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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그린 Jan 03. 2024

까꿍이를 보내며 2

< 임신 20주에 아가를 사산하고 임신 증상을 기록하던 메모장에 이어 적은 날 것의 이야기입니다. 그때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고자 오타만 수정하고 원본 그대로 업로드합니다. >



2202년 5월 4일

20주를 넘긴 아이를 하늘나라로 보내는 건 내가 차마 상상도 못 한 방법이었다. 아이를 떠나보내는 아픔과 함께 산모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시간. 아이를 만날 수 없지만 분만을 통해 태아를 밖으로 꺼내야 했다. 


5월 3일 저녁 7시쯤 분만실로 이동을 했다. 하루아침에 분만이라니 이게 무슨 일인가. 분만실로 가기 전 둥글게 나온 배 사진 찍었다. 여기에 까꿍이가 있다. 아직 심장 뛰고 있어. 배를 만지며 동영상도 찍었다. 까꿍이를 초음파로 한번 더 보고 싶고 심장소리를 한번 더 듣고 싶은데 아직 살아있을 텐데 널 보내야 한다. 


말로만 듣던 관장과 제모를 하고 남편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분만실로 들어가 자궁경부를 묶었던 맥수술 실을 풀고 혼자 세 시간을 기다렸다. 기다리다가 슬픔이 올라오면 소리 내서 펑펑 울었다. 누가 듣든지 말든지 큰 소리로 울었다. 지금 생각하면 더 크게 울 걸 싶다. 


자궁을 수축하는 질정제를 넣기 전 남편과 마지막 영상 통화를 하며 내 배를 보여주며 이제 까꿍이 떠난다고. 인사하라고 했다. 안녕 우리 까꿍이. 아빠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사랑해. 다시와. 사랑해. 


간호사선생님이 수축제 질정을 넣어주시니 몸에서 오한이 나고 열이 났다. 이렇게 갑자기 인사도 없이 심장 소리도 못 듣고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게 널 보내는 의식을 치른다니. 이 질정으로 너를 보낸다니. "잠깐만요! 아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데 지금 당장 초음파 보여줘요!" 나는 그런 말 한마디 못하고 질정제를 넣는데도 가만히 있었다. 까꿍이를 보내는구나. 내가 아이를 죽이는 것 같아. 배를 만져보고 까꿍아 까꿍아. 미안해. 질정제를 넣고 너무 추워서 이불을 하나 더 덮었다. 그래도 온몸이 심하게 떨었다. 침대가 흔들리고 숨을 못 쉴 만큼 오한이 왔다. 남편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힘든 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자궁수축제를 넣으니 진통이 왔다. 생리처럼 싸르르 아프더니 잠을 못 잘 만큼 2분마다 진통이 왔다. 그래도 죽을 만큼 아프지 않다. 더 심한 통증이 1분마다 왔고 간호사선생님을 호출하니 수축 체크하는 기계를 달아주셨다. 그러고 두 번째 자궁 수축 질정제를 넣었다. 너무 아프면 무통주사를 놔주신다길래 배가 너무 아파 놔 달라고 했다. 우리 까꿍이는 지금쯤 심장이 뛸까? 지금 어디에 있을까? 하늘에 있을까 내 배안에 있을까?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무통 주사를 맞으니 거짓말처럼 정말 하나도 아프지 않고 아무 느낌이 없었다. 그게 오히려 까꿍이에게 미안했다. 그렇게 나는 어이없게도 잠에 들었다. 밤 12시쯤. 눈을 뜨니 코로나 음성 문자를 받은 남편이 옆에 와 있었다. 남편이 미안하다고. 나 임신했을 때  따뜻하게 말 안 해주고 소중하게 대하지 않고 옆에서 같이 안 자고 안 씻어서 미안하다고. 자기가 소홀했다고. 그리고 다음에는 아기 용품 당근하지 말고 새 걸로 다 사주자고. 앞으로 집안 청소도 하지 말고 일주일에 세 번 청소하는 사람 부르자고. 그리고 제일 좋은 병원 가자고. 병원도 바꾸지 말고 제일 좋은 병원에서 그냥 쭈욱 다니자고. 남편의 목소리가 너무 부드럽고 따뜻했다. 나도 멍하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하다 울다가...


