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처럼 되지 말아야지.
결혼과 동시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오빠를 가졌던 엄마는 첫 아이로 무려 '아들'을 낳았다는 연유로 시어머니, 그러니까 나에게는 할머니인 그 여자에게 인정받기 시작했다. 결혼 당시에는 엄마가 금쪽같은 자신의 아들에 비해 부족하다며 탐탁지 않게 여겨 교묘하면서도 악랄하게 엄마를 괴롭히던 할머니가, '손자'를 낳자마자 태도가 완전 달라졌던 것이다. 미움만 주던 사람이, 미움을 거두다 못해 사랑을 듬뿍 주니 엄마는 새로 태어난 것만 같다고 했다. 그 매개체가 본인이 낳은 아들이란 사실이 그것을 더욱 뿌듯하게 했다. 할머니에게 받는 인정만큼 그에 곱절과 곱절을 더해 오빠를 사랑으로 키운 엄마였다.
그 뒤로 3년 뒤, 내가 태어났다. 오빠 하나로 만족하지 못했던 건지 할머니는 가랑이 사이에 뭔가를 달고 태어나지 않은 나를 언제나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런 할머니의 눈치 살피던 엄마는 "아들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지 뭐야." 라던지 "첫째로 아들을 낳았길 망정이지"라는 말을 아직 어린 꼬마였던 내 앞에서도 스스럼없이 해댔다.
명절마다 가끔 보는 할머니가 반가워 아빠 차에서 내려 한달음에 할머니에게로 달려가면, 할머니는 버선발로 집에서 나와 내 옆을 곧장 지나치고는 차에서 느적느적 내리고 있는 오빠에게 다가가 모든 게 시큰둥한 그를 아랑곳 않고 두 팔로 와락 껴안아 맞이했었다. 엄마는 그 옆에서 흐뭇한 미소를 띠우고"손주가 저렇게 좋으실까."중얼거리며 머쓱한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 여자들의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았던 걸까. 지독한 여자들.
엄마처럼 되지 말아야지.
공무원인 아빠의 돈벌이가 마음에 차지 않던 엄마는 본인의 아들은 꼭 돈 잘 버는 전문직을 시키겠노라 그가 아직 돌이 채 되지 않을 적부터 마음먹었었다. 아빠의 월급보다 비싼 전집을 집에 가득 들이고, 아침저녁마다 영어노래가 나오는 카세트 테이프를 틀어놓았으며,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좋은 학원에 아들을 보내기 위해 운전을 배워 이리저리 바삐도 돌아다녔다. 하지만 오빠는 엄마의 열정을 따라잡지 못했다. 애초에 멍청한 머리를 갖고 태어난 오빠였다.
반면 오빠의 어깨너머로 이것저것 습득하던 나는 모든 걸 빨리 익힐 수 있었다. 오빠 보라고 사놓은 깨끗한 전집은 몽땅 내가 읽었고, 오빠 들으라고 틀어놓았던 카세트테이프는 내 귀로 들어와 내 입에서 달달 흘러나왔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보여주던 작은 칭찬과 애정에 조금씩 취해가던 어느 날, 오빠가 여느 때와 같이 수학문제 하나로 엄마와 씨름하던걸 옆에서 슬쩍 보던 나는 연필과 스케치북을 펴고 문제의 답을 써서 엄마에게 보여주었다. 엄마는 놀란 토끼눈이 되었고, 실로 이제껏 받아본 적 없는 칭찬폭격을 내려주었으며 그 기억이 여태 아직 나를 망치고 있다.
"너는 하나만 가르쳐줘도 다 아는데, 네 오빠는 왜 저러니."
"똑똑한 건 네가 날 닮아서 더 똑똑한데. 오빠는 학원을 다녀도 모르는걸 너는 그냥 보기만 해도 아네."
엄마는 돈을 쓰지 않아도 척척 해내는 나를 칭찬했고, 어린시절의 나는 그 칭찬에 취해 더 애처롭게 노력했다.
티브이를 보며 실실 웃는 오빠 옆에서 눈이 티브이로 향하는걸 꾹 참고 부러 책을 무릎 위에 펼쳐 읽어 엄마의 칭찬 한 마디를 갈망했고 밥을 질질 흘리고 편식하는 오빠를 비웃듯 똑 부러지는 젓가락질로 김치를 쭉 찢어 세상 맛있는 반찬인 양 우걱우걱 씹어먹었다. 헛구역질이 나는걸 꾹 참고서 엄마를 바라보면, 엄마는 평소 지어주지 않던 미소로 나를 칭찬했다. 어른이 된 난, 이제 김치를 먹지 않는다.
엄마처럼 되지 말아야지.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엄마는 나를 여전히 칭찬했고 덜떨어진 오빠의 뒷담을 했지만 뭔가 이상했다.
