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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May 27. 2024

영어동화책을 사랑하는 디자이너

북디자이너, 일러스트 작가, 패션디자이너의 시선으로_ 01

지난 몇 주간, 북디자이너, 패션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글을 적었고, 오늘은 이 모든 경험을 토대로,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적어 볼까 합니다. 멀티 디자이너의 일상이야기입니다.


호주에 살고 있다.


영어!

솔직히 말해 정말 지긋지긋하다.

그런데 너무너무 사랑한다.


내 나이 48.


동화책!

솔직히 말해 정말 유치하다.

그런데 너무너무 사랑한다.


요즘 영어동화책에 빠져있다. 구체적으로는 초등 저학년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책인데, 150 - 250페이지 정도 되는 소설책 안에 내가 좋아하는 일러스트들이 가득하다. 한때는 좀 더 어린 유아들을 위한 그림 동화책만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몇 개의 일러스트만이 담긴 어린이책의 내용에 빠져들고 있다.


내가 우리 동네 근처에 있는 서점 중 제일 좋아하는 서점이다. 만 9살 아들의 위한 책 쇼핑을 하기 위해 이곳에 와서는 나를 위한 동화책과 어린이 책만 가득 살 때가 많다. 사실, 쇼핑을 제안할 때부터 '아들을 위한 쇼핑'은 핑계다. 나를 위한 동화책을 사고 싶어서 가는 서점이다. 아들은 "왜 엄마가 동화책을 왜 그리 많이 사냐"고, 항상 투덜투덜 잔소리가 많지만, 그저 나는 미소를 지으며 "일러스트가 너무 이쁘잖아." 그럼 만사오케이. 무사통과다.


북디자이너로서, 일러스트 작가로서, 동화책 작가로서, 당당하게 동화책을 즐기는 방법이다. 왜 50이 다 되어가는 아줌마가 어린이책을 좋아하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 아들이 없어도 나는 어린이 책 코너는 꼭 들러보는 편이다. 그러면 꼭 내 손안에 책이 여러 권 따라온다. 양심이 있을 때는 그중에서 딱 한 권만 가져오고, 마음이 후할 때는 모든 책을 가져온다. 지금도 사진 속에 남겨두고 온 책들이 아른거린다. 오늘도 책 쇼핑을 한번 가볼까? 생각만 해도 심장이 쿵쾅거린다.



Copyright 2024. 정근아 All rights reserved.

내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다. 첫 번째 책은 모르는 영어 단어에 노랑 형광펜 하이라이트를 치며 좀 더 자세하게 정확하게 읽고 있다. 두 번째 책은 모험을 통해 자기를 찾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에 빠져있고, 세 번째 책은 일러스트를 보느라 아직 글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요즘 일주일 사이, 어린이 책에 더욱더 빠진 이유가 있다.


첫째는, 최근에 읽기 시작한 벽돌 같은 1500 페이지의 몽테뉴의 철학책과 여러 가지 성공학 책을 읽다 보면, 잠시 현실을 잊고, 천진난만한 아이스러움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럴 때, 동화책, 어린이 책을 꺼내 읽는다. 그냥 미소가 지어진다.


하지만 어린이를 위한 책에서도 그림과 함께 표현된 순수함이 담긴 철학을 발견할 때가 많다. 내용면에서도, 어른들 책 못지않은 깊은 내용이라 한참 동안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생각을 하는 경우도 많다. 아이들의 어드벤처는 어른들의 성공학 실천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배울게 많다는 생각도 든다. 막무가내로 전진, 그리고 그 과정을 그대로 즐기는 아이들. 참 부럽다.


두 번째는, 내가 그냥 어린이 책이 아닌, 영어 어린이책이라 말한 건 영어로 어린이 책을 읽는 재미가 꽤 흥미롭기 때문이다. 번역된 책이 아닌, 작가가 선택한 영어단어 그대로를 읽으면, 왠지 이리저리 돌려 말하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말하는 느낌이 아닌, 너무 직설적으로 말해서 예상치도 못한 따끔한 한방을 맞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아! 이런 표현을 하고 싶어서, 이 단어를 사용했구나!


처음 접하는 단어는 더욱더 그러하다. 일단 한 챕터를 읽고 나서, 다시 단어 뜻을 찾아보는 편인데, 이때의 쾌감이란. 애매모호하게 예측하며 읽어갔던 단어들이 내가 읽은 부분의 이야기를 선명하게 해 준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이미지들이 더 확실해지는 기분이다. 흐렸던 렌즈 속 풍경이 초점이 맞춰지는 느낌이랄까.


더 나아가서는 이는 영어공부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나의 한글 글을 묘사하는데 알게모르게 도움을 주고 있다. 이건, 진짜 새로운 경험이었는데, 영어는 한글과 어순이 다르다 보니, 영어로 직독을 하며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다양한 시각으로, 혹은 글을 읽는 접근방식을 달리하여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적이 있다. 이는 나의 일상생활에 꽤 흥미로운 시선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세 번째는, 원래 소설을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소설을 읽는 재미를 이제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2주 전 나에게 일러스트를 부탁했던, 나의 영어발음 튜터 겸 코치, 다니엘의 짧은 글 세 개를 읽고 나서 아직까지 꽤 짙은 여운이 오랫동안 남아 있다. 다니엘의 이야기들을 진심으로 느끼고 싶고, 그것을 제대로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졌다.


그래서 그동안 일러스트만을 보기 위해서 구입했던 어린이 책들을 다시 꺼내 읽고 있다. 일러스트에 담겨 있지 않은 더 많은 이야기들이 책에 담겨 있다. 유치할 거라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내 생각과는 다르게 꽤나 진지하고 흥미로웠다.


이렇게 어린이 책을 읽는 재미를 알면서, 일러스트에 대한 사랑이 더 커지고 있다. 짧은 글을 여러 장의 그림으로 표현하는 유아 그림동화책과는 달리, 긴 이야기를 하나의 일러스트로 요약하여 표현하는 재미를 이제는 알듯하다. 이렇게 또 배워간다.


마지막으로, 패션 디자이너였던 이로서, 일러스트에 나오는 모든 의상들은 나에게 영감을 준다. 의상에 따라 표현되는 캐릭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모자 하나, 리본하나, 심지어 양말의 길이에 따라 달라지는 캐릭터의 독특함이 달라지고, 생명력이 살아난다. 그래서 요즘, 더욱 동화책에 빠져있다. 내가 그리고 있는 여러 가지 동화책의 캐릭터 설정단계에서 이러한 캐릭터 관찰은 필수이기 때문이다.



< 2024년 5월 넷째 주의 일상과 생각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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