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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그린 Jan 10. 2024

까꿍이를 보내며 3

< 임신 20주에 아가를 사산하고 임신 증상을 기록하던 메모장에 이어 적은 날 것의 이야기입니다. 그때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고자 오타만 수정하고 원본 그대로 업로드합니다>



5월 5일


울면서 알게 된 건데 누워서 울다가 한쪽 팔로 눈을 덮으면 그 어둠 사이로 빛의 잔상이 남아 저기 멀리 아기 초음파가 보인다. 정말 작을 때 까꿍이 모습 같은 게 보였다 사라지고 다시 좀 더 컸을 때 형체 같은 모습이 보였다 사라진다. 나는 너무 놀라서 몇 번이고 눈 떴다가 팔로 눈을 감싸 아이를 만났다. 어쩔 땐 멍하니 누워 병원 천장의 석고 보드 무늬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많은 점들 중에서 웃는 아기 얼굴을 찾는다. 어떤 건 울고 있는 아기 표정이 보일 때도 있고 화가 난 아기 표정이 보일 때도 있는데 그럼 나는 어서 서둘러 웃고 있는 아기 표정을 찾는다. 그 표정을 찾아 나도 같이 웃었다.


아침 일찍 남편이 왔다. 남편이 따뜻하고 너무 좋다. 남편이 옆에 있으면 위로가 되어 눈물도 안 난다. 그러다 남편 없이 혼자가 되면 어김없이 계속 운다. 남편이랑 있으면 마음이 좋아 안 울어서 좋고 혼자이면 펑펑 울 수 있어 좋다. 


오늘은 까꿍이 장례를 치르는 날이다. 까꿍이 가는 길에 예쁘게 옷 입고 신발 신고 가라고 태어나면 주려고 만든 호랑이 신발이랑 손싸개랑 배넷저고리를 같이 넣어 화장하기로 했다. 맥수술 때문에 옷을 다 만들고 이름을 달아주지 못했었는데 비어있는 이름표에 자수 대신 네임펜으로 까꿍이 이름을 적어줬다. 반짇고리에서 내가 만든 아가 신발이랑 옷을 꺼내다 보니 제일 아래에 뜯지도 않은 머리싸개 만들기가 들어 있었다. 이전에 신생아 베넷옷 패키지를 만들면서 왜 머리싸개가 없을까 하고 계속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제일 아래에 들어있구나. 엄마가 알았으면 우리 까꿍이 모자도 만들어줬을 텐데... 머리 춥게 하고 떠날 거 생각하니 또 마음이 무너져서 너무 슬펐다. 애착인형을 꼭 끌어안으니 까꿍이 같아서 정말 많이 울었다.


오후 2시에 남편은 화장터로 갔다. 가기 전 내가 너무 울어 남편이 꼭 안아주고 그 품에서 또 한참을 울었다. 나도 같이 가면 좋을 텐데 의사 선생님이 아직 퇴원을 할 수 없다고 하셨다. 형부에게 힘내라 연락이 왔는데 언니가 며칠 동안 잠도 못 자고 나랑 까꿍이 생각에 계속 울었단다. 그런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울먹거리며 지금 화장터에 도착했는데 아빠가 장례 치를 때 분유라도 사서 앞에 놓아주라고 했단다. 그런데 자기는 분유를 생각도 못하고 빈손으로 장례식장에 도착했다며 미안하다고 울었다. 괜찮다며 남편에게 연락해 분유를 사달라고 했다.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먹이지 먹이지 못하고 양수도 없이 간 아이를 생각하니 또 너무 슬퍼 마음이 무너졌다.


남편은 유골함을 어떤 걸로 할지, 관을 어떤 나무로 할지 등등 장례 물품에 대해 내가 직접 선택할 수 있게 매번 사진을 보내며 연락을 주었다.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보내준 사진으로 유골함을 고르고 연락이 없더니 그렇게 화장이 진행되었나 보다. 화장이 끝나고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관 안에 분유도 가득 넣어주고 내 편지와 옷과 인형도 잘 넣어주었단다. 그리고 급하게 산 분유가 알고 보니 미숙아용 분유였다며 까꿍이에게 딱 맞는 거였다며 기뻐하는 남편 목소리에 나도 좋아 웃음 나왔다. 까꿍이는 그렇게 우리 엄마, 언니, 남동생, 어머님과 형님 그리고 남편 곁에서 외롭지 않게 떠났다. 


유골함은 내가 항상 까꿍이와 누워있던 침대 내 자리에 잘 놓아달라고 했다. 나랑 까꿍이가 항상 누워 있던 곳. 너와 내가 함께였던 곳. 까꿍이 유골함이 놓인 침대 사진을 보니 정말 너무 슬펐다. 오늘은 아빠랑 같이 자요. 내일 엄마가 갈게.