남편이랑 나랑 진짜 하나 되라고 우리 까꿍이가 이렇게 다녀갔나 봐. 우리 서로 더 아끼고 사랑하라고. 둘 다 너무 뾰쬭하니 이제 좀 둥글게 살라고. 둥글게 둥글게. 그러라고 다녀갔나 봐. 그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까꿍아 엄마 아빠가 싸워서 미안해. 엄마가 욕하고 물건 던지고 고함쳐서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까꿍아. 우리 까꿍이 놀랬지.


그렇게 울다 또 잠을 잤다. 약에 취해 자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비몽사몽. 이어서 세 번째 질정제를 넣었다. 하나도 아프지 않다. 내 배를 만져 보며 아직 내 안에 있을 까꿍이. 여기 있니? 선생님께서 내진을 하셨는데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손인지 손가락인지 모를 만큼. 내진 후 아가가 중간쯤 내려왔단다. 가운데 걸려있데... 그런데 엄마는 그 느낌이 전혀 안나. 미안해... 진짜 진짜 내가 아파야 할 텐데 안 아파서 더 미안했다.


자다 일어났다, 자다 일어났다가 도무지 열은 계속 떨어지지 않아 해열제만 세 번을 맞고 남편이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줬다. 열과 함께 오한이 나서 이불을 덮었다가 벗었다가. 그러다가 또 울고 잠이 들고 잠이 들면 꿈도 안 꾸고 잤다. 그 시간 동안 까꿍이 생각을 많이 못해줬다. 미안해. 까꿍이 가는 길 엄마가 외롭게 했어.


새벽 4시쯤 소변을 보라고 했는데 간호사선생님이 그냥 소변줄로 소변을 빼주셨다. 그러고 또 자다가 아침 8시쯤 간호사선생님과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이제 시작한단다. 무통 주사를 맞아서 다리 느낌이 별로 없다. 아래를 소독하고 샘이 와서 바로 뭔가를 꺼내는 것 같더니 그거 너였나 봐. 엄마는 네가 옆에 있는데도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그렇게 세상 무뚝뚝하게 네가 옆으로 지나가는데 말 한마디 없이 널 보냈어. 널 꺼내고 바로 이어서 태반도 꺼냈다. 너와 나를 이어주던 태반. 그렇게 멍하게. 어리둥절하게. 초음파로 자궁을 보니 네가 없어. 네가 없고 나의 원래 자궁 모양이야. 네가 없다는 게 이제 실감이 나네. 내 자궁에 네가 없다. 용기 내서 의사 선생님에게 아기는 죽었냐고 물으니 (어떻게 의사 선생님에게 물은 첫마디가 아기는 죽었냐는 질문이었을까?) 너는 심장이 멈춰서 태어났데. 그랬구나. 넌 언제 하늘의 별이 되었을까? 생각해 보면 시계를 그렇게 계속 봤는데도 널 세상에 꺼낸 시간이 기억나지 않아. 아침 8시쯤에 네가 세상 밖으로 나온 것 같아. 미안 엄마가 왜 그 시간을 기억 못 할까. 


5월 4일. 이 날은 원래 널 보러 초음파 보러 가는 날인데 네가 없어. 내 안에 네가 없어.


그렇게 허망하게 너를 보내고 아빠랑 나는 수술실에 단 둘이 남아 두 시간을 기다렸어.

어쩌면 진짜 엄마 아빠가 되는 시간이었는지도 몰라.


우리에게 다시 와주겠니.

나에게 다시와. 아가야. 내 아기 나에게 다시 와요.

