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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Dec 15. 2023

세 번의 고백으로
나는 작가가 되었다

메이페이퍼 ㅣ 나의 삶은 동화다 ㅣ 02


참 신기해.

왜 내 가족들은 나를 그냥 믿지?

그들은 내가 하는 말이면, 모두 믿어버린다.

아무런 반대를 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고, 다시 물어보지도 않는다.






첫 번째, 뜬금없는 고백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다. 아들에게만 나의 비밀을 살짝 털어놨다. “엄마는 작가가 될 거야. 그래서 요즘 엄마가 다시 바빠진 거야. 그리고 앞으로도 바쁠 것 같아" (그러니까 '아들! 너는 앞으로 너 혼자 잘 살아야 해…'라는 의미도 포함하는) 뜬금없는 나의 선전포고였다.


사실, 그 말은,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다. “나는 작가가 될 거야!” 내가 맘먹은 일을 계속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나온 말이었다. 아들에게 말한 것이 거짓말이 되면 안 되니까. 아들에게 말하면 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열심히 글을 쓸 테니까. 내 의지가 꺾이기 전에 먼저 선포를 한 것이었다.


아홉 살인 아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 멀뚱멀뚱 나만 쳐다보고 있다. 당연했다. ‘작가'라는 한국말을 처음 들었으니 말이다. 차근차근 한국말과 영어를 섞어가며, 작가에 대해 설명을 해줬다. 그날부터 아들에게 ‘엄마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다. 어쩌면 아들의 친구, 선생님까지 모두 이미 나를 작가로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며칠이 지나 아들이 나한테 물었다. “엄마, 언제 책 나와?”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고 싶단다. 참 순수하게 엄마를 믿어주는구나. 벌써 엄마의 책을 기다리다니. 엄마의 말을 그대로 믿어주는 아들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두 번째, 눈치 보이는 고백


며칠 뒤, 딸이 내 옆을 계속 눈치를 보며 서성인다. 엄마는 도대체, 뭘 하는데 며칠째 방에만 있는 거지? (밥도 안 하고) 그런 표정으로 나의 컴퓨터 스크린을 살핀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딱히 해야 할 일이 없는데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나는 혼자 찔려서, 수줍은 고백을 했다. “요즘~ 엄마가 글을 써~.”라고 했다. “아~” 그러고 만다. 그냥 인정이다.


너무 고마웠다. 가장 든든한 독자를 얻은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딸에게도 ‘엄마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다. 딸 덕분에 나도 나 스스로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준비하는 작가야!!” 아들과 딸에게 고백을 하고 나는 당당해졌다. 나의 꿈이 더 확실히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딸은 내년에 고3이 된다. 그럼에도 딸아이는, 내가 글을 쓰다가 저녁밥 하는 것을 까먹어도, 그림을 그리러 아트 스튜디오 다녀오느라 엄마의 에너지를 다 쓰고 와도, 새벽에 일어나 책 읽고,  글 쓰느라 잠이 모자라 하품을 하며 졸려해도. 아무런 투정을 하지 않는다. 그냥 나의 이런 모습을 받아들였고, 말 없는 지지를 보여줬다. 딸아이만의 말없는 사랑방식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오후, 브런치 작가가 된 지, 3일째. 새로운 작가의 삶에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난 또 딸아이를 픽업하러 가는 시간을 깜박했다. 40도가 넘는 여름길을 혼자 걸어오게 해서 미안했다. 문 앞에 서 있는 그녀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 얼마나 미안하던지. 하지만 아무런 투정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간다. 이해해 줘서 고마워. 엄마딸~.)


엄마의 수줍은 고백에 말없는 사랑으로 보답해 주는 딸이 너무 든든했다. 엄마의 꿈을 먼저 지지해 주는 그녀의 마음이 너무나도 소중했다. 사실 나도 우리 딸을 믿기에 엄마는 이제 엄마일을 시작해도 된다는 것을 안다. 나의 이런 마음을 그녀도 이미 알고 있으리라.



세 번째, 어려운 고백


이제 신랑에게만 말하면 되었다. 신랑에게는 좀 더 준비된 상태에서 말하고 싶었다. 대학원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는데, 디자인회사에 취직하지 않고, 갑자기 작가라니. 사실 눈치가 보였기 때문에 선뜻 말할 수 없었다.  뭔가 내세울 것이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랑과 대화도중, 나는 그에게 고백해 버렸다! 갑작스러운 공개였다. 신랑도 잠깐 당황스러운 지, 멍한 표정을 짓더니, 바로 원래 하던 우리의 대화를 이어갔다. 고백은 바로 받아들여진 거다. 근아가 작가가 되고 싶다 하니. 작가가 되겠구나. 그는 그리 생각했던 것 같다. 무조건 지지다. ‘그래 … 그럼, 나는 계속 글을 쓰면 되는 거지?’ 나 혼자, 대답을 들었다 쳤다. 얼떨떨했다. 신랑의 반응은 엉터리였지만, 그의 믿음은 깊었다.





진짜, 왜 우리 가족들은 나를 그냥 인정해 버리는 거지?

선전포고를 해도 무서워하지 않고,

고백을 해도 말 없는 사랑으로 대신하고,

공개를 해도 비공개로 내 비밀을 지켜준다.

참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고백을 준비하면서 얼마나 떨렸는데 이렇게 끝나버리다니.

모든 것이 순식간이었다.


첫 번째 고백에서, 나의 꿈은 세상으로 나왔고,

두 번째 고백에서, 나의 꿈은 선명하게 보였고,

세 번째 고백에서, 나의 꿈은 벌써 저만치 가고 있었다.


세 번의 고백으로 나는 작가가 되었다

세 번의 고백으로 나에게 독자가 생겼다.

세 번의 고백으로 나의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세 번의 고백으로 나의 미래는 결정되었다.

세 번의 고백으로 나는 동화와 살고 있다.

세 번의 고백으로 나는 '근아' 작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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