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내향인의 직장생활
졸업이 가까워지던 무렵, 나는 특별히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전공에 맞는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취업하고, 돈을 벌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믿으면서.
그 길에 들어서기만 하면 앞으로의 삶은 자연스럽게 풀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굳이 그런 고민을 할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그저 남들처럼 자격증을 준비하고 입사지원서를 쓰고, 면접을 준비했다.
일단 어디든 붙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이게 맞는 걸까 하는 의문이 자꾸 들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릴 용기는 없었고, 친구들보다 뒤처지는 것도 싫었기에
조급한 마음으로 어디든 지원서를 넣고 면접장에서는 준비한 답변을 반복했다.
그 과정은 지겹고 공허했지만, 그래도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는 착각을 주었다.
나는 그 착각에 기대어 계속 움직였다. 그렇게 움직일수록 점점 더 지쳐갔다.
그러다,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점점 들었고, 언젠가부터 나는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게 되었다.
분명 앞으로 가고는 있었지만,
어디로 가는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멈출 수는 없어서 계속 움직였다.
서둘러 발을 내디디면서도,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마음한구석에서 떠나지 않았다.
분명히 이게 전부는 아닐 거라고,
어딘가에는 다른 길이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은 했지만,
그 ‘다른 길’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난, 안정적인 직장만 가지면 괜찮아질 거라고 애써 믿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면 이 불안도 사라지고, 사람들과 비교하며 느끼던 열등감도 언젠가는 없어질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공시생으로 보낸 시간의 공백
취업 준비를 하던 중, 공무원 시험을 2년 가까이 준비했었다.
공시생으로 지내던 시간은 그야말로 회색빛이었다.
사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매일 똑같은 하루가 반복됐으니까.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그때가 너무 무거웠던 시간이라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면, 무의식적으로 기억에서 지워버리기도 한다던데
아마 나도 그런 게 아닐까.
그나마 선명하게 남아 있는 건
그 시절, 유난히 중력이 무겁게 느껴졌다는 것.
내 발걸음이 어딜 가든 바닥에 쩍 하고 붙어버린 것처럼 좀처럼 잘 떨어지지 않던 감각이 지금도 기억난다.
나는 원래 하늘을 보는 걸 좋아하는데, 그때는 하늘 대신 보도블록만 바라보며 한숨만 내쉬었다.
고개를 들 여유조차 없었던 것 같다.
아직도 그때의 시야가 이상하리만큼 또렷하게 기억난다.
이른 아침, 독서실에 가서 책을 펴고 집에 돌아오는 늦은 밤까지 하루 종일 외우고, 쓰고, 또 외우고.
시간은 빼곡히 채워져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내 안은 점점 더 비어 가는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오면 내 눈치를 살피며 "고생했다"라고 말 건네시던 부모님.
나는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의 걱정 어린 눈빛과 염려스러운 말들을 마주하면 마음한구석이 찌릿하게 베이는 느낌이 들었다. 미안해서였는지, 스스로 더 초라해진 것 같아서였는지 괜히 아무렇지 않은 척 담담히 반응했다.
그러니까,
그때는 확실하지도 않은 미래의 희망찬 날들을 꿈꾸며 하루를 버티는 게 전부였다.
자존감 같은 건 이미 바닥을 친 지 오래였고,
그 뒤로는 그냥 무너진 채로 버티고 있었다.
그냥 사람들의 기대에 맞춰야 한다는 마음만 남아 있었다.
시험에 붙으면 다 해결될까?
합격하면 성공한 인생이 되는 걸까?
공무원 생활이 나랑 안 맞으면 어쩌지?
애초에 이 길을 왜 선택했을까, 정작 나는 원하지도 않았는데..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결국 그게 나를 더 깊은 곳으로 끌고 갔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