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내향인의 직장생활
나와 면접관 사이에는 어색할 정도로 넓은 공간이 펼쳐져 있었고, 그 거리만큼이나 나는 고립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마치 헐벗은 채로 그들의 시선 위에 놓인 듯,
속까지 꿰뚫리는 듯한 느낌이 너무 싫었다.
면접이 시작되었고 나는 로봇처럼, 미리 준비한 답변을 읊었다.
"네, 저는 △△을 전공했고…"
"저는 꼼꼼하고, 맡은 일은 끝까지 해내는 성격이며…"
너무 익숙해서 지겨워져 버린 대답들, 딱딱한 목소리, 과하게 신경 쓴 표정까지.
대본을 읽듯 정해진 말을 내뱉었고, 면접관들은 그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씩 끄덕일 뿐이었다.
"우리 회사에 지원한 이유가 뭔가요?"
"이 직무를 통해 어떤 앞으로 성장을 기대하나요?"
이어진 질문들에도, 나는 면접관이 원하는 답변이라고 생각되는 대답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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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이 회사를 원해서 지원한 걸까?..
의문이 드는 마음을 다시금 꾹 눌러 삼켰다.
이렇게 억지로 얻은 자리에서,
끝없는 눈치와 불안 속에서 애쓰게 될 거라는 사실은 몰랐다.
직장생활에는 저절로 적응될 줄 알았고, 뭐 다들 하는데 나라고 못해내겠어?라는 생각이었다.
처음으로 진심을 말했던 어느 날의 면접
공허한 마음으로 이어가던 취업준비는 갈수록 더
마음이 따라주지 않았고,
그렇게 진심 없이 임하는 면접들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리 없었다.
매일 채용공고를 뒤적거리며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구직사이트에서 면접 제안이 왔다.
'가전제품 판매 영업직'
나와는 전혀 무관한 직무였기에 스팸취급을 했어도 됐지만 그날따라 왜인지 무시하고 싶지 않았다.
집 안에만 있는 게 답답해서였는지,
어딘가에서 새로운 답을 찾고 싶었는지,
나는 면접장에 가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회사에 도착하여, 1:1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역시 제품 영업직을 구하고 있었다.
나는 그 일과 맞지 않다는 걸 확실히 말하고서 면접을 대충 끝내고 싶었는데,
면접관은 왜인지 계속 말을 이어갔다.(면접관의 직책이 뭐였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어떤 일을 찾고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늘 그래왔듯 기계적으로 답했다.
전공을 살린 전문직을 원한다고.
오랫동안 그 일을 하기 위해 공부해 왔다고.
"그래요?.. 그런데 그 일을 정말로 하고 싶어서 준비하는 거 맞아요?"
내가 어떻게 보였던 걸까, 왜인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물으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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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가 이 직업을 가지기 위해 몇 년 동안 돈과 시간을 썼는데 이제 와서 어쩌겠어?'
순간, 목 끝까지 뭔가가 치밀어 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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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담담히 털어놓았다.
딱히 이 직무가 하고 싶어서 준비하는 건 아니라고.
혹여나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남들이 말하는 번듯한 직장에서 정년까지 탈없이 다니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분께서는 내 말을 듣더니,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한테도 자식들이 있는데, 나는 아이들한테 무슨 일을 하든 정말 마음이 가는 일을 하라고 늘 이야기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결국 오래 하지도 못할 것이고, 인생이 행복할 수 없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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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학생은 우리가 하는 일이 어울릴 것 같진 않다며,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모쪼록 잘 찾아가기를 바란다고 하시며 면접을 마쳤다.
그날 나는 40분 가까이 진로상담 같은 면접을 보았고,
그 회사와의 인연은 물론 거기서 끝이었다.
그때 그 면접관분께서는, 무기력해 보였던 내가 안타까운 마음에서 하신 말씀이셨을까?
그때는 몰랐지만,
그분이 나에게 해주신 말들이 내 안에 작은 균열을 만들었고,
결국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 금이 조금씩 퍼져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