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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글 Nov 22. 2024

완벽한 타인

 약간의 어지러움증을 동반 한 채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오래된 차의 탁한 엔진 소리만이 미세한 진동과 함께 좁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옆좌석에서 말없이 앞만 보고 운전하는 남편 옆에서 나 역시 입 한 번 뻥끗하지 않은 채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 뒤 옅게 일었던 멀미기운을 가셔 보고자 차가운 정수기의 물 한 컵을 가득 따라 마시고 곧장 침대로 가 누웠다. 

 "바로 눕지 마. 밥 먹고 약 먹고 누워."

 애정이라고는 조그마한 아이스크림 숟가락의 끄트머리만큼도 담겨있지 않은 듯한 남편의 메마른 한 마디에 나의 눈과 볼에는 방어할 틈 없이 눈물 한줄기가 주륵 흘러내렸다.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심하시네요. 일단 약을 처방해 드릴 텐데요, 가까운 정신과를 방문하셔서 지속적으로 치료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 병원은 예약이 많이 밀려서 당장 진료받기는 어려우실 거예요. 집 주소가... 그러네요, 거리도 멀고 멀리까지 힘들게 내원하실 필요는 없으시니까 집 주변 정신과 괜찮은데 알아보셔서 꼭 방문해 보세요. 그 동네 주변에 괜찮은 병원들도 많아요. 제가 진단서는 처방전이랑 같이 전달드릴게요."

 


 변기통 옆에서 처참히 쓰러져있던 나를 제일 처음 발견 한 건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딸 하진이었다. 하진의 말로는 내가 얼굴이 허옇게 질린 채로 변기 옆에 구겨진 채 있었단다. "꼭 살인현장 시체같았다구."라고 말하던 하진을 보고 남편이 하진이 말은 저렇게 해도 사실은 너무나 울면서 본인에게 전화를 해 처음에는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듣지 못했을 정도였다고 했다. 그래도 엄마한테 시체라니, 지지배가 말하는 꼴 하고는.

 하진이 구급차에 나를 태운 뒤 집에서 제일 가까운 대학병원에 당도했을 때쯤, 하진의 전화를 받은 남편 역시 차를 끌고 회사에서 곧장 병원으로 도착한 참이었다. 집에 혼자 있던 내가 무슨 연유로 쓰러진 건지, 그것도 왜 변기통 앞에서 그랬던 건지 알 길이 없던 둘은 내가 깨어나고 의사의 진단이 있기까지 한참을 보호자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신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쓰러졌을 당시에도 푹신한 매트 위에 쓰러졌기에 머리에도 큰 이상이 없었다. 

 1년 전, 사촌 언니가 이사한 집의 건식 화장실을 보고 너무 부러워 우리 집도 화장실만이라도 고치자 박박 우겨 꾸며놓은 화장실이었다. 세수를 얼마나 요란스럽게 하면 온 사방팔방으로 물이 튀는 건지, 도무지 건식 화장실을 쓸 줄 모르는 미개한 남편에게 당신은 안방 화장실만 쓰라고 이른 뒤 철저히 수호해 온 내 건식화장실의 폭신한 매트가 이번에는 내 생명을 살린 것이었다. 역시, 바꾸길 잘했다.


 정신이 깨어난 뒤 이런저런 검사를 마친 결과지를 보며 나에게 몇 가지를 더 묻던 의사는 나에게 정신과 진료를 같이 받아보아야겠다고 일렀다. 입원을 하며 추가로 정신과 진료를 받고서, 나는 그렇게 "중증 우울증" 진단을 받은 것이다.

 내가? 우울증? 

 


 입원한 지 3일 만에 퇴원했으니 집을 비운지도 3일이었다. 겨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나와 마주한 거실을 보고 있자니 집안 꼴이 말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옷가지들이며 쓰레기들에 머리가 다시금 지끈거렸다. 약이라도 먹고 누워있어야겠다 싶어 주방으로 향하는데, 이제야 제대로 눈에 들어온 개수대에는 뭘 먹었는지 알 길 없는 더러운 식기들이 그대로 쌓여있어 헛구역질을 유발했다.

