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X세대의 여행산문집 사서고생기(2017 일본 오키나와)
오키나와의 태풍 시기는 6월부터 10월까지, 그중에서도 7월~9월이 가장 빈번하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
10월 27일 오키나와로 향하는 비행기가 태풍으로 완전히 ‘취소’되었다.
비행기 연착은 여러 번 겪어봤지만, 출발 전날 저녁에 취소 문자가 온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공항에 가서 마냥 기다리는 것보단 나았을까... 여행 일정이 4박 5일에서 3박 4일로 줄어버리다니...'
하루가 날아가버렸다는 생각에 당황스럽고 속상해서 한숨이 나왔다.
원래 출발이 이튿날 오후 1시 30분, 우리 가족의 아쉬움을 가득 담고 인천에서 비행기가 무사히 이륙했다. 출발한 비행기는 약 2시간 만에 오키나와 나하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일정이 하루 짧아진 만큼, 한국식 ‘빨리빨리 모드’로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첫 렌터카 수령부터 난관이 닥쳤다.
이번 여행은 엄마 환갑을 기념해 엄마, 이모, 동생네 가족을 포함한 총 7명이 함께하는 첫 해외여행이었다.
어르신 두 분과 아이 둘이 포함되어 있어 대중교통으로 여행하기 어려울 것 같아 렌터카를 예약했다.
다행히 숙소나 렌터카는 자연재해로 인한 취소라 수수료 없이 정리되었지만,
어제 비행기가 취소돼서 오늘 나와 함께 온 여행객들과 원래 이날 예약한 사람들까지 겹치면서, 렌터카 수령만 1시간 반이 걸렸다. 10살도 안 된 조카들은 배고프고 심심하다며 몸을 배배 꼬고, 엄마와 이모의 표정도 굳어갔다. 계획 담당인 나 역시 하루를 허비한 것도 속상한데 가족들 눈치까지 보이니 미안한 마음과 동시에 왜 내가 미안해해야 하는지 짜증이 났다.(물론 미안해하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이렇게 첫 해외 가족여행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겨우 렌터카를 받고 저녁을 먹기 위해 소고기로 유명한 ‘류쿠노우시’라는 식당으로 갔다.
운전석이 한국과 반대라 어색해하는 제부와 제주도 인 듯 아닌 듯 창밖으로 펼쳐진 이국적인 풍경에 슬슬 여행하는 기분이 났다. 하물며 인천공항에서 간단히 점심 먹은 게 전부인 우리는 소고기 먹을 생각에 들떠있었다.
"여행텐션 끌어올려~~" 하면서 30분을 달려 도착했는데...
헉..
또 1시간 대기.
인내심 테스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이후의 여행은 순조로웠다.
비오스힐, 비세자키 해변 자전거 렌털, 츄라우미 수족관, 만좌모, 아메리칸 빌리지까지—짧아진 일정에도 대부분의 계획을 소화했다. 조카들이 물만 보면 뛰어드는 타입이라 세스코 해변에서 반나절 물놀이 하는 계획도 있었는데 아직 태풍의 여파로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워서 취소한 덕에 시간적 여유가 좀 있기도 했다.
그래도 많이 아쉬워하길래 해변에서 발만 담그자고 세스코 해변에 잠시 내렸다. 사진 찍느라 정신 팔다 보니 어느새 막내조카는 물속으로 뛰어들어 온몸을 적셨고 찬바람을 맞으면서도 한참을 그렇게 놀았다. 입술이 퍼렇게 질린 채 이를 딱딱 부딪치며 덜덜 떠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감기 걸릴까 봐 수건으로 감싸 안고 차로 달려가는데 웃음이 나왔다.
한국 돌아와서 조카들에게 오키나와 여행 중에 뭐가 제일 좋았냐고 물으니,
“바다 들어간 게 제일 재미있었어!”라고 했다.
비행기 타고 다른 나라까지 갔는데 결국 기억에 남는 건 물놀이라니...
허무하면서도 '만족시키기 참 쉬운 놈들이군. 후훗.'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 역시 오키나와를 떠올리면 태풍과 조카의 퍼런 입술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그러고 보면 여행이란 게 어디에 갔고 무엇을 먹었다는 것이 생각보단 큰 의미를 주는 거 같진 않다.
우리가 함께 있었고 어떤 인상적인 일들을 겪었는지가 중요할 뿐.
단지 여행은 우리들의 인상적인 경험에 대한 확률을 높여주는 장치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 해가 벌써 엄마의 칠순이다.
이번엔 또 어디로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