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페이퍼 ㅣ 나의 삶은 동화다 ㅣ 01
잠도 깰 겸 이른 아침에 들른 카페, 플랫화이트(주1)를 살짝 입술에 대는 순간, 바로 옆 테이블에서 '까르르!!' 웃으며 엉덩이를 들썩이는 3살 여아가 나를 사로잡았다! 그런데 내 눈을 더 빠르게 이동시킨 정체는 바로 그 아이의 손끝에 있는 '플랩북'이었다!
심장이 심하게 뛰었다.
나도 모르게 내 엉덩이가 들썩였고
나는 벌써 아이에게 달려갈 기세였다.
어쩌지?
나도 읽고 싶다!
나도 보고 싶다!
엄마 대신 내가 옆에 앉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
꼬마야! 낯선 한국 아줌마지만,
네 옆에 앉아, 같이 책을 읽어도 될까?
같이 플랩을 열어도 될까?
너무너무 읽고 싶은 내 심정을 애써 가라앉히고 온 것을 나는 후회한다. 당장 가서 말할걸!
나는 계속, 아직도, 여전히 그 책이 궁금하다.
17살, 9살 아이를 키우는 아줌마가 이렇게 동화책에 흥분하는 건 좀처럼 어디 내세울 만한 정신 상태는 아니라고 여긴다. 그래서 사실 내가 이런 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나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쑥스러우니까, 나만 알고 싶은 엉뚱한 비밀이니까, 남들이 어떻게 볼까 싶어 밀려드는 두려움도 있으니까.
그래도, 난 동화가 정말 정말 정말 좋다고 여기서 소리치고 싶다. 왜? 나도 모른다. 그것을 설명하려면 수천 개의 이유를 갖다 대도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그냥 좋아", “그냥 그러고 싶어”라는 얌체 같은 대답만이 전부이고 정답이다.
우리 집은 대가족이다. 우리 아이들 외에 이빨요정, 충치마왕, 두더지도둑, 엉덩이탐정, 마술연필, 기다리는 토끼, 딩고 … 수많은 동화 속 주인공들이 모두 나의 가족이다. 낯선 이와 얘기할 때 얼굴이 빨개지고 목소리까지 떨리는 나이지만, 혼자 있는 집에서는 하루종일 이 요상한 아이들과 쉴 새 없이 재잘대는 수다쟁이가 된다. 심지어 그들에게 말할 틈도 주지 않는다. 그냥 나 혼자 신나서 계속 말을 건다.
“두더지 도둑! 훔쳐간 레시피 좀 다시 가져다줄래? 우리 딸이 크림 파스타 먹고 싶대.”
“마술 연필아! 나를 하나 더 그려줄 수 있어? 지금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이빨 요정! 우리 아들 이빨 가져가줘서 고마워. 우리 아들이 10불 받았대.”
“토끼야. 아들 옆에 잠깐만 있어줄래? 내가 금방 갈게.”
아참! 이 많은 가족 중에 나와 유일하게 많은 대화를 나누는 녀석은 바로 내 책상 위에 있는 스누피(주2), 십년지기 친구다. 호주까지 따라왔다. 내가 그림을 그리다 글을 쓰다 멍하니 공상에 빠질 때, 꼭 그 녀석과 눈이 마주친다. 그 순간, 그 녀석은 나를 위로한다 “힘들지?”. 다시 스누피에게서 에너지를 받을 시간이다. 수다를 떤다.
“나는 지금 <소로의 일기>(주3)를 읽고 있는데, 너는 무슨 책을 읽고 있니?"
“스누피! 오늘 너는 하늘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어? 나는 호주의 12월 하늘이 아직도 너무 신기해"
“어! 나랑 같은 제목을 지었네? <너무 늦게 배운 것들>, 우리 같이 글을 쓸까? ”
“고마워. 근데 나도 알아, 나도 내가 참 좋거든”
나는 나의 엉뚱함마저 행복한 동화작가다! 시간을 잊게 할 정도로 스누피와 신나게 대화하면서 나는 또 느낀다. 내가 동화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것을 말이다. 여기서, 어른인 내가 ‘동화’에 푹 빠진 이유를 두 가지만 분명하게 말해보려 한다.
첫째, 순수함 때문이다!
나는 순수함을 잃고 싶지 않다. 순수한 모든 것을 지키고 싶은 욕구도 강하다. 나무, 꽃, 하늘, 아이, 인형, 심지어 햇볕에 뽀송뽀송하게 말려있는 빨래도 좋고, 내 모습을 깨끗하게 보여주는 거울도 좋다.
