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vs 자기 신뢰

by 근아

"Ne te quaesiveris extra"

Ne : 하지마라

te : 너를

quaesiveris : 찾다, 구하다

extra : 밖에서


당신 자신을 밖에서 찾지 말라.



이 문장은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의 에세이 『자기 신뢰』의 첫머리에 놓인 라틴어 구절이다. 에머슨은 이 짧은 문장을 통해 자기 자신과 자신의 내면을 신뢰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타인의 평가나 사회적 기준에 기대지 말고, 자기 안에 이미 존재하는 목소리를 믿으라는 의미이다.




건율원에서 진행하는 북클럽의 한 파트를 맡아 진행하고 있다.

‘위대한 정오 북클럽’

매일 정오 12시에 시작해 한 시간 동안 인문학 북토론이 이어진다.

5월에 시작한 이 북클럽은 어느덧 100일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난주에는 그동안의 여정을 돌아보며,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을 다시 꺼내보는 시간을 가졌다. 각기 다른 책 - 각자 추천받아 읽게 된 책들 - 에서 출발한 주제들이었지만, 대화를 거듭할수록 그 흐름은 하나로 모아졌다. 다시 말해, 다양한 색으로 물든 대화가 결국 하나의 결을 따라 흘러 자연스럽게 공통된 결을 지닌 몇 개의 키워드로 수렴되어 간 것이다. 그렇게 도출된 키워드들은 그저 3개월간의 대화 요약이 아닌, 우리가 읽어낸 삶의 방향이자 질문의 흔적이었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키워드는 ‘자기 신뢰’였다. 모든 주제의 중심에서 이 키워드는 끊임없이 드러났다. 현상과 사물, 관계와 존재에 이르기까지 - 무엇을 이야기하든, 결국 ‘자기 자신을 믿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되었다. 자기 신뢰는 단순한 믿음이나 태도를 넘어, 우리가 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결정짓는 핵심 축이었던 것이다.


어떤 책에서는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삶’으로,
또 다른 책에서는 ‘자신의 내면을 기꺼이 들여다보는 용기’로,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끊임없이 묻고 답하며 자신을 단련해가는 자세’로 나타났다.


형태는 다르지만, 그 바탕에는 공통된 질문이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을 믿을 수 있는가?"


라틴어 문장 “Ne te quaesiveris extra(너 자신을 밖에서 찾지 말라)”가 북클럽의 주제를 꿰뚫는 문장처럼 다가왔던 것도, 어쩌면 그 이유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문득,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신뢰(trust)’나 ‘믿음(believe)’이라는 단어 대신, 왜 '자기 신뢰'를 표현하는 단어는 self-reliance일까.


relay : ‘의지하다’, ‘기댄다’

삶의 무게를 자신에게 실어내는 태도, 자기 안에 중심을 두는 자세를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Self-reliance는 일종의 결심이다. 흔들리지 않겠다는 고집이 아니라,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인간임을 인정하면서도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처럼 느껴진다. 그러니, 에머슨이 말한 자기 신뢰는 그래서 낭만적인 자기애가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과 감각, 경험을 끌어안고 살아내려는 깊은 성찰에 가깝다.


self-reliance : '자립'

self-relaiance는 캠브리지 영영사전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지원 없이 스스로 해낼 수 있는 능력과 태도(the quality of not needing help or support from other people)”로 정의된다.


이는 단순한 ‘신뢰’나 ‘믿음’을 넘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책임지는 자립성과 밀접한 개념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의 철학에서 강조한 Self-reliance는 바로 이러한 ‘스스로 서는 힘’을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다.


self-reliance : '자기 신뢰'

에머슨의 『Self-Reliance』는 한국어 번역본에서 『자기 신뢰』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단어가 담고 있는 의미는 그저 ‘신뢰'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스스로에 대한 깊은 의존과 흔들리지 않는 자립,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통해
마침내 자신이라는 존재가 우뚝 서는 자리까지를 아우른다.


‘self-reliance’는
내면의 중심을 굳건히 세우고,
외부의 소음과 흔들림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존재감으로 삶을 마주하는 태도다.


그리하여 자기 신뢰란,
단순한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대면과 수용을 통해 완성되는
존재론적 결단이라 할 수 있다.




당신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
은밀한 마음속에서 당신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도 그대로 진실이 된다고 믿는 것,
이것이 천재(genius)의 행동이다.
- 에머슨




나는 그렇게
내 안의 천재를 부른다.


그리고 또,
내 안의 천재가 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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