모든 아기 관련 어플을 탈퇴하고 지웠다. 블로그와 인스타 알림도 껐다. 베이비페어와 아기 물품 핫딜도 차단했다. 나중에 알림이 뜨면 겨우 쌓아 올린 마음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아서 서둘러 지웠다. 


출산한 다음날부터 맥박이 느려서 수액을 계속 맞았다. 언제 퇴원할 수 있냐고 물으니 나는 몸에 열이 났기 때문에 48시간 이상을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맥박과 체온을 측정하러 간호사가 오는데 갑자기 내가 더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더 오래 있으면 좋겠는 마음인지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뭔가 병원에 있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다시 찾아 올 까꿍이를 위해 아프면 안 된다. 빨리 건강해져서 집으로 가자.


장례를 끝내고 남편이 돌아왔다. 따뜻하게 안아주며 까꿍이 좋은 곳으로 갔다며 잘 보내주고 왔단다. 그리고 바지 주머니에서 작은 들꽃 한송이를 꺼내 나에게 줬다. 향기가 너무 좋아 나 주려고 몰래 꺾어왔단다. 정말 향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 고마워 남편.


남편은 내 손발이 되어 모든 걸 챙겨줬다. 내가 하는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이야기하는 나를 가만히 보다가 내 두 볼을 어루만져 주며 고생했다고 미안하다며 안아준다. 이제 더 이상 울지 말란다. 석식에 어머님이 해주신 반찬도 다 데워서 가져다주고 자기 전 해야 하는 좌욕도 준비해 주고 잠자리도 정리해 주고 양치도 앉아서 하라고 어디서 의자도 구해서 가져다줬다. 앞으로는 조금이라도 오래된 음식 절대 먹지 말자고 쌀도 조금씩 신선한 거 사서 먹고 과일도 제일 좋은 것만 먹잖다. 다시 아기 가지면 앉아서 씻으라고 낙상 방지 의자도 사준다 했다. 아주 작은 아픔이 느껴지면 무조건 자기에게 말하라는 남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부서진 내 마음 사이로 들어와 마음을 이어주는 것 같았다.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내 눈물이 말라가는 걸 느꼈다. 누군가의 연락으로 툭하고 그 눈물샘이 열리지만 이 글을 적으며 내 눈물이 점점 줄어드는 게 느껴진다. 까꿍이가 이렇게 나와 남편을 더 가까이 이어주려고 천사가 다녀갔구나. 우리에게 천사가 다녀간 거야. 나의 아기 천사 까꿍이 사랑해.


늦은 밤, 남편이 따뜻하게 오래도록 안아주고 집으로 돌아갔다. 남편 고생 많다 하니 내가 더 고생했단다. 고마워 남편. 내 남편이라 너무 고마워. 남편이 내 옆에 있기에 눈물 흘리지 않는다. 조용히 이 메모를 하면서도 눈물 흘리지 않았다. 이전에 내가 블로그에 기록한 까꿍이 주수 포스팅도 울지 않고 다시 읽었다. 기록해두길 잘했다. 까꿍이 초음파 사진을 보며 다시 널 느끼며 마음이 아려오고 이렇게 귀엽고 예뻤는데 콧대도 있고 양수가 가득했는데... 다섯 손가락 마디마디 뼈가 이리도 선명했는데... 그래도 울지 않고 읽으며 널 사랑했던 내 마음을, 너와 함께 행복했던 시간을 다시 떠올리며 추억했다. 기록해 두길 참 잘했다. 


잠들기 전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아무도 없는 집이 심난하고 싫단다. 심난해하지 말고 까꿍이랑 잘 자라고 사랑한다고 우리 서로 더 사랑하라고 까꿍이가 와 준 것 같다고 말해줬다. 남편은 나에게 항상 하던 말로 답을 했다. 행복하게 살자고 사랑한다고. 그래 정답이다. 행복하게 살자. 남편이 나 무슨 꽃 좋아하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꽃은 다 좋다고 했다. 잘 자. 오빠도 잘 자.


까꿍아 나에게 와준 예쁜 아기 천사.

아직 널 완전히 떠나보내지 못했지만 다시 또 펑펑 울겠지만 네가 나에게 주고 간 것이 너무 많기에 참 고맙고 미안해. 엄마는 앞으로 더 많이 울 거야. 엄마가 우는 건 널 애도하고 추억하기 위함이니 엄마가 울어도 걱정하지 마요. 떠나고 나니 더 사랑하게 되는구나. 네가 내 안에 있을 때 지금 보다 더 사랑해 줄걸.


내 사랑 우리 아기.

엄마에게 다녀간 우리 아들 까꿍이.

엄마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널 보낼게.

다시 우리에게 와줘요.

건강하게 품어서 다시 만날게.

사랑해 까꿍아.

고맙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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