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대학원 프로젝트 2021 Term1
호주에서 디자인 대학원을 다니면서, 모든 수업에서 교수들이 강조한 것이 있다.
디자인 개발과정을 기록하는 노트를 만들어라.
우리는 이것을 Visual Diary라 부르는데, 작가의 모든 생각들과 아이디어 스케치가 담긴 노트를 말한다. 그리고 매주 VIsual Diary 과정을 스캔해서 온라인 사이트에 올려 숙제 확인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 Visual Diary가 숙제확인용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디자인의 결과가 어떠한 유명한 디자인과 거의 비슷하게 나와서 카피를 한 것처럼 보여도, 디자이너가 Visual Diary를 통해 작가의 생각의 흐름을 설명하고 증명해 낼 수 있다면 아무리 결과가 다른 작품과 같다 해도 이 작품은 인정된다. 그러하기에, 교수들은 아주 작은 사소한 것들이라도 작가의 생각을 자세하게 기록해 놓으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여기서 더 강조되는 것은 디자인 개발과정을 기록하는 것이다.
Visual Diary에서 하나의 디자인(결과)만을 설명하는 식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과정을 통해 디자인이 개발되는 과정을 보여줘야 한다. 얼마나 다양하고 깊은 연구를 했는지, 그리고 작가만의 논리로 자기만의 작품을 개발시켰는지가 키포인트이다. 이 과정에서 나만의 색이 찾아지게 된다.
- 여기서 보이는 디자인은 최소 2-3개의 디자인을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30개의 디자인을 보여줄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현실적인 점수차이가 생긴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호주의 고등교육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딸아이는 지금 고3이다. 텍스타일과 미술수업을 수강 중인데, 여기서도 과제로 꼭 모든 과정을 기록한 Portfolio / Viusal Art Process Diary를 제출해야 한다. 텍스타일 과목의 경우엔, 모든 학생이 각자의 디자인을 개발하여 옷을 제작하는데, Portfolio에 Insparation(영감), Experiment(실험과정), Design development(디자인 개발과정), Method(제작과정) 등등이 포함된다. 이는 실제 제작제품 실기점수와 동일한 50%를 차지한다. 그만큼 과정에 부여되는 가치가 크다.
그렇다면, 수학과 같은 경우는 어떠할까. 4점짜리 주관식으로 문제를 푸는 경우, 답이 틀려도 과정이 맞는다면 3점의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문제풀이에서 실수로 첫째줄에 2라고 쓴 것을 둘째 줄부터 3이라 써서 문제를 풀었을 때 결과는 틀렸겠지만, 과정이 맞다면, 3점의 점수를 받을 수 있다.
2년 동안 이러한 과정을 경험하면서, 그리고 딸아이의 교육과정을 지켜보면서, 과정을 중시하는 교육의 장점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일단, 디자이너만의 목소리가 좀 더 강하게 담기고, 각자만의 색이 다채롭게 입혀진다는 것이다. 똑같은 답만 요구하는 것이 아닌, 개개인의 생각을 중시하니, 자기만의 작품세계가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나와 교수와 심지어 동료들까지 같은 이해의 수준을 공유하게 된다. 매주 업데이트 시키는 Visual Diary를 모든 이들과 함께 공유하면서, 서로 피드백도 주고 응원도 해주고 다 같이 토론을 하며 각자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면서 디자인을 자연스레 개발이 된다. 이런 과정에서 함께라는 공동체의식을 만들어지고, 좀 더 깊은 디자인 개발로 발전되는 효과도 얻게 된다.
물론, 나는 한국에서 미술전공을 했을 때도 항상 나만의 노트를 작성했다. 하지만 그건 의무도 아니었고, 교수님들이 나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이용하지도 않으셨다. 결과로만 채점되는 방식.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기준으로 채점을 하신 걸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다시 호주로 돌아오면, 여기선 틀린 답도 없다. 느린 작업이어도 상관없다. 처음에서 끝까지 진행되는 과정이 충분하다면, 그만큼의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물론, 앞에서 말한 대로, 더 많은 디자인 개발과정이 있고, 좀 더 높은 레벨의 결과물을 가져오면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은 개개인이 선택할 문제이다.
참고로, 대학에서의 학점은 회사지원 시 이력서에 첨부되지 않는다. 진짜 공부, 연구를 하게 되는 환경이다.
나에게는 그랬다.
꿀벌들은 여기저기 꽃에서 꿀을 가져옵니다마는, 다음에는 자기들 것인 꿀로 만듭니다. 이렇게 다른 데서 따온 것으로 그는 배운 것들을 변형시켜서 자기 것인 작품을, 바로 자기의 판단을 만들 일입니다. 그의 교육, 노력과 공부의 목표는 이렇게 자기 것을 만드는 데 있습니다. (중략) 우리의 공부가 주는 이익은, 그것으로 자기가 더 나아지고 더 현명해졌다는 일입니다. - 몽테뉴(주)
아래의 노트들은 디자인 대학원에서 과제를 위해 가상으로 진행했던 프로젝트, [Sydney Vivid 이벤트 기획] 과정을 담고 있는 나의 Visual Diary다. // 2021년 Term1
https://www.youtube.com/watch?v=zmfu9gKjiFU
(주) 미셀 드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동서문화사,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