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 이성

by 근아

양식(良識, good sense)은 세상에서 가장 잘 분배되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저마다 양식을 잘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다른 모든 것에 만족하기 가장 어려운 자들조차도 그것만큼은 자신들이 가진 것 이상을 욕망하지 않곤 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모두가 속고 있다는 것은 그럴 법하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잘 판단하는 그리고 참된 것을 거짓된 것에서 구별하는 힘이, 이것이 본래 사람들이 양식 혹은 이성이라고 명명하는 것인바, 모든 인간에게 자연적으로 동등하다는 것을 중시한다. 그래서 우리 의견들이 서로 다른 것은 어떤 이들이 다른 이들보다 더 이성적이어서가 아니라, 오직 우리 사유를 인도하는 길들이 서로 다르고, 우리가 같은 것을 고찰하지 않는다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중시한다. 왜냐하면 좋은 정신을 가지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주요한 것은 그것을 잘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데카르트 ”


데카르트는 인간 모두에게 '이성적 사고'의 능력이 공평하게 주어져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서로 다른 길을 따르고, 생각의 대상이 다르며, 그 사용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이 달라질 뿐이라고 본다. 따라서 그는 올바르게 생각하는 방법, 즉 '방법'이 중요하다고 보고, 『방법서설』을 통해 그것을 설명하고자 한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리며 자랐고, 예술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성적 사고보다는 감정과 감각이 더 발달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어떤 상황을 마주할 때도 논리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마음으로 먼저 느끼고, 직관으로 결론에 이르곤 했다. 사물을 바라볼 때도 머리로 따지기보다는 온몸으로 느끼며 받아들였다.


내 삶의 대부분은 예술과 맞닿아 있었다. 1년 반 전, 북클럽에 조인하기 전까지 내가 했던 거의 모든 활동이 그랬다. 친구들조차도 각자의 깊은 생각들을 그림으로, 음악으로, 무용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세상은 이성의 언어가 아닌, 감정의 언어로 다가왔다. 나 역시 그렇게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왔다.




그런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집중하게 된 것은, 감정이 아닌 논리적 사고를 키우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내게 글쓰기는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것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일이지, 논리를 세우고 근거를 나열하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차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마음으로 느낀 것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온전히 전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감정의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내 안에 있는 생각과 감정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그것들을 지탱할 단단한 틀을 세우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내 안에 익숙하지 않았던 사고의 방식을 조금씩 배워갔다. 감정이 흘러가는 방향을 좇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을 잠시 멈추고 들여다보며, 왜 그런 감정이 드는지, 그 근원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 과정은 때때로 낯설고 어색했지만, 점차 마음속 감정과 이성적 사고가 조금씩 균형을 이루어 갔다. 감정이 앞서더라도 이성이 그 감정을 품어주었고, 이성이 앞설 때는 감정이 그 틈을 메워주었다. 그렇게 내 안에서 감정과 이성은 각자의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며 나를 이끌어 주었다.


어쩌면 지금의 나도 여전히 감정이 먼저 움직인다.

하지만 그 감정이 흩어지지 않도록,

이성이 그 흐름에 길을 내어준다.

나는 여전히 감정에 이끌리지만,

이제는 그 감정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 길 끝에서 이성이 나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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