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여자4람, 혼자4는 이야기
난 아무리 감기에 걸려도 병원은 고사하고 약국에서 파는 종합감기약조차 먹지 않는다.
엄마가 챙겨주면 마지못해 먹으면서도 꼭 한 마디씩 얄미운 소리를 했다.
"엄마 감기는 약 먹으면 2주고 안 먹으면 보름 고생하는 거야. 의미 없어."
회사에서 공짜로 놔주는 독감주사도 '어차피 예방접종이 모든 독감을 예방해 주는 것도 아닌데 아프게 뭐 하러 맞냐'라고 잘난척하며 호기롭게 안 맞았는데 올해는 감기 때문에 병원을 2번이나 갔다.
고작 감기로 병원을 가다니 늙는다는 게 이런 건가 싶다.
사실 기침, 콧물, 인후통이야 아파도 견딜 만 한데 온몸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몸살은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었다. 회사에서 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는데도 의자에 닿는 엉덩이, 키보드에 올려놓은 손 등 살이 닿는 모든 부분이 아파 차라리 서있다가 결국 조퇴를 하고 병원에 갔다.
'병원에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고?'
1시간을 기다리고 1분 진료 후에 주사를 맞고 약을 지어 집으로 왔다. 약을 먹고 누웠는데 바늘 침대 위에 있는 것처럼 몸을 뒤척일 때마다 콕콕 쑤시는 듯한 통증도 따라와 나도 모르게 신음이 나왔다.
'아픈 게 이렇게 힘든 거구나. 혼자 살면 아플 때가 제일 서럽다더니 이걸 얘기한 거구나.'
하는 생각들을 하며...
그리고 정확히 20일 후에 똑같은 몸살로 똑같은 병원에 갔고 똑같이 1시간을 기다려서 1분간 똑같은 말을 듣고 나와 집에서 똑같이 누워서 똑같은 생각을 했다.
그래도 두 번다 하루 만에 몸살기가 없어진 걸 보면 용한 의원인 거 같긴 하다. 하도 약을 안 먹어서 약발이 잘 받는 건가?
연말에 동생을 만나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렇게 감기로 아팠던 게 처음이고 혼자 살면서 아픈 게 서럽다는 말을 몸소 실감했다며 신나게 무용담을 늘어놓고 있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동생이 한마디 했다.
"언니 가족들이 있으면 뭐 해. 같이 있는데도 내가 아픈 거 아무도 신경 안 써주는 게 더 서러워."
동생 역시 몸살이 심해 딸내미한테 쓰레기 좀 버리고 와달라고 부탁했더니 쓰레기봉투를 양손에 들고 현관문 앞에서 서서 "문을 어떻게 열라는 거야!" 하면서 짜증짜증을 내면서 소리를 지르더란다.
이 눔의 기집애가.. 나도 순간 울컥했으니 엄마 입장에서는 얼마나 섭섭했을까.
군중 속의 고독 같은 걸까? 하긴 내가 이렇게 아픈데 다들 내 옆에서 낄낄 거리며 관심도 안 가져주면 속상할 거 같긴 하다.
혼자서 끙끙 앓는 것과 내가 아픈데 가족들이 아픈 사람 취급 안 해주는 것 어떤 게 더 서러울까?
동생에게는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내 생각엔 혼자서 아픈 게 더 힘든 것 같다. 119에 전화할 정신도 없이 아프면 고독사 할 수도 있는 거잖아! 가족들이 섭섭하게 하면 화라도 낼 수 있는데 아프다고 티 내고 화풀이할 대상도 없는 것은 왠지 더 쓸쓸하게 느껴진다.
정희원 노년내과 교수가 수명을 결정하는 8가지를 얘기한 적이 있다.
1. 균형 잡힌 식사
2. 충분한 수면
3. 과도하지 않은 스트레스
4. 약물 중독을 피하는 것
5. 적절한 사회관계망
6. 금연
7. 절주
8. 충분한 신체 활동 및 적정 체중 유지
물론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평범하고 재미없는 습관들을 유지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이번 기회를 통해 내가 더 이상 자연치유력만 믿고 버틸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혼자 산다는 것은 온전히 나를 위해 시간을 쓸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는 대신