 "밥 먼저 먹어."

 퉁명스러운 남편의 말에 식탁으로 눈을 돌렸더니 네모 반듯한 플라스틱 상자 안에 희멀건 죽이 담겨 있었다. 가게에서 포장해 준 그대로에서 뚜껑만 열려있는 그 죽을 도저히 먹을 기운이 나지 않았지만, 세상 대단한 일을 했다는 양 뿌듯하게 소파에 앉아있는 남편의 얼굴을 보아서라도 한 숟갈은 떠야 할 것 같았다.

 겨우 몇 걸음 발을 떼고 걸어가 식탁에 앉아 플라스틱맛이 깊게 배인 프랜차이즈 죽집의 떡진 참치야채죽을 차가운 자주색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조금 떠먹자니 속이 미식거리고 울렁거려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대로 숟가락을 놓고 물이라도 더 마셔야겠다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남편이 말했다.

 "더 먹어. 기껏 생각해서 사 왔더니."

 입에서 맴도는 플라스틱 향과 동시에 날아 꽂히는 남편의 말에 머리가 핑 돌았다. 

 "너나 먹어..."

 긴 시간만에 목소리를 내려하니 후두근이 미세하게 떨려오는 것까지 느껴졌다. 있는 힘을 다 해 쥐어짜 낸 내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지 남편은 "뭐?"라며 되물었다.

 "너나 먹으라고."

 남편은 그제야 내 말을 알아듣고서는 미간의 인상을 확 찌푸린 채 말했다.

 "뭐? 왜 이래 진짜? 집에서 편하게 잘 지내다가 갑자기 우울증이니 뭐니 왔다고 이 난리이질 않나. 기껏 연차 내서 퇴원시키고 죽까지 사다 바쳤더니, 뭐? 뭐가 그렇게 우울한데? 왜, 또 다른 엄마 누구가 명품백이라도 사서 우울해? 사촌 누가 집을 또 샀대? 코인이 올랐대? 뭐가 또 그렇게 당신을 우울하게 했는데? 어?"

 소파에서 몸을 딱 붙인 채 식탁에 있는 날 향해 쏘아붙이는 남편의 얼굴을 말없이 응시했다. 평소 같았으면 바득바득 되받아쳤을 테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것이 무용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저 소파에 앉아 있는 주름지고 배가 불룩한 남자는 누굴까. 새삼 낯설기만 하다. 20년 전 내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그이가 맞나.

 내가 그저 가벼운 감기에 걸린 것만으로도 오지 말라는 집 앞까지 주구장창 찾아와서 손수 끓인 어설픈 소고기죽이며 유자차를 갖다 바치던 그 남자랑 같은 남자가 맞나. 결혼 안 하면 한강에 가서 빠져 죽을 거라던 그 남자.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당신 몸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몸이라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말라고서는 정말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애달픈 노력을 하던 그 남자는 또 어디 간 걸까. 먹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것이 어떤 계절에 나는 무엇이건 상관 않고 어떻게든 대령하던 그 남자. 유독 컵라면이 먹고 싶던 그날, 왜 하필이면 몸에 안 좋은 컵라면을 먹고 싶은 거냐며 울먹이다 결국 컵라면 속의 라면과 수프만 쏙 빼어내고 작은 냄비에 다시 끓여 예쁜 그릇에 담아 바쳤었던 사람이었지.


 언제부터 변한 걸까 당신. 하준을 낳고 나서부터였나. 잠에 예민해 작은 소리에도 깨던 사람이 갓난아이가 한밤중에 울며 깨어나면 실눈 뜨고 자는 척하던 그때부터였을까. 아니면 둘째 하진을 낳으며 더 정신이 없어졌을 때, 당신도 이제 애 다 낳았으니 좀 꾸미고 다니라고 말하던 그때부터였나.

