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첫 태양보다 따뜻했던 가족

4십대 여자4람, 혼자4는 이야기

by 렐레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태양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1월 1일이면 괜히 일출이 보고 싶어 진다.

흔히 말하는 '해맞이 명소'라고 하는 곳까지 굳이 차를 타고 찾아갈 정성은 없고(물론 차도 없고), 집 근처 부모산 정상까지 30분이면 오를 수 있어서 그곳을 애용하고 있다. 정확히는 해맞이를 시도했지만 2년 연속 구름에 가려져 해를 보지는 못했다.


2024년은 서울 엄마집에서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엄마집도 백련산 입구 옆이라 3년 연속 나 홀로 일출보기를 감행했다. 새해 전날, 가는 해를 잘 보내야 한다는 핑계로 타종행사 보고 새벽까지 술을 퍼마시다 보면 다음날 일찍 일어난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 버프라는 것이 있어 어떻게든 눈을 뜨고 새벽 칼바람을 이겨내며 꾸역꾸역 어두운 산을 오르게 된다.


난 평소 둘레길이나 산책은 좋아하지만 힘들게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등산은 도대체 왜 하는지 이해를 못 하는 사람이다. 저질체력이라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얼마 가지 않아 숨이 차올랐고 심장은 두근거렸다. 칼바람은 어느새 땀을 식혀주는 상쾌한 바람으로 바뀌어 있었고 나는 아침 일찍 등산을 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취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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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길을 걷는데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쪽은 이틀 전에 내린 눈이 다 녹지 않아서 한겨울이고 반대편은 낙엽이 떨어져 있어 늦가을처럼 느껴졌다. 그 사잇길로 지나가는데 두 계절의 경계선을 걷고 있는 듯해서 신비롭고 재밌는 인상을 받았다.


백련산 전망대까지는 30분이면 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8시가 다 되어서 도착했다. 다행히 아직 해는 올라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다년간의 일출 짬밥으로 구름 위로 해가 올라오려면 일출 시간보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는 것쯤은 예상했다. 문제는 조금이 아니라 30분이 지나도 안 올라와서 결국 3년 연속 결국 해를 못 봤다는 것.


해가 뜰락 말락 뽈그스름해진 구름만 지켜보다가 마음속으로 새해 다짐을 하고 쿨하게 발길을 돌렸다. 뭐 한 두 번도 아니고... 새해 첫날 이곳에 왔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니까.(아직 나한테 취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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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올 때는 아까 온 길과 다른 길로 가고 싶어서 좀 크게 돌았다. 무작정 직진만 하다가 슬슬 내려가야 할 것 같아서 길인지 아닌지 애매한 샛길로 일단 방향을 틀었다. 내려오다 보니 정말 가파른 길이었다. 길은 좁고 낙엽 위에 눈이 쌓여 너무 미끄러워 한 발자국 내딛기가 쉽지 않았다.


내 앞에는 아이넷과 부모님. 총 6명이 일렬로 서서 이 길이 정말 길이 맞는지에 대해 시끌시끌 실랑이하며 내려가고 있었다. 앞에 가던 꼬마가 뒤를 돌아보며 나에게 물었다.


"이게 진짜 길이 맞아요?"

"저도 오늘 처음이라... 화살표 표시가 있긴 했으니까 길이 맞긴 맞는 거 같아요."

나 역시 그대들이 있어서 따라왔다는 말은 삼켰다.


가장 첫째는 초등학교 4학년쯤 되어 보이고 가장 막내는 한 5살쯤으로 보이는 꼬맹이었다. 막둥이는 아빠의 보호아래 제일 앞에 있었고 엄마는 여긴 길이 아니라고 다시 올라가자는 첫째에게 이제 와서 올라가는 건 더 힘들다고 발에 힘주면서 내려오면 괜찮다며 연신 다독이고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둘째, 셋째는 맨 뒤에 서서 서로 손을 잡아 주며 내려가고 있었다. 아니 이렇게 친한 남매가 세상에 존재한단 말인가?

속으로는 손을 놓고 가야 덜 넘어질 것 같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너무 흐뭇해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이들의 걷는 속도가 느리다 보니 답답한 마음도 들었지만, 정말 겨우 한 명 설 만한 길에서 비켜줄 공간도 없고 나 역시도 너무 미끄러워서 6명을 추월할 만한 속도를 내기가 어려웠다. 괜히 추월하다가 애매하게 가족들 사이에 끼게 되면 더 뻘쭘할 테니 그냥 이 가족의 일원이라도 된 듯 맨 뒤에 바짝 붙어서 내려오는 수밖에 없었다.


10분가량을 그렇게 하나 되어(?) 내려오면서 나는 3번 미끄러져서 엉덩방아를 찧었고 "아이들은 괜찮으세요?" 라며 나를 걱정해 줬다. 아이들은 본인들도 계속 넘어지면서 틈틈이 맨 뒤에 오는 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듯 쳐다보면서 내려갔다. 아이들이 보호해 주는 듯한 그 눈길이 너무 사랑스럽고 따뜻해서 이미 떡국 한 사발 들이킨 것 같은 훈훈함이 온몸으로 퍼졌다.


그렇게 귀여운 보호 속에 무사히 내려왔다. 해는 보지 못했지만 시작이 좋구나.

올해도 혼자가 좋다고만 외치지 말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많이 가져야지.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 의지가 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모두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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