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눈부시던 5월의 어느 날
< 임신 20주에 아가를 사산하고 임신 증상을 기록하던 메모장에 이어 적은 날 것의 이야기입니다. 그때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고자 오타만 수정하고 원본 그대로 업로드합니다. >
4월 23일
배가 갑자기 막 나옴! 아침에 화장실 감.
뱃속에 작은 물고기 한 마리 ♡ 사랑해 까꿍아
5월 1일
몸무게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음.
5월 2일 - 20주
새벽에 소변 나옴. 양수인 줄 알고 진짜 식겁함.
두 번이나 나옴. 의지와 상관없이 나옴 ㅠㅠ 요실금인가 이것이 ㅜㅜ
여기까지 아무 걱정 없이 증상을 기록했다.
까꿍이를 하늘나라에 보내고 메모장을 다시 열어 글을 적었다. 그냥 내 마음을 다 토해내고 싶었다.
메모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곳은 내가 누군지 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니깐 내가 하고 싶은 말 다할래.
아주 거칠고 솔직하게 이 아픔을 토해낼래.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거야.'
2022년 5월 2일
햇살이 눈부시게 아름답던 날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엉덩이 아래가 축축했다. 내가 오줌을 쌌구나. 너무 놀라고 부끄러워 속옷을 갈아입고 하루를 시작했다. 그런데 의자와 상관없이 소변이 조금씩 계속 나왔다. 설마 양수 일까 했지만 에이 그럴 리가. 나는 맛있게 스파게티도 해 먹고 내리쬐는 햇볕에 빨래도 널어 말렸다. 그러는 중에도 계속 양수가 조금씩 나오고 있었다. 나는 결단코 요실금에 걸려 소변이 나오는 거라 생각했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계속 소변이 나와 마트에 가서 팬티형 생리대를 샀다. 그때 언니와 통화하며 언니 나 소변이 계속 나온다며 웃으며 말했다. 이 모든 기억은 아가를 보낸 후 깊은 상처로 남아 나를 괴롭혔다.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오후에 급하게 택시를 타고 병원을 갔다. 병원 수속이 마감되었다고 했지만 양수가 새는 것 같다고 말하니 대기를 넣어주셨다. 나는 의자에 앉아 한 시간을 기다렸다. 그때까지 양수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요실금을 어찌 치료하나 하는 생각만 했다. 나는 잠시 뒤 닥칠 미래를 전혀 알지 못했다.
진료실에 들어갔고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는 바로 나왔고 의사는 말했다. 아이고... 양수가 맞네요.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나의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느낌이었다.
당장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입고 간 원피스를 급하게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바로 침대에 엉덩이를 들고 누워 소변 줄을 찼다. 양수가 새지 않도록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이렇게 있으면 양수 새는 곳이 막혀서 퇴원할 수 있다고 했다. 이때까지도 나는 단 한 번도 까꿍이를 보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내 양 옆에는 출산을 앞둔, 출산을 한 산모들이 누워있었다. 가운데 침대에 자리를 잡은 나는 속으로 외쳤다. 까꿍이랑 집에 가야지. 우리 집에 가자 까꿍아. 까꿍아 엄마가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밤새도록 양수가 왈칵왈칵 소변처럼 나왔다. 소변줄을 차고 있는데도 소변보다 더 많이 양수가 나왔다. 양수가 울컥하고 나올 때마다 내 마음도 그만큼씩 무너지고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줄어드는 양수에서 숨 쉬고 있을 까꿍이 생각에 마음이 부서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움직이지 말고 다리와 엉덩이를 올리고 누워 있는 것 밖에 없었다. 절대 울어서도 안된다.
나는 다시 속으로 말했다.
나랑 가자. 엄마랑 집에 가자 까꿍아. 널 떠나보내는 일은 절대 없어.
우리에게 그런 운명은 없어. 너는 그런 운명이 아니야!
뭐라도 하자. 제일 좋은 병원으로 가자.
oo병원 마음에 안 들어. 큰 병원으로 가자. 거기는 다를 거야.
나는 의사 선생님에게 대학병원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러다 새벽쯤 몸에서 열이 났다. 39도가 넘는 높은 수치였다. 나는 그게 추워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쩌면 양수가 세균에 감염이 된 걸 수도 있단다. 나는 그때까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2022년 5월 3일
코로나로 함께 할 수 없었던 남편이 새벽에 병원을 왔고 그렇게 우리는 아침 8시에 OO대학병원으로 전원을 했다. 구급차를 타고 시끄럽게 도로를 질주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양수가 나오지 않았다. 떠 나오기 전 봤던 마지막 초음파에 거의 남아 있지 않던 양수가 다 새버린 걸까. 우리 까꿍이는 어찌 된 걸까. 양수주입술을 해서 양수를 넣을 수 없나? 까꿍아 기적이 일어날 거야. 조금만 참아.