 

 "에잇"

 나의 말 없는 응시에 참다못한 듯한 남편은 소파를 박차고 일어나 그대로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쾅 닫힌 현관문의 떨림이 꽤 오랫동안 느껴졌다.

 현관문의 진동이겠거니 싶던 중 유독 식탁의 울림이 크게 느껴져 내려보았더니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발신자는 "엄마"였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의 가장 받고 싶지 않은 전화였다. 크게 한숨을 내쉬고 전화를 받았다.


 "어, 엄마."

 "김서방한테 연락받았다. 입원했었다며?"

 "어, 잠깐 어지러웠었나 봐."

 "병원에서는 뭐래?"

 "별일 없고, 그냥 스트레스가 조금 있대. 스트레스 관리하면 괜찮을 거래."

 휴대폰 너머의 엄마는 얕은 한숨을 쉰 뒤 대답했다.

 "어휴, 그 좋은 집에서 좋은 남편에 학교 잘 간 아들 두고 무슨 스트레스를 그렇게 받는다고 받는대. 배가 불렀다 증말. 뭐가 그렇게 스트레스였어?"

 조금 전 먹은 떡 같은 반 숟갈의 참치야채죽이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듯했다. 크게 침을 한번 삼켜 넘긴 뒤 대답했다.

 "뭐 이래저래 신경이 쓰였나 봐. 하준이 통학문제랑, 하진이 학교 공부도 있고, 김서방 회사 일도 있고 해서."

 휴대폰과 맞닿은 귀에서 다시 엄마의 한숨소리가 들리자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또 엄마를 실망시킨 건가. 전화를 끊어야 하나 싶었지만 차마 딸이 걱정되어 전화 한 엄마의 전화를 끊을 심성은 되지 못해 짐짓 철없는 딸로 가면을 바꿔 쓰고서 발랄한 체 말했다. 엄마는 나의 그런 가볍고 철없는 모습을 좋아하니까.

"아니, 근데. 김서방이 죽 먹으라고 가게에서 죽을 사 온 거야. 차갑고 떡진 게 너무 맛이 없는 거 있지? 엄마가 끓여준 따뜻한 시래기국에 밥 한사발만 말아먹으면 딱 좋을 거 같은데."

 말을 하면서도 감칠맛 가득한 엄마의 시래기국을 떠올리자니 자동 군침이 돌았다. 아니, 엄마의 따뜻한 시래기국은 당장에 먹지 못할지라도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리워서 그랬을지도. 하지만 엄마는 내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았다.

 "야, 요즘 남자들 중에 김서방 같은 사람이 어딨어? 와이프가 조금 아프다고 죽까지 사다 주고. 원래 엄마가 아프면 남편이랑 애들이 불쌍해. 애들 너 없을 때 뭐 해 먹었대? 김서방 얼굴 까칠해지고 애들 제대로 못 먹은 게 아주 안 봐도 비디오다. 그럴수록 니가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되는 거야. 그래야 스트레스고 뭐고 쌓일 틈도 없지. 일 안 한다고 집에만 있지 말고, 부지런히 움직여. 내가 늘 말했지? 일 안 할수록 니가 더 신경 써야 되는 거야. 김서방은 혼자 번다고 얼마나 힘들겠니? 돈 벌어오는 김서방한테 고맙다~ 생각하고 그냥 집안만 잘 돌보면 될 텐데 뭘 또 그렇게 신경을 써. 예나 지금이나 너 그 예민한 성격 좀 고쳐야 된다니까."

 "엄마 잠깐만, 내가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전화를 끊은 뒤 그대로 화장실을 향했다. 변기 뚜껑을 열어젖히고 가슴께에 걸려있던 그것을 구역질과 함께 토해냈다. 덩어리진 참치야채죽의 흔적이 튀어나와 고스란히 변기 안에 떠다녔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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