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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May 30. 2024

언제나 그곳,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가까운 듯, 먼 곳이다. 시드니에 살지만, 집에서 오페라 하우스까지 가려면 하루를 비워놓고 나가야 한다. 아이들이 3시 20분에 하교를 하니, 시티에 나가면 겨우 1시간 정도만 머물다 올 수 있다. 아이들을 등교시켜 놓고, 집에서 10시에 출발한다. 집부터 기차역까지 15분 정도 걸어 나가야 하고, 기차는 15분마다 오니 최대 15분을 기다려야 하고, 느린 시드니 기차 덕분에 차로 30분이면 가는 곳을, 기차로 45분은 타고 나가야 시티에 도착한다. 그리고 오페라하우스까지 걸어가는데 15분도 소요된다. 그러니 편도 두 시간은 여유를 잡고 집에서 출발한다. 이렇게라도 오페라 하우스에 찾는 이유가 여럿 있다.


주기적으로 가는 곳이다. 처음 시드니에 왔을 때도, 두 번째 시드니에 왔을 때도, 첫 번째 방문지는 오페라 하우스였다. '우와~~ 오페라 하우스다'를 느껴봐야 '시드니에 내가 왔구나'를 실감하는 그런 코스다. 하지만 시드니에 살면서는, 나의 초심을 찾고 싶을 때 찾는 곳이다. 이곳에 오면 관광객이 된 기분이 든다. 시드니에 와 있음에 설레고 흥분되고 기대되고 그런 느낌이 되살아난다. 그러니, 시드니의 삶이 단조롭게 느껴질 때 찾게 되는 곳이고, 나만의 특별한 날을 맞이하고 싶을 때 나 홀로 찾는 곳이다. '아~ 내가 시드니에 살고 있지. 난 행운아네.'


계획하면 못 가는 곳이다. 지난 생일날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도 잠깐 언급했지만, 그날도 그랬고, 어제도 그랬다. 하루를 비워놓고 그곳에 가려고 계획했는데, 지난번엔 내가 아프고, 이번엔 아들이 아파서 또다시 계획을 미뤄야 했다. 정말 내가 오페라하우스에만 가면 무슨 테러라도 생겨서 날 보호하려는 건지, 아니면 나를 집에 가둬놓기 위한 움직임인지. 도대체 언제 가볼 수 있을까. 답답하기만 하다. 다음 방문을 계획할까 말까 지금도 고민이다. Vivid Sydney가 열리고 있는 그곳에, 이번주 일요일 갈까 말까.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다. 어떤 모습이 오페라 하우스의 진짜 모습일까.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그리고 오페라하우스가 사용하는 대표이미지는 나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오페라하우스 가까이에 가서 사방을 돌아가며 살펴보면 5 발자국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방금 전의 모습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지금의 모습이 최고이고, 동시에 다음 모습이 더 멋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이러니, 이곳을 갈 때마다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6년째 새로움을 발견하는 곳이다.


가까이 가서 봐야 하는 곳이다. 지난주, 시드니에 사는 친척들을 만나러 시티에 다녀왔다. 우리가 가려던 곳이 우연히도 오페라하우스를 볼 수 있는 곳을 지나야 해서, 멀리서 사진만 간단히 찍고 다음기회를 기약해야 했다. 멀리서 보는 모습은 나에게는 그저 장난감을 보는 기분이다. 내가 아는 오페라 하우스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기 때문이다. 그 거대하고 웅장한 느낌이 사라지고, 내가 좋아하는 계단도 사라지고, 오페라 하우스 밑에 있는 오페라 bar의 분위기도 사라지고, 조개모양을 온통 덮은 작은 타일들도 모두 사라져 보인다. 가까이 가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내가 오페라 하우스에 만들어놓은 친밀감. 오페라 하우스와 주고받은 나만의 기억이 있다. 안과 밖을 오가며 느꼈던 감흥이 가까이 가야 더 크게 되살아난다.


디자인을 공부하는 나에겐, 꽤 흥미로운 리소스를 제공해 주는 곳이다. 호주 디자인 대학원을 다닐 때, 가상의 이벤트를 기획해야 했고, 나는 이벤트장소를 오페라 하우스로 정했었다. 그러면서 좀 더 깊은 리서리를 하게 되었고, 좀 더 깊은 애정이 생겨났다. 그래서 그런가, 여전히 나에게는 끊임없이 디자인 영감을 가져다주는 곳이다. 그래서 더욱더 그곳을 찾아가는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할아버지가 생각나는 곳이다. 친할아버지는 서울의 남산타워를 계획하고 건설하시고 운영하셨다. 서울의 랜드마크 남산타워. 호주의 랜드마크 오페라하우스. 이런 연관관계로, 나는 이 두 곳에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기에, 이 두 곳은 나에게는 꽤 의미 있는 곳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할아버지, 아빠한테 들은 남산타워의 설계, 건설과정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바탕으로, 오페라하우스의 건설과정을 바라보면 상당히 비슷한 점도 많이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서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더 커지게 된다. 아무도 우리 할아버지를 모른다해도, 나에겐 영웅 같으신 분이다. 나도 할아버지 같은 하나의 큰 업적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도 살짝 해보게 된다.



내가 바라본 오페라 하우스다.





물론, 오페라하우스를 갈 때마다 성공적인 휴식이나 예술적 영감을 항상 취하는 건 아니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괜히 왔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내가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지 못할 때다. 내가 변화하지 않았으니 똑같은 것만 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똑같은 사물에서 다양한 모습을 발견한다는 것이, 그 속에서 나만의 보물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지 이제는 안다. 아니 조금씩 알기 시작했다.


오페라 하우스가 나에게 다양한 면을 보여주듯이, 나도 오페라 하우스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코비드 때문에 닫혀있던 공간. 이제는 그 안에서의 더 깊은 친밀감을 쌓아 볼까 한다. 오페라하우스 안에서 열리는 다양한 이벤트를 즐겨보려 한다. 한 달 전 예약해 놓은 이벤트가 있다.


Draw the House / Sun 28 July 2024 11:30 AM


이날만 기다리고 있다.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나도 기대가 된다.


어떤 이들과 함께 할지 더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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