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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글을 쓰는 그림 작가가 되고 싶었을까

by 근아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명확했다. 글을 통해 내 디자인을 더욱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그림 작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호주 디자인 대학원에서 수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나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서 작품에 담긴 개념과 의도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디자인은 결국 설득의 과정이었고, 이를 위해 글쓰기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각 작품의 평가는 최종 포트폴리오를 통해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디자인의 전체 컨셉이었다. 이는 표면적인 디자인 요소를 벗어난 이야기였다.


왜 이 디자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는지,

동기, 목적, 그리고 타겟이 분명해야 했고,


왜 이런 디자인 요소들을 선택했는지,

구체적인 디자인적 근거를 설명해야 했다.


디자인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회적, 감성적, 혹은 기능적인 측면에서의 효과를 고려해야 했으며,


기존 디자인과 비교했을 때 어떤 차별성을 가지는지,

나만의 독창성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지 분석해야 했다.


디자인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어떤 시도와 수정이 이루어졌는지,

실패와 개선 과정을 논리적으로 정리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그 디자인이 나의 철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결과물을 넘어, 나의 가치관과 방향성을 담은 작업임을 증명해야 했다.


이 과정은 디자인을 만드는 것만큼 글쓰기를 요구했다. 아이디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에서 내 한 걸음 더 나아가 디자인이 왜 필요한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지, 기존의 디자인과 어떻게 다른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학문적 연구도 필요했다. 디자인은 감각적인 창작 활동이면서도, 그 안에는 사회적·문화적 맥락이 깊이 깔려 있다. 따라서 내 디자인이 이론적 토대 위에서 발전한 것임을 증명해야 했다. 관련 연구를 찾아 읽고, 이를 내 작업과 연결 지어야 했다. 단순한 자료 수집이 아닌, 논문의 핵심을 파악하고 내 언어로 풀어낼 수 있어야 했고, 이 과정에서 글쓰기 능력의 절실함을 깨달았다.





디자인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내 생각을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어야 했고, 이를 위해 논리적으로 정리된 글이 필요했다. 특히 디자인 컨셉을 설명할 때, 모호하거나 감성적인 표현만으로는 부족했다. 내 선택의 근거를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독자가 내 디자인의 의도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며, 글쓰기를 배우면서, 나는 글이 또 하나의 디자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중이다. 글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의미를 구조화하며, 독자가 공감할 수 있도록 내용을 배치하는 과정은 시각적 디자인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글을 더욱더 깊이 배우고 싶었다. 글을 잘 써야만, 내 디자인이 온전히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을 위한 글쓰기, 그리고 글을 위한 디자인. 이 두 가지는 결국 하나로 연결되었다. 나는 그림만 그리는 사람이 아닌, 내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함께 표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디자인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동시에, 글을 통해 디자인을 확장할 수 있는 사람. 그것이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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