 때와 지금이 같습니까, 라는.

 "아니, 그때랑 지금이랑 같나. 그때는 지금처럼 환경오염도 덜 됐을때잖아. 지금은 공기도 안 좋고, 전염병도 심하고, 그러니까 그렇지."

 엄마는 왠일인지 답지 않게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손에 뭐 하나 묻었다고 물티슈 북북 꺼내쓰고, 마스크 하루에 하나씩 쓰고 버리고 할거가. 옷에 먼지 조금 묻었다고 스타일 그거 돌리고, 공기 나쁘다고 청정기 돌리고, 그릇 좀 편하게 씻겠다고 세척기 돌리고, 하루 종일 로봇청소기 돌리고. 니그가 그래 하니까 공기가 안좋아지고 전염병도 심하고 하는거 아니겠나."

 지혜도 지지 않았다. 오늘따라 엄마가 왜이렇게 환경운동가가 된 것인가.

 "아니, 그건 어쩔 수 없지. 그리고 그거 전기세 그렇게 많이 안 나온다. 주형이 뭐 기관지라도 안좋아져서 아픈 것보다 낫잖아. 예방 차원이지 뭐."

 "걸릴지 안걸릴지도 모를 병 예방한다고 주형이가 살아갈 세상을 더 힘들게 한다고는 생각 안 해봤나. 내는 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주형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 조금이라도 좋으라고 그런것도 신경쓴다. 내만 좋게 살았던게 미안해서, 저 조그만 애는 내가 살았던 좋은 세상을 못 산다는게 죄스러버서. 물티슈를 와쓰노, 집에서는 행주쓰고 나가서는 물로 손 씻으면 되지. 베란다에 옷 널고, 문 열어서 환기하고, 마스크야 필터만 바꿔서 끼면 되지. 애 데리고 뭐 체험 시킬라고 생각하지 말고, 애가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라. 니 옷도 좀 그만 사고. 내려올 때마다 새옷 안 입어도 잘 사는거 아니까네."

 딸 이렇게 타지에서도 잘 산다고 신경 써 새 옷만 입고 친정에 왔던 걸 엄마가 눈치 챈 듯 했다. 지혜는 무안해졌다. 낮에 애들은 자연에서 놀아야지 어쩌구 설파했던 자신이 생각나 더욱 그러했다.  


 지혜는 날로 더워지는 여름에, 지구 곳곳에서 들려오는 자연재해 소식에, 기후변화를 걱정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정말 지구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싶다가도 그 때 뿐이었다. 결국 일상으로 돌아왔다.

 수시로 물티슈를 뽑아 썼고, 다종다양한 세정제를 구비했으며, 인간의 편의를 명목으로 만들어진 똑똑하고 새로운 전자제품들을 사들였다. 배달음식들을 먹고서 배출되는 쓰레기들을 보며 다시 잠깐의 죄책감을 가졌다가도 야식이 땡기는 한밤의 식탐을 이기지 못 해 다시 자연스레 배달을 시키던 날들까지.

 


 따뜻한 햇살 아래서 뛰놀아 그런지 차에서 꽤 긴 낮잠을 잤음에도 코까지 골아가며 잠이 든 주형을 지혜는 바라본다. 엄마가 어린시절 놀았던 냇가와 무덤가, 본인이 놀았던 모래 가득한 놀이터를 이리저리 누비며 뛰노는 주형을 상상해본다. 작은 상가 건물에 갇힌 어딘가가 아닌, 파란 하늘 뻥 뚫려 싱그러운 공기가 불어오는 곳에서. 에어컨의 차디찬 바람이 아닌 따사로운 봄바람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식혀주는 곳에서.


 다음 친정 나들이는 대중교통을 이용해보아야겠다. 기차도 괜찮겠고, 버스도 나쁘진 않을 듯 하다. 손톱 밑 흙이 채 빠지지 않은 주형의 작은 손을 애틋하고도 미안한 마음으로 주물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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