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에 호주를 담다.
집 앞 도서관에 왔다.
카페대신 오늘 도서관을 찾은 건 동화책 리서치를 하기 위해서다.
대형 서점대신 오늘 이 도서관을 찾은 건 내일 좋아하는 어린이 코너에 앉아 작업을 하고 싶어서다.
이 도서관의 어린이 코너는 나에게는 말 그대로 힐링 공간이다.
처음 이 동네에 이사하기 위해 집을 알아보러 올 때, 호주에 살고 있는 사촌은 흥분해서 이렇게 말했었다.
"언니!! 거기 도서관 좋아요!! 크지는 않은데, 저희 신랑은 일부러 거기까지 기차 타고 가서 공부하잖아요!!" 도서관이 좋다고? 호기심이 생겨서 진짜 처음 이 동네를 방문했을 때, 도서관도 함께 확인했었다. 아... 이걸 말하는구나. 바로 반해버렸다. 이제는 이 도서관을 좋아해서 이 동네를 떠나기 싫을 정도다.
한동안 집에서 작업하느라, 이곳에 자주 오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와보니, 왜 여길 잊고 있었나 후회되었다. 앞으로 자주 와야겠다 싶다.
사실, 호주에는 한국과 같은 시설 좋은 어린이 도서관이 따로 있지는 않다. 예를 들어 판교 어린이 도서관이나 판교 현대백화점 위에 있는 어린이미술관 같은 곳 말이다. 하지만, 판교에 살 적에, 그곳들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도서관 안에서 자연을 눈에 담아본 적이 있던가?' 아무리 기억을 해도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일러스트의 동화책을 골라 가장 가까운 책상에 앉았다. 이곳은 어른들에게는 인기 없는 공간이다. 가끔 이곳에서 스토링텔링 이벤트를 하기도 하고, 옹알이를 하는 아이들이 여기저기 기어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엔, 아이들은 나에게 살아있는 영감을 준다. 엄마와 아이들이 짝을 이루어 책을 읽는 모습은 나에게 동기부여를 준다. 그러면서 나의 일러스트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가끔은 창밖의 나무들과, 하늘 속 구름들과, 반짝이는 햇살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그저 자연을 만끽하라고 나에게 자유의 시간을 허락한다. 자연에서 영감을 받으면 그만이니 말이다. 내 눈에 담기는 모든 것이 특별하고 소중한 요즘이다.
일러스트 작업을 끝내고, 브런치북 글을 이곳에서 쓰고 있다. 오전의 따스한 햇살의 흔들림 속에 앉아 있다. 이곳에 앉아 있으면, 건물 안에 있지만, 자연 속에 앉아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안전하게 보호된 야외의 느낌이라 탁 트인 공간임에도 안락함은 덤으로 느껴진다.
호주에 있다 보면, 실내에 있으면서도 나의 공간이 이렇게 자연과 연결되어 이어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자연 속에 건물을 지었다는 개념을 넘어서서, '내가 자연 속에 살고 있구나', '내가 호주의 자연을 잠시 빌려 쓰고 있구나', '자연에게 인간인 내가 꽤 성가신 존재이겠구나'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다 '나는 자연이구나' 하는 순간도 찾아온다. 오늘도 그런 날이다. 꽤 작은 공원임에도 도서관의 통유리창에 담겨 있는 자연에 나는 압도당했고, 자연에 바로 순응하게 된다.
이런 게 호주의 힘이지 않을까 싶다.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곳.
호주를 그대로 담고 있는 디자인.
자연을 닮은 도서관.
참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