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졌네
나는 통영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랐다. 위로는 언니와 아래로 남동생이 있었고 살림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릴 적 아버지와 어머니가 우리를 키우기 위해 고생하시던 모습이 잔상처럼 남아있다.
아주 조용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그 반에 나라는 아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내 기억 속에도 그 시절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없다.
다만,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대백과사전 중 미술 책만 닳도록 보며 따라 그리고 만들었다. 공부에 대해서는 특별히 관심이 없었다. 미술 특별 활동 시간을 좋아했고 상은 유일하게 사생대회에서만 탔던 기억이 있다. 아이들에게 너는 진짜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아마도 내성적이고 자기주장을 잘 못하던 아이였지 않았나 싶다.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할머니 댁을 갔다. 풀과 산과 하늘과 시냇가 그 안에 물고기. 주말마다 자연을 마주했던 기억이 너무나 아름답다.
그렇게 중학교를 올라갔다. 통영의 바다가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는 학교였다. 그때는 그 풍경이 아름다운지 몰랐다. 중학교 때 전교 등수가 게시판에 붙었다. 전교 15등 하는 친구에게 와 대단하다고 하니 그 친구는 무조건 전교 10등 안에 들 거란다. 나는 너무나 의아해서 왜 그렇게 되고 싶냐니 그 친구는 더 의아한 표정으로 너는 안 하고 싶냐며 물었다. 나는 성적을 잘 받고 공부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그냥 공부하니 공부했다. 반에서 중간 성적 정도 되는 아이. 시험 기간이면 언니가 공부 좀 하라고 했다. 왜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진심 아무 생각이 없었다.
중학교 3학년 졸업을 앞둔 겨울방학. 친구들은 모두 다 학원에 다니며 수학의 정석을 풀 때 나는 집에서 TV를 봤다. 당시 Q채널이라는 다큐멘터리 채널이 있었는데 거기서 방영해 주는 다큐멘터리가 너무 좋았다. 보고 보고 또 봤다. 자연, 휴먼, 역사, 과학, 시사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 좋았다. 하루 종일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혼자 감상문도 적었다. 서서히 내 안에서 좋아하는 것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아마도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 기호에 대하여, 내가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아주 조금씩 그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당시 고등학교는 독서사업을 하고 있어 독서 노트를 만들고 독서를 장려시켰다. 한 권, 두 권, 세권... 수십 권의 책을 읽으며 지금까지 도대체 왜 책을 읽지 않은 건가 후회하며 책을 읽었다. 특히, 도서관에 있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를 정말 좋아했다. 그리고 야생화 사전을 빌려서 꽃 이름들을 외웠고 판소리 춘향전이 너무 좋아 매일 집에서 국악을 들었다. 지리와 역사, 미술 수업을 좋아했다.
나는 이 시기를 내 자아가 폭발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책과 다큐를 통해 매번 새로운 자극을 받으며 내가 좋아하는 것,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하고 찾으려고 했다.
어느 날,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누가 만드는 걸까?”
프로그램 마무리에 나오는 스텝스크롤 그 제일 끝에 PD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 PD라는 사람이 만드는구나! 그때 PD라는 두 글자를 내 마음속 깊이 아주 작고 진하게 적었다. 나에게는 너무나 큰 꿈같아서 꼭꼭 숨기고 부모님에게도 언니, 남동생,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소중한 내 꿈 PD.
우리 집에서 통영 도서관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다리를 건너야 했다.
나는 그 길을 건널 때마다 바다를 바라보며 다짐했었다.
'꼭 PD가 될 거야'
'꼭 PD가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