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알지 못했어
나는 결국 퇴사하지 못했다. 대신 1년의 사사 휴직을 선택했다. 일과 회사에 대한 미련이 남아 도저히 퇴사할 수 없었다. 그 당시 1년의 휴직도 큰 결심이었다.
여기서 잠시 나의 난임 역사를 되돌아보자.
나는 2017년 4월에 결혼을 했고 임신이 되지 않아 2019년 봄에 난임 병원을 찾았다. 당시 내 마음에 타격 같은 건 일도 없었다. '내가 난임이라니!', '임신이 안되면 어쩌지?' 같은 놀람과 불안도 없었다. 그 정도로 무지했고 밝았고 걱정이 없었다. 3번의 과배란으로 자연임신을 시도했으나 임신이 되지 않았다.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과배란 다음 과정은 인공수정이었고 그다음은 시험관이었다. 나는 시간 낭비도 하기 싫고 확률도 낮은 인공수정보다는 확실한 시험관으로 빨리 임신을 하고 싶었다. 임신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좋은 엄마가 되어야지'라든가 '아가야 어서 나에게 오렴'과 같은 마음이 아니라 게임을 하듯 임신이라는 게임에 하루빨리 승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슬픔 같은 건 없었다. 내가 아이를 원하니 시험관을 선택하는 거야. 그러니 시험관의 힘듦은 참고 견뎌야 해.
그렇게 처음으로 배 주사를 맞았고 난자를 채취했고 이식을 했다. 첫 이식 결과는 비임신이었다. 별로 슬프지 않았다. 그다음 두 번째 이식을 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두줄을 보았다. 임신을 게임으로만 대하던 나에게 두줄은 너무나 낯선 설렘이었다. 게임의 승자가 느끼는 감정이 아닌 기대와 설렘이 가득한 기쁨의 감정이었다. 피검을 통과하고 아기집을 보고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 이 모든 것이 기적을 통과하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모성애를 느끼지 못해 아가야라고 부르는 것이 부끄러웠던 6주. 병원 진료를 보러 갔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아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는데 곧 유산이 될 거란다. 3일을 기다렸다가 소파수술을 하자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바로 포기를 해버렸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조심해서 걷던 걸음도 거칠게 걷고 먹지 않던 라면도 먹었다. 그렇게 3일이 지났고 병원을 갔는데 아기가 보였다. 나는 포기하고 엉망으로 시간을 보냈는데 아기는 3일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난황은 비정상적으로 컸고 심장박동도 정상 수치보다 느렸다. 예후가 좋지 않을 거라며 의사는 나에게 끔찍한 형벌을 내렸다. 아이 심장이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가 소파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제발 아이가 건강하게 주세요'였을까?
'아이 심장이 빨리 멈추게 해 주세요'였을까?
아주 끔찍한 시간이 흘러갔고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나에게 주어진 시련에 참 괴로웠다.
참 많이 울었지만, 나는 별로 슬프지 않았다.
유산 후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덤덤히 할 때면 친구들은 내가 너무 덤덤해서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러나 친구의 말이 무색하게 나는 빠르게 몸과 마음을 회복했고 회사에 복귀했다. 예전처럼 밤을 새워서 일했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가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렇게 6개월을 밤새서 일하고 한 달의 휴가가 주어지면 시험관을 했다. 휴가 시작과 동시에 마지막 남은 배아를 이식했다. 그렇게 다시 두줄을 만났다. 첫 임신 보다 더 큰 설렘과 기쁨, 그리고 희망을 느꼈다. 내 마음이 점점 진심으로 아이를 원하고 있구나. 그러나 당연히 통과할 거라 믿었던 1차 피검 수치가 50도 넘지 못했고 그렇게 화유가 되었다. 슬픈 미래를 그리지 않았던 나에게 지난번 유산보다 이번 화유가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울면서 나에게 질문을 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임신을 얕잡아 보지 않았는가?
진정으로 엄마가 되고 싶은가?
너의 커리어를 포기할 수 있는가?
내가 살아온 삶의 패턴이 문제였다. 나는 임신을 얕잡아 보았다. 그리고 진정으로 엄마가 되고 싶어졌다. 커리어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의 휴직을 시작했다. 쉬지 않고 밤새서 일하던 나에게 커다란 휴식의 시간이 주어졌고 그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불안해하면서 시험관을 시작했다.
휴직 기간 동안 임신에 성공해서 복귀해야 했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자신감이 있었다. 유산 이력이 있던 나는 난자채취 후 배아 유전자 검사(PGT)를 했고 건강한 배아를 얻기 위해 두 번의 난자 채취를 했다. 그렇게 건강한 배아를 딱 하나 얻을 수 있었다. 배아를 이식하던 날 교수님이 보여주신 배아 사진을 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저 배아는 분명 나의 아이가 될 거야. 이번에 분명 임신을 할 거야. 그때의 나는 마치 미래를 아는 사람 같았다.
그렇게 정말 임신이 되었고 1차 피검과 2차 피검을 건강하게 통과했다. 다이아몬드 같은 난황과 심장의 반짝 거림과 우렁찬 심장 소리도 들었다. 말로만 듣던 난임 병원 졸업도 하였고 꼭 해보고 싶었던 부모님 임밍아웃 이벤트도 했다. 15주가 지나 배도 점점 불러왔고 18주쯤 태동도 느꼈다. 내 몸 안에 생명이 자라고 있음을 내가 생명을 품고 있음을 매 순간 느꼈다. 참 경이로운 시간이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나는 여전히 임신을 얕잡아 봤던 것일까?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
나를 벌하기 위한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