네 오빠는 편식을 하니까, 라며 고기반찬은 오빠 쪽에 가깝게 두는 건 예사. 네 오빠는 혼자서 공부하기 힘들어하니까,라는 이유로 이런저런 공부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기도 하고 네 오빠는 숫기가 없어서, 라며 학교 행사는 오빠의 것만 챙겨 꼬박 다니는 엄마였다. 3살 터울인 오빠와 나의 학교 졸업식이 매번 겹쳤는데 나에겐 엄마와 함께한 졸업식 사진이 단 한 장도 남아있지 않다.
나는 멍청하게도 오랜 시간동안 그것을 진실인 것 처럼 여기고, 모자란 오빠때문에 엄마가 속상하겠거니 라는 마음과 나도 오빠처럼 모자라게 굴면 더이상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겠구나 싶은 마음이 뒤섞여 더욱 더 치열하게 엄마의 사랑을 갈망했다. 엄마가 사실 진짜 사랑하는 건 나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다 내 머리도 커지면서 그것이 부당하고 느끼던 순간이 찾아왔다. 친구들과 엄마 얘기를 하다 내 사정이 뭔가 심상치 않고 볼썽 사납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마음먹고 이를 엄마에게 말하던 적이 있었다. 마침 오빠의 사춘기와 겹쳤던 그 시기에, 엄마는 이 순간만 기다려왔던 사람인 양 본인의 마음속에 있던 온갖 감정들을 나에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엄마가 왜 그랬냐면 말이야. 사실은 너무 힘들었다는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 무능한 아빠의 이야기, 아빠 닮아 뭐가 될지 모르겠다는 오빠에 대한 이야기까지. 점점 선을 넘던 엄마는 어느 날 이런 말까지 나에게 털어놓았다.
"딸, 이건 비밀인데 말야, 니가 이제 고등학생이 됐으니까 말해주는 건데. 사실 요즘, 엄마가 니 아빠말고 다른 아저씨가 더 좋다? 알지? 우리끼리 비밀인 거."
적잖이 충격받은 내 얼굴을 앞에 두고서 엄마는
"아휴, 인생이 재미가 없어. 그래도 네가 있어서 엄마가 산다."
라는 달디단 말로 나를 녹였다. 멍청하게도 나는 그 말을 30년 넘게 믿었다.
엄마처럼 되지 말아야지.
공부머리 없던 오빠는 첫 수능을 망쳤지만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넉넉지도 못한 형편에 재수며 삼수며, 과외며 학원이며,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오빠의 지난한 4수는 마침 내 수능과 겹치는 시기였다. 집에 보온도시락이 하나뿐인데 너는 뜨거운 밥을 잘 먹지 못하니 일반 도시락에 점심을 쌌다는 엄마에게 건네받은 차디찬 플라스틱 도시락을 들고서 쓸쓸히 수능 고사장을 버스 타고 이동해야 했다. 집에 한 대 있던 차 역시 오빠의 4수를 위한 고사장을 향해야 했기에.
5수를 고민하는 오빠 옆에서, 잔주름과 시름으로 가득한 엄마 앞에서, 수능이란 것을 한 번만 치고도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단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난, 또다시 별 쓰잘데기도 없는 인정욕구가 발동했던 난, 평소 생각하지도 않았던 대학의 관심도 없는 과에 지원하여 단번에 합격했다.
엄마는 역시 딸이 최고다,라는 말로 나를 잠깐 북돋아주고는 오빠의 손을 잡고 5수까지만 해보자 계획했다.
엄마처럼 되지 말아야지.
기어코 회계사 아들을 만들어 낸 우리 엄마는 첫 회사에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하겠다는 오빠를 머리끈 둘러메고 결사반대했다. 미친놈이 여자한테 눈이 돌았다, 불여시 같은 게 우리 아들을 홀렸다, 여태 어떻게 키웠는데, 같은 삼류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대사들을 줄줄 읊으며 끙끙 앓아댔다. 이제껏 그랬듯 유난스런 엄마에 별 반응이 없던 오빠는 엄마의 우는 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결혼을 추진시켰으며, 본가와 멀리 떨어진 곳에 신혼집을 차리며 독립의 정점을 찍었다.
"야, 니 오빠 봐라. 저렇게 남자는 여자 하나 잘 못 만나면 인생 망치는 거야."
"망치는 뭘 망쳐. 새언니 괜찮아 보이던데 왜."
"괜찮기는. 여자애가 기만 쎄 가지고. 니 오빠가 이제 벌기 시작하는 돈 왕창 다 쓰겠지."
"뭐래. 새 언니도 회계산데. 같이 벌면 더 빨리 모으고 좋지 뭐."
"야! 넌 누구 편이야? 내가 니 오빠한테 들인 돈이 얼만데! 고작 몇 년 벌어 합쳐도 안돼! 지가 지 힘으로 회계사가 된 줄 알아? 누가 만들어준 자린데! 내가 들인 시간이 얼만데! 여지껏 내가 뭘 포기하면서 살았는데!!"
진짜 엄마처럼은 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