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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를 먼저 알려주는 나라, 호주

by 근아

시드니에서 길을 건너기 위해서는 보행자용 버튼을 먼저 눌러야 한다.


동그라미 버튼을 누르면, 잠시 후 횡단보도의 초록불이 켜진다.

이 버튼을 누르지 않고 기다리면, 기본 설정된 시간이 올 때까지 한참을 서 있어야 한다.



생각해 보면, 이 버튼은 나의 존재를 알리는 버튼이다.


버튼을 누르고 초록불이 켜진다는 건,

끊임없이 흐르는 차들 사이에서 잠시나마 내가 존재로 인정받는 순간이 된다는 뜻이다.


내가 길을 건너기 시작하면, 빨간불이 2-3초 후 바로 깜박인다. 처음 호주에 왔을 때는, 그 불빛이 나를 재촉하는 것처럼 느껴져 나는 늘 서둘러 길을 건너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빨간불이 깜박여도, 심지어 빨간불이 들어와도 내 속도로 길을 건넌다. 내가 완전히 길을 건널 때까지 차들이 기다려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아주 가끔 나를 압박하는 차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있다.


이곳에서는, 차보다 사람이 먼저이다.






이러한 '존재를 존중받는 느낌'은 생각보다 여러 순간에서 마주하게 된다.


딸아이의 학교에서 정기 상담을 받으러 갔을 때도 그랬다. 그 자리에 참석하는 사람은 부모만이 아니다. 아이도 언제나 함께였다. 아이의 성적이나 학교생활을 '전달'하는 시간이 아닌, 아이와 선생님, 그리고 부모(아빠들도 함께)가 한 자리에 앉아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함께 방법을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딸아이의 존재가 분명하게 느껴졌다.

선생님이 들려주는 딸아이의 모습에서 그분이 이 아이를 얼마나 존중해 주며 바라보고 있는지가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호주의 수능, HSC를 앞두고 상담을 할 때에도 나는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아이의 수능 공부를 위해, 제가 서포트해야 할 부분이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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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디자인하고 글로 색을 입히다’ 호주에 살고 있는 북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그래픽 디자이너, [근아]의 브런치스토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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