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호주에 처음 이주해왔을 때,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다가온 문화 충격은 ‘책 표지 디자인’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도 여러 번 영어 원서를 사보긴 했지만, 그때는 표지 디자인에 대해 특별한 인상을 받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호주의 가장 큰 서점에 처음 들어섰을 때, 내가 느낀 첫 감정은 놀라움보다는 거부감에 가까웠다. ‘이건… 디자인을 한 건가? 안 한 건가?’ 책 표지를 마주한 순간,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들 만큼 어딘가 낯설고 당혹스러웠다.
한국에서는 책의 표지가 내용을 상징하거나 분위기를 암시하며, 독자를 끌어당기는 중요한 장치로 여겨지곤 한다. 특히 최근에는 일러스트가 표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향이 뚜렷해, 마치 한 장의 그림 작품처럼 느껴지는 책들도 많다. 한국에서 내가 북디자인을 맡았을 때도, 출판사나 저자는 항상 나에게 일러스트를 표지에 담아주길 요청했다.
하지만 이곳 호주의 서점에서 마주한 책들은 전혀 달랐다. 표지 한가득 제목과 저자 이름만 적혀 있을 뿐, 장식도, 이미지도, 시각적 요소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있다고 해도, 제목과 저자의 강렬한 디자인으로 인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는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 정도로 강렬하게 이름을 내세우는 사람이라면 정말 유명한 작가인가?’
슬며시 뒷면을 살펴보았지만, 그런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유명 여부와 상관없이, 이곳 책들의 표지는 단순함을 넘어 무심해 보이기까지 했다. 제목! 저자! 딱 그것뿐이었다. 마치 의도적으로 ‘디자인하지 않음’을 선택한 듯한 인상을 주는 책들도 적지 않았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책의 영어판과 한국어판을 나란히 놓고 보면, 그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같은 내용의 책임에도, 두 표지는 마치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 의문은 최근에 본 한 다큐멘터리에서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서양과 동양의 ‘시선의 방식’ 차이를 다룬 내용이었는데, 그 안에는 내가 처음 느꼈던 낯섦과 거부감의 근원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한 장의 사진을 예로 들었다. 사진 속에 코끼리가 있을 때,
동양인은 그 코끼리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환경과 맥락까지 함께 고려하며 전체적인 장면 속에서 코끼리를 바라본다고 한다. 반면 서양인은 사진의 중심에 놓인 코끼리만을 주목하며, 배경이나 주변 요소보다는 코끼리 자체에 집중하고 분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선의 차이는 책 표지 디자인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동양에서는 책의 분위기, 내용의 함의, 저자의 정서까지 함께 담아내려는 시각이 강하다. 표지 전체를 하나의 장면처럼 구성하고, 그 안에 이야기를 녹여 넣는다. 그래서 표지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독자와 감정적으로 교감하려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반면 서양의 책 표지는 정보에 보다 집중한다. 책의 제목과 저자의 이름—말하자면 그 책의 ‘핵심’만을 또렷하게 전달하는 것이 우선이다. 복잡한 장식이나 설명적인 이미지는 오히려 메시지를 흐릴 수 있다는 듯, 최대한 절제된 디자인 안에 강한 타이포그래피로 중심을 세운다. 그 결과, 보는 이로 하여금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단순명료하게 알려준다.
처음엔 무심하고 성의 없어 보였던 그 디자인들이, 알고 보니 그들 나름의 논리와 미감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동서양의 시선 차이를 알게 된 후, 호주 서점에서 발견한 한국 책이 왜 그토록 눈에 띄었는지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책들 사이에서 유독 튀어 보였던 이유는, 단지 언어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건 ‘전체’를 고려하는 동양의 시선, 이야기와 감성을 함께 담아내려는 디자인 철학이, 이질적인 공간 속에서 더 강하게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반대로,
한국 서점에 놓인 내가 디자인한 책의 표지가 어딘가 모르게 한국 책들과 미묘하게 결이 달라 보였던 이유 또한, 호주에서 디자인을 배운 나의 시선 때문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저 나만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전체를 보는 동양의 시선'위에, 서양에서 익힌 시각적 사고와 접근 방식이 자연스럽게 배어든 결과였다.
그리고 내가 추구하는 디자인에서도...
https://guhnyulwon.wixsite.com/my-sit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