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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Jul 15. 2024

나를 바라보는 나 - 큰 창문

1년 전부터 호주식 하우스에 살고 있다.


거실 한쪽 벽은 전체가 창문이다. 튼튼한 한국식 샤시(새시) 창문틀이 아닌, 1980년대에 만들어진 나무 창문이다. 잠금장치도 허술하고, 얇은 유리는 조금만 충격을 주면 금방이라도 깨질 듯하다. 가운데에는 양쪽으로 활짝 열리는 창문이 있는데, 이걸 창문이라 해야 할지 문이라 해야 할지 헷갈리지만, 나는 그저 '큰 창문'이라 부른다.


사실, 작년 이 집으로 이사 온 이후로 나는 이 큰 창문을 열어놓은 적이 거의 없다. 1-2시간 환기를 시킬 때마다 호주의 거대한 바퀴벌레가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자연 속에서 살기로 했으면서 자연을 거부하고 두려워하며 살았다. 


하지만 몇 달 전, 딸의 18살 생일파티 때, 나의 믿음이 현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은 생일파티 준비를 위해, 그리고 파티를 하는 동안 하루 종일 창문을 어쩔 수 없이 열어놓아야 했다. 예상대로, 늦은 밤 어김없이 바퀴벌레가 들어왔고, 딸은 언제나처럼 약을 뿌려 죽이려 했다. 그때 그녀의 친구가 말했다.


"뿌리지 마, 불쌍하잖아."


호주 아이들에게 자연이란 이런 것이구나.






그다음 날, 나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후, 이 큰 창문을 활짝 열어보았다. 상쾌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바깥세상이 그대로 거실로 들어와 나를 감싸는 듯했다. 바람이 알려주는 듯했다. 


창문을 통해 들여다보던 자연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창문을 통해 들여다보던 두려웠던 자연은 오히려 나를 치유한 다는 것을, 

창문을 통해 들여다보던 자연은 내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존재라는 것을.


그때부터 나는 자연에 나를 더 개방했다.


하루 종일 이 큰 창문을 열어놓는다. 어둠이 져서 블라인드를 내려야 할 때까지, 하루 종일이다.


그날 이후, 나는 자연 속에 산다는 느낌이 더 강해졌다. 자연과 우리 집이 하나가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바람이 들락날락하며 나의 삶에 자연의 자유를 가져다주는 듯하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푸른 호주의 하늘과 수백년동안 그곳에 항상 있었을 듯한 나무들, 바람에 다이아몬드 빛을 반사시키는 잎사귀들, 그리고 그 사이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시끄럽거나 아름다운 새들. 호주 자연의 소리와 냄새가 거실로 흘러들어와 우리 집을 가득 채우고 있다.


또한, 이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 자체도 조금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자연을 그저 바라볼 때와 자연 속에 나의 삶이 있을 때를 단순히 "다르다"라고 표현할 수가 없다. 눈으로만 보던 자연은 이제 나에게 오감으로 다가와서는 나의 생각까지 그들의 흐름을 따라오라 하는 듯하다. ( 이전 글, 자연의 흐름대로 산다는 것은' 참조) 


나는 이제, 자주 커피 한 잔을 들고 거실 소파에 앉아 창문을 바라본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다가 한번씩 커튼을 한번씩 휘날리는 건 나에게 보내는 손짓같고,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는 호주의 자연이 나에게 건네는 쫑알대는 대화 소리같다. 그 순간, 그럴 때마다 나는 깨닫는다. 


이 창문은 단순히 밖을 바라보는 통로가 아니라, 자연과 소통하는 창구이구나.


이 큰 창문을 활짝 열고 하루를 시작할 때마다, 나는 자연의 모든 것을 포용하고, 자연은 보답으로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자연의 에너지를 나에게 불어 넣어주는 듯하다. 그렇게 나는 자연과 하나가 된 우리 집을 사랑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 집을 한동안 떠나지 못할 것 같다. 


이 창문을 통해 나의 삶과 연결된 

'나의 자연'을 떠날 수가 없을 것 같다.





태양과 바람과 비, 여름과 겨울, 이 자연은 형언할 수 없이 순수하고 자애로운 만큼 우리에게 영원한 건강과 활기를 준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무한한 연민 때문에 어떠 사람이 정당한 이유로 슬픔에 잠기면 자연 전체가 영향을 받아서 태양은 밝은 빛을 잃고 바람은 자비롭게 한숨을 내쉬고 구름은 눈물 같은 비를 뿌리고 숲은 한여름에도 잎을 떨어뜨린 채 상복으로 갈아입을 것이다. 내가 어찌 대지와 교감하지 않겠는가? 나 자신도 부분적으로는 대지에서 나온 잎이고 부식토가 아닌가? 

핸리 데이비드 소로 (주)


(주)월든, 핸리 데이비드 소로, 믿음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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