병원에 도착하니 어머님, 아버님이 미리 와 계셨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바로 눈을 감았다. 나는 울면 안 된다. 내 몸에서 수분이 빠져나가면 안 된다. 나는 누운 채로 실려가 초음파를 봤다. 남아 있던 양수가 모두 새어버려 까꿍이는 양수 하나 없이 쪼그라든 채로 심장이 뛰고 있다.
의사 선생님 제발 살려주세요. 까꿍이 살려주세요.
의사 선생님께서는 오랫동안 초음파를 살피셨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를 살리고 싶나요?"
"네. 꼭 살려주세요"
그렇다면 방법이 있다. 양수 없이 항생제 주사를 맞으며 24주 이상 뱃속에서 아기를 키워 낳으면 된단다. 단,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첫 번째, 앞으로 산모의 몸에서 열이 단 한 번도 나지 않을 것. 만약 열이 난다면 무조건 아이를 포기할 것. 두 번째, 양수가 없어 아이 폐가 미성숙 될 것이다. 따라서 합병증이 동반되며 아이를 낳아도 바로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 세 번째 양수가 없어 아이가 쪼그라들어 있기 때문에 태어나면 관절 등이 굽어져 나와 재활을 해야 하며 장애를 가질 수도 있다. 이 세 가지 조건 중에 제일 위험한 건 첫 번째로 열이 난다는 것은 산모가 양수를 통해 세균에 감염된 것을 뜻하며 이는 나중에 패혈증으로 산모가 사망할 수 도 있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갑자기 몸에서 힘이 났다. 뭔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눈물 따위는 싹 거두고
까꿍아! 엄마가 잘 버텨볼게. 엄마 할 수 있어. 남편 걱정 마! 나 까꿍이 꼭 지킬 거야! 나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소변줄을 빼고 일어나 씩씩하게 세수하고 양치를 하고 거울 보며 정신 무장을 하며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침대에 눕자마자 몸에서 열이 났다.
오 신이시여. 제발. 제발.
간호사 선생님이 의사 선생님을 불러야겠다고 하셨다. 제발. 나에게 오지 마요. 제발. 의사 선생님 오지 마세요. 간호사 선생님 다시 한번 더 다시 재봐요. 저 열 안 나요. 안 뜨거워요.
결국 의사 선생님들께서 오셨고 이제는 까꿍이를 보내줘야 한다고 하셨다.
나중을 위해
내 몸을 위해
까꿍이를 보내줘야 한데.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우리 까꿍이는 영문도 모른 채
그렇게 20주를 살다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까꿍이에게
사랑해.
정말 정말 사랑해.
너와 함께한 모든 순간을 사랑해.
1월 4일 날 찾아온 작은 콕콕거림도, 예쁘게 만든 아기집도, 동그랗고 귀여운 난황도, 너의 작고 반짝이던 심장도, 신기하던 너의 움직임도, 다섯 개 손가락도, 신비롭던 너의 태동도, 괴로운 입덧 마저, 네가 내 몸에 있다는 신호라는 걸.
너와 함께한 모든 순간을 엄마가 다 기억할 거야.
까꿍이 덕분에 정말 정말 행복했어. 나에게 와줘서 너무 고맙고 미안해. 부족하고 죄가 많은 엄마라 널 이렇게 보내는구나. 엄마랑 아빠가 까꿍이게 너무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하고 또 사랑해. 하늘나라에서 복떵이랑 까꿍이랑 둘이서 외롭지 않게 있었으면 좋겠다. 나중에 엄마랑 만나면 많이 안아줄게요. 나에게 꼭 다시 와줘. 그때는 더 따뜻하게 품어줄게. 널 위해 기도하고 많이 울고 슬퍼해야지.
너와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이 꿈처럼 아름다웠어. 너무 행복했었어. 너와 벚꽃을 보던 날도, 너와 봄날 함께 산책했던 순간도, 밥 먹을 때 느껴지던 물고기 같은 너의 태동도, 너무 빛나서 생각만 해도 꿈같고 그립다.
선물 같던 너와 나의 20주. 봄날의 20주.
너무 아름다워서 너무 슬프구나.
사랑해. 정말 정말 사랑해.
언젠가 나에게 꼭 다시 찾아와 줘.
나의 까꿍. 사랑해. 정말 너무 사랑해.
미안하고 미안해. 까꿍아 고마워.
"까꿍이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사랑하는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