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을 품은 무(無)

by 근아

없다.
그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을 때,
나는 오히려 모든 것을 가진다.


손에 쥐지 않고, 이름을 붙이지 않고, 경계를 긋지 않으면
무한은 조용히 그 안으로, 네 안으로 스며든다.
비움은 텅 빈 것이 아니라,
넘치도록 가득한 가능성이다.




무 관점

나만의 관점이 필요했다.

그러나, 관점이 있다는 것은 동시에 ‘시야의 경계’가 존재함을 뜻한다.
관점은 틀을 만들고, 틀은 형태를 만들고, 형태는 차이를 만든다.
그 순간, 나는 전체가 아닌 일부만을 보게 된다.


그래서 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스스로 만든 틀 안에 갇힌 나를 발견하게 된다.
다른 모든 가능성을 스스로 지우고 있던 것이다.


그 후, 나는 ‘나의 관점이 없다’고 말하게 되었다.

이 말은 무관심도, 무시도, 회피도, 체념도, 포기도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은 관여이다.
어느 한 시선을 고집하지 않고,
어느 하나의 해석에 고정되지 않으며,
어떤 주장에도 너무 오래 머물지 않는 것.


내가 ‘없다’는 자리에 설 때,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이 나를 통과한다.
그 흐름에 저항하지 않고,
흘러가는 것들을 붙잡지 않으려 할 때,
나도 무한을 통과한다.


'무'는 공허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모든 관점이 깃들 수 있는 바탕이다.
단 하나의 시선에 매이지 않기에
나는 무한의 유연한 시선과 함께 움직인다.
그 움직임 속에서, 나는 한계가 아닌 가능성을 경험한다.


무를 품는다는 것은
지닌 것을 내려놓고,
고정된 틀을 비워냄으로써
끝없이 열려 있는 것과 마주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무(無)’의 자리에 선다.


무 관점,
무 기준,
무 경계,
무 계획,
무 목적,
무 언어,
무 시간,
무 자아,
무 중심,
무 의미,
무 판단,
무 용기……


그리고, 그 위에 조용히 드러나는 것.


무와 무한이 맞닿는 자리,
나는 거기서
무한을 품는다.






max-fuchs-Nm6ojlDO-5c-unsplash.jpg








엄마의유산2025_123시리즈00.png


keyword
이전 19화나는 무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