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한 달 동안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영어원서와 번역본을 함께 읽는 이유』라는 글을 발행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일주일쯤 지났을까, 브런치 작가 요청을 통해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보낸 이는 <번역하다>라는 잡지의 편집자였다. 3주년을 맞이한 36호에 내 글을 싣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뜻밖의 요청이었지만,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처음 받아보는 잡지 기고 제안이라는 점도 기뻤지만, 그보다도 요즘 나만의 잡지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기에, 내 글이 하나의 매거진으로 완성되는 과정이 더욱 궁금해졌다.
그리고 지난 3월 15일, 한국에 있는 신랑이 보내온 사진 속에는 인쇄된 활자로 자리 잡은 내 글이 있었다.
아직 실물로 마주하진 못했지만, 컴퓨터 화면 속에 머물던 문장이 한 권의 책에 담겨 종이 위에서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단순히 글이 옮겨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길을 거쳐 한 권의 매거진으로 완성되었다는 점에서, 글이 지닌 무게와 시간이 새삼스레 느껴졌다. 아마도 내가 그 글을 쓸 당시의 마음가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번역가도 아니고,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그 글을 꼭 써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느꼈다. 오히려 그런 애매한 위치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경험이 있었고, 진심으로 영어 공부를 즐기는 사람으로서, 이런 방법도 있다는 걸 작은 목소리로나마 알리고 싶었다.
그런데, 이 글은 내게 뜻깊은 인연 둘을 선물해 주었다.
첫 번째 분은 내가 구독하고 있는 번역가 유튜버이다. 원본과 번역본을 함께 읽으며 자연스럽게 번역이라는 작업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된 것이었다. 지금 당장 번역을 업으로 삼을 계획은 없지만, 10년 뒤라도 문득 시작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번역에 대한 관심이 생기자, 번역가의 공부법이 궁금해졌다. 무심코 검색을 하던 중 한 번역가의 유튜브 채널을 발견했는데, 놀랍게도 그분이 며칠 전에 ‘원본 + 번역본을 함께 읽는 공부법’을 추천하는 영상을 올린 참이었다. 그 영상을 보며, 내가 하고 있는 방식이 나름 효율적이며, 실제 번역가들도 습관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새로운 영역을 탐색한 후, 나는 나만의 생각을 정리해 글을 발행했었다. 그리고 그 글에 한 댓글이 달렸다.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 중인 그 번역가(번역가J)의 댓글이었다.
이 글을 발행하기 전까지, 그분과의 관계는 내가 일방적으로 바라보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내 글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나’라는 존재를 알릴 수 있게 되면서, 언젠가 더 깊이 이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기대를 품게 되었다.
두 번째 인연은 매거진의 편집자였다. 개인적으로 깊이 소통할 기회는 없었지만, 조용하게 나의 생각을 글로만 전하던 내게 기고의 기회를 주며, 더 크게 목소리를 내도 좋다고 무언의 용기를 건네준 분이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던, 그 어떠한 이끌림 속에서 쓰인 글이, 그분을 통해 세상으로 퍼져나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번역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나를 소개해 주는 다리 역할까지 되어 주었다.
물론, 내 글이 실린 매거진이 3주년 기념호였다는 점도 의미 있었지만, 아쉽게도 그것이 마지막 발간호이기도 했다. 그분께는 안타까운 소식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마지막이라는 순간 속에서 내 글이 담겼다는 것은, 마치 소중한 한 페이지를 함께 완성하는 듯한 느낌이었고,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특별한 선물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문득, 그 글을 쓸 때 느꼈던 막연한 의무감과 이끌림이 떠올랐다. 어쩌면 나는 미처 알지 못한 채, 이곳에 닿기 위해 그 글을 쓰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내가 그 글을 쓰고 싶었구나."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도, 이 글이 또 어떤 새로운 기회로, 어떤 특별한 인연으로 이어질지 설레는 마음이 든다. 무엇보다도, 글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내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하고,
마치 작은 우주처럼
끝없는 확장을 품고 있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한하다는 생각이 나에게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