엄마가 안아줄게요 우리 까꿍이..♡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이제 고위험산모 입원실에서 일반 입원실로 이동할 수 있다고 하셨다. 2인실은 다 찼고 6인실이 있는데 근데 거기는 산모랑 아기가 같이 있단다. 간호사의 그 말에 왈칵하고 울며 그냥 고위험 산모 입원실에 있겠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15주가 지나 유산이 된 아이는 법적으로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했다. 20주를 살다 간 얼굴도 보지 못한 내 아이의 장례라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남편은 마음도 추스르지 못하고 장례를 위해 화장을 예약하고 유골함을 고르고 가족들에게 연락을 했다.


나는 10시 반쯤 수술실에서 돌아와서 울다가 안 울다가 울다가 안 울다가...

돌아온 남편이 까꿍이를 넣을 관을 보고 왔는데 크기가 정말 작다고 했다. 그 말에 다시 울다가...

메모장에 널 보낸 이야기를 적었나 아니면 뭘 했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지인들에게 너의 임신 소식을 다 알렸었는데 나중에 그 소식이 출산 안부로 돌아오는 게 무서워 엄마는 서둘러 너의 소식을 다시 다 걷어오기로 했어. 대신 네가 떠난 소식을 전하며 널 위해 기도를 해달라고 했어. 블로그에도 글을 적으며 이름 모를 사람들에게도 널 위해 기도 해달라고 했어. 한 명에게 너의 소식을 알리며 눈물을 쏟고 내 감정을 다 토해내고 다시 다른 지인에게 다시 네가 떠난 이야기를 하고 한 명, 두 명 이야기를 할 때마다 대성통곡을 했어. 마치 장례식장에서 상주가 손님을 맞이하고 고인이 어떻게 떠났는지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렇게 너를 떠나보낸 이야기와 내 슬픔을 정말 숨김없이 말했어. 나는 괜찮다거나 앞으로 잘할 수 있겠다거나 이겨내 보겠다는 그런 맘에도 없는 말은 절대 하지 않고 내 감정이 시키는 대로 너무 슬프다고 정말 괴롭고 아프다고 말했어.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눈물이 너무 난다고. 그렇게 말하다 보니 하루 만에 모든 사람에게 너의 소식을 다 알려버리는 게 갑자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 며칠에 걸쳐 너의 소식을 알리는 카톡을 보내면 다시 또 널 이야기하고 펑펑 울텐데 말이야. 그래도 아직 소식 전할 사람과 나의 가족과 나의 남편, 친구들이 있으니 슬플 땐 언제든 이야기해야지.


나와 너의 소식이 여기저기 구석구석 퍼지길. 

그래서 친하지 않은 사람들도 내 소식을 다 알기를. 

시간이 많이 지나 어느 날 불쑥 '출산은 잘했어'라는 말을 건네지 않기를.


엄마는 진짜 진짜 많이 울어.

남편이 울지 말라는데 진짜 진짜 많이 울어.

그리고 남편이 정말 잘해줘.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그런 남편이 너무 고맙고 남편 마음은 어떨까 싶고 그래. 남편이 나랑 똑같이 양막 파수로 아이를 보낸 유투버를 알려줬어. 중기 유산을 하고 다시 빠르게 아기천사가 찾아왔데. 영상을 보니깐 퇴원하고 삼계탕을 먹길래 나도 저녁은 특식으로 비급여 삼계탕을 시켰어. 내가 반을 먹고 남편이 반을 먹고. 남편이 과일도 사다 주고. 적다 보니 이게 어제인지 오늘인지 조차 헷갈린다. 모든 게 꿈같다. 네가 내 몸에 없는 게 꿈같아.


그렇게 울다가 너에게 사과하다가,

너와 함께 했던 시간을 떠 올리며 다시 울다가,

다시 널 만나기 위해 어느 병원을 갈까 생각하다가

그렇게 널 보낸 하루가 지나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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