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여자4람, 혼자4는 이야기
서울에 살 때는 차가 없어도 불편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친구들과 모임장소를 정할 때면 차가 있는 친구들은 "거기 주차는 돼?"라고 제일 먼저 물어보지만 난 평생 어디 갈 때 주차공간을 걱정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모임을 하면서도 '이 맛있는 술을 차 때문에 못 마시다니...' 하며 오히려 차 있는 친구들을 짠하게 봤다.
하지만 청주에 살게 되면서 100여 명 되는 직원 중에 차가 없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사실이 꽤나 충격적이더라.
'갓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도 차를 가지고 있는 게 디폴트 값이라니... 난 뭐 하고 산건가.'
현타가 씨게 왔지만 버틸 때까지 버텨보자는 심정으로 중고자전거를 구매해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그래서 직원들은 자출족(자전거로 출근하는 사람들)인 나를 끊임없이 신기해하고 기특해하고 건강하다고 부러워하면서 동시에 안쓰러워한다.
그래도 청주에서 일하면서부터는 출장 업무가 많다 보니 운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15년 전 장롱면허를 꺼내 운전 연수도 받고 삼촌 찬스를 써서 겨우겨우 운전을 할 수는 있게 되었다. 출장 갈 때만 관차를 몰다 보니 실력이 잘 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맛에 드라이브하는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도 공유카 서비스를 이용하면 훨씬 더 알찬 여행을 할 수 있게 돼서 배우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3년 전 '나 혼자 산다'에서 배우 경수진이 한강에서 석화를 먹으며 카크닉(car+picnic)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혼자서 잘 챙겨 먹고 잘 노는 모습을 보니 그 배우가 너무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따라 해 보고 싶은 마음에 레이에 관심이 갔다. 사실 나는 차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어서 벤츠랑 아우디 마크도 헛갈려하는 사람으로 외형만 보고 차의 기종을 맞힐 수 있는 것은 레이가 유일한데 나에게 레이는 카크닉의 낭만, 운전의 용이성, 저렴한 렌트비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드림카인 셈이다.
2023년 크리스마스 연휴는 가족과 남자 친구가 생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어찌하다 보니 40 평생 처음으로 나 홀로 크리스마스이브를 맞게 되었다.
'3일 연휴를 집에서만 보낼 순 없지. 암.'
3주 전부터 공유카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서 레이를 예약했다.
카크닉 장소는 폭풍 검색 끝에 청주 카크닉 장소로 유명한 옥화대로 가기로 했다. 미리미리 다이소에 들러 식탁으로 사용할 겸 재료 운반에 필요한 폴딩 박스와 뚜껑인 고무나무커버, 라면 끓일 양은 냄비, 굴 찍어먹을 소스를 담을 종지 그리고 덜어 먹을 용 접시를 구매하고 제일 중요한 식재료인 석화는 반각화와 생굴 중에 고민하다가 씻는 곳도 없는데 반각화는 왠지 불편할 것 같아서 생굴로 구매했다.
결전의 날을 이틀 앞둔 어느 날 친구와 카톡을 하면서 나의 멋진 계획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솔직히 말하면 일주일 전부터 혼자 가기 싫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떡밥을 뿌리고 다니던 중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한 명이 서울에서 당일 치기로 내려오겠다고 덥석 미끼를 물어주는 바람에 급 만남이 성사되었다. 월척이다!
그나저나 이럴 줄 알았으면 생굴 말고 그냥 반각화로 시키는 건데...
당일날 청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친구를 픽업해서 옥화대에 도착했다. 계곡 바로 옆에 차를 세우기엔 자갈밭이라 괜히 남의 차 고장 내킬까 저어 되어 내려가지는 못하고 적당한 곳에 차를 주차하고 점심 준비를 했다.
뒷좌석을 평평하게 만들고 찬바람 부는 추운 날씨였지만 카크닉 감성을 위해 차 트렁크 문을 열고 요리를 시작했다. 반려견과 산책 중이시던 분들과 계속 눈이 마주쳐서 민망하기도 하고 양파를 다져 굴 찍어 먹을 소스를 만들다가 라면은 다 붓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친구는 원래 굴을 좋아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엉망진창이었지만 그래도 한참 수다를 떨고 7080 노래도 따라 부르고 커피도 마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랫동안 해보고 싶었는데 별거 아니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가끔 이렇게 공유카 빌려서 컵라면에 믹스커피, 부르스타 그리고 책만 챙겨 와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브런치북 제목에 맞게 혼자지만 꿋꿋하게 보낸 크리스마스이브 후기를 쓰려던 계획은 틀어졌지만 그래서 한편으론 다행스럽고 더더더더 행복했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