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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여행 2일차 오전 - 노팅힐

by 근아

노팅힐. (Notting Hill)


나에게는 오래전 영화의 한 장면으로 익숙한 곳.

하지만 그저 스크린 속의 풍경일 뿐, 실제로는 한 번도 걸어본 적 없는 거리였다.

그 노팅힐이 이번엔 내 발걸음 아래에 있었다.


우연히 정한 숙소가 노팅힐 게이트역에서 불과 2분 거리였다.
월요일 아침,

마치 집 앞 산책이라도 나가듯, 가벼운 차림으로 거리를 걸었다.


아직 마켓이 열리지 않은 시간,

주변은 조용했고 생각보다 상업적이거나 화려하지 않았다.

그 평범함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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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흥미로웠던 건 건물들이었다.

‘파스텔 하우스 거리’가 유명하다는 사실도 그날 처음 알았다.

하지만 내 시선을 끈 건, 파스텔색보다는 오히려 그 위에 더해진 원색의 포인트였다.
창틀이나 문, 난간에 들어간 강한 색감이 전체 분위기를 묘하게 살리고 있었다.

그 미묘한 색의 대비가 노팅힐을 하나의 회화처럼 만들고 있었다.


노팅힐 중심까지 약 15분 정도를 걸으며

건물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음미하는 일이 생각보다 즐거웠다.
걷는 동안 눈은 계속해서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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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화려해진 색감.


중심가로 들어서자 몇몇 마켓이 열려 있었다.

사람들이 천천히 걸으며 물건을 고르고, 강한 영국 억양의 상인들 목소리가 거리 위로 흩어졌다.

그 순간, 영화 속 장면이 겹쳐졌다.

휴 그랜트의 내레이션이 마켓의 소음과 섞여 들려오는 듯했다.

영화의 한 장면 속 거리와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거리 사이의 경계가 잠시 흐려졌다.


“When people ask me what I do for a living, I tell them I own a travel bookshop in Notting Hill.
It’s a small shop. The kind of place you might miss if you weren’t looking for it.
Notting Hill is a small village in the middle of the city.”
“사람들이 내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노팅힐에서 여행서점을 운영한다고 말하죠.
아주 작은 가게예요.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만큼요.
노팅힐은 도시 한가운데 있는 작은 마을 같은 곳이에요.”






그곳에는 일상의 생동감이 있었다.
화려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았지만 그 일상의 온도가 그대로 느껴졌다.




그렇게 마켓을 지나던 중, 영화 속 그 장소가 눈앞에 나타났다

휴 그랜트의 작은 서점, 파란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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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영화 속 그 서점은 기념품 가게로 바뀌어 있었다.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웃으며 드나드는 그곳은 더 이상 ‘조용한 책방’이 아니었다.


하지만,

조금 더 걸었을 때,
새로운 장소에서 운영되고 있는 The Notting Hill Bookshop을 발견했다.

입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 안에서도 많은 이들이 사진을 찍고, 책장 사이를 서성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곳 직원들은 이런 손님들을 - 나를 포함해서 - 반가워할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하지만 나에게는 다른 목적이 있었다.
나는 여행객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나름의 ‘출장자’였다.

북디자이너로서의 첫 번째 리서치를 이곳에서 시작했다.
서가의 톤, 진열된 책의 색감, 책 표지의 디자인, 서점의 굿즈까지 —
이곳의 감각을 내 눈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1999년,

그 영화를 보던 그때,

훗날 내가 책을 만들고, 디자인을 하고, 출간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될 줄 그 어린 아이는 알았을까.


어쩌면 그때의 영화 속 장면이 내 안에 남아,

책을 더 좋아하게 만든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곳에,

내가 있었다.

20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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