나에게 '순수'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순수에 대해 우리는 누구나 ‘아이’를 떠올린다. 나도 그렇다. 낙타가 자신의 다리를 굽혀 삶의 무게인 짐을 등에 짊어지고 그 광활한 사막을 뚜벅뚜벅 걷듯 우리의 인생도 그러할 것이다. 걷던 낙타는 사자의 정신으로 삶을 헤쳐나가지만, 거대한 용의 이끌림에 의해 사자의 정신을 아이의 정신으로 변화시켜야 함을 알게 된다.
“어찌하여 사자는 또한 아이가 되어야만 하는가? 아이는 순결이요, 망각이며 새 출발이고 유희이며 스스로 돌아가는 바퀴요, 최초의 운동이며 신성한 긍정이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주4)
동화작가인 나도 아이와 같아야 한다. 늘 창작을 해내려면 최초의 운동을, 신성한 긍정으로 뿜어내야만 한다. 이렇게 나를 계속 순수한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동화와 평생 함께 살고 싶다.
둘째, 동화는 내 꿈의 실현이기 때문이다!
다시, 플랩북에 빠져있던 꼬마에게 묻고 싶다. "너는 왜 그 플랩북이 좋아?" 꼬마의 손에 잡혀 있는 플랩북은 꼬마의 꿈을 대변한다. 그 꼬마도 플랩북에서 그녀만의 꿈을 찾았을까. 모든 이들이 다 동화를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동화에는 모든 이들의 꿈이 담겨 있다.
나의 새로운 꿈도 동화책에서 찾았다.
내가 아이들에게 읽어줬던 영국작가의 동화책 <눈사람 아저씨>(주5)! 그리고 나는 다이어리에 나의 다짐을 적었다. 동화작가가 되어야겠다! 영국으로 가서 일러스트를 배워야겠다!!!! 볼펜으로 꾹꾹 눌러쓰고, 느낌표도 여러 개 달아주었다. 어디에도 달아나지 못하게 꼭꼭 숨겨놨었다.
그리고, 나는 2023년 11월.
그 다이어리를 다시 꺼내보면서 나는 한참 멍해 있었다.
이게 현실이야? 꿈이야?
이게 꿈이야? 현실이야?
영국은 아니지만, 그때의 바람보다 더 꿈같은 호주의 자연 속에 내가 앉아 있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난생처음 보는 꽃들이 내 주변에 가득하고, 사방이 푸릇한 자연이 나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주는 곳에 앉아 있었다. 나는 이미 자연에서 일러스트를 배웠다. 맑고, 순수하고, 빛나는 자연을 그대로 그림으로 담으면 되었다.
이제 나의 꿈은 더 이상 버킷리스트 위에 있지 않다.
이미 나는 동화 속에서 찾은 나만의 꿈길 위를 걷고 있다.
꿈이 현실이 되었다.
현실이 동화가 되었다.
동화가 나의 일상이 되었다.
나는 다시 꿈을 꾼다.
자연 그대로의 진실된 순수함을,
맑은 영혼을 지닌 아이의 순수함을,
내 안에서 찾은 나만의 순수함을
나의 글과 그림으로 정성을 다해 담아,
모두에게 선물하고 싶다.
동화에서 찾은 모든 이들의 꿈은 현실이 되니까…
“세상 사람들이 가장 듣기 좋아하는 이야기는 교훈을 갖춘 우화다. 아이들은 우화 자체로만 읽으나 어른들은 우화에서 아울러 교훈을 읽어낸다. 우화로 이야기된 진실은 추상적임에도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으므로, 추상적인 진술이 갖는 최고의 이점을 누리게 된다. 여러 생각을 이을 접착제로 우화가 아닌 그 무엇을 생각해 낼 수 있겠는가? 손질한 흔적 없이 여러 생각을 이을 방법이 우화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주6)
(주1) 플랫화이트: 뉴질랜드에서 시작된 호주의 대표커피 (에스프레소와 마이크로폼으로 구성된 커피 음료)
(주2) <스누피, 나도 내가 참 좋은걸>: 스누피는 멋진 미국 소설을 쓰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주3) <소로의 일기> / 미국의 사상가 겸 문학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쓴 25년간의 일기
(주4)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 소설
(주5) <The Snowman> 레이먼드 브릭스/ 1978년 출판 /글자 없이, 그림만으로 되어있는 일러스트 동화책
(주6) <소로의 일기>1852년 1월 28일
금요일, <나의 삶에는 동화가 있다> 2편이 이어집니다.
앞으로 연재되는 [메이페이퍼]들입니다
화 / 금 - <나의 삶은 동화다> 연재
수 / 토 - <호주에서 나는 5살이다> 연재
목 - <정근아 우화집(가제)> 연재
매달 12일 <메이페이퍼의 브런치 성장일지> 매거진 발행
<메이페이퍼의 영어버전>매거진 발행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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