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아들과 도쿄여행
20년 전의 도쿄는 세련되고 화려한 도시였다. 그동안 나는 결혼을 하고,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이 생길 만큼의 세월을 보냈지만, 다시 찾은 도쿄는 기억 속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도시는 어딘가 멈춰버린 듯했고, 조금은 도태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긴자는 달랐다. 에도시대부터 상업이 활발했던 곳으로 백화점과 유명 브랜드 매장들이 많고, 도쿄 소비문화의 중심지답게 화려하고 다른 곳보다 더 세련된 느낌이었다. 연말 연휴 차 없는 넓은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건물 유리에 반사된 햇살이 긴자를 더 환하게 만들어 주었다. 특히 긴자식스(GINZA SIX)의 현대적인 외관은 '도쿄는 역시 도쿄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우리는 긴자를 둘러보기 전에 근처 츠키지 시장에 가보기로 했다. 츠키지 시장은 1935년에 문을 연 일본 최대의 수산물 시장으로 해산물과 길거리 음식들이 유명하다. 아들은 일본의 시장 분위기도 느껴보고 맛있는 길거리 음식도 먹어보고 싶다기에 우리는 먼저 그곳으로 향했다. 긴자식스에서 약 15분 거리라, 거리를 구경하며 천천히 걸어갔다.
츠키지 시장은 생선과 해산물, 식당들이 이어져 있었고, 조리 중인 음식 냄새가 뒤섞여 시장 특유의 향과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긴 줄이 늘어선 계란말이 가게였다. 호기심이 들어 하나를 사 먹어보았는데, 아들이 하나씩 더 먹자고 하여 우리는 다시 줄을 서 세 개를 더 샀다. 일본 특유의 단맛이 나는 부드러운 계란말이로, 반찬이라기보다 간식에 가까운 맛이었다.
시장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음식이 있었다. 투명한 컵에 담긴 길고 얇은 고구마튀김이었다. 많은 사람들 손에 이 튀김이 하나씩 들려 있어 우리도 그 가게를 찾아갔다. 익숙한 맛이었지만, 이렇게 큰 고구마는 처음 봤다. 아들은 일본의 고구마가 정말 이렇게 큰 건지, 아니면 특별히 만든 건지 궁금해했다. 아는 맛이지만 그래도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그리고 작은 접시에 몇 점의 초밥이나 사시미를 파는 가게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상점에서 초밥 한 접시는 보통 몇천 엔, 비싼 곳은 5천 엔이 넘는 메뉴도 있어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중에는 소고기 초밥에 성게알을 얹은 초밥을 한국 돈으로 5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판매하는 곳도 있었다. 화려한 가격표를 뒤로하고 우리는 그곳의 분위기만 느끼고 발걸음을 돌려 긴자의 메인 거리로 다시 갔다.
주말이라 그런지 긴자의 거리는 차 없는 거리로 여행객들은 곳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의 손에는 유니클로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긴자 메인 거리에는 유니클로 본점과 자회사 GU 매장 나란히 있어, 늘 여행객들이 붐빈다고 한다.
유니클로 긴자 본점은 12층 규모로, 우리도 한참을 둘러보았다. 1층은 갤러리처럼 꾸며져 있었고, 중간층에는 원하는 디자인을 직접 제작하거나 수선을 바로 받을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바로 옆의 GU 매장은 5층 규모로 합리적인 가격 때문이지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는 긴자식스로 갔다. 긴자식스는 도쿄 최대 규모의 복합 쇼핑몰답게 패션, 예술, 음식이 한 곳에 모여 있었지만, 하루 종일 걸었던 탓에 모두 둘러보지는 못하고 조금 구경하다가 옥상정원에 앉아 쉬었다.
아들은 츠키지 시장을 먼저 가지 않았다면 우리 손에도 다른 사람들처럼 쇼핑백이 가득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긴자는 쇼핑을 목적으로 온 사람들에게는 천국 같은 곳이지만, 사춘기 아들에게는 다행히도 ‘볼거리가 많은 거리’ 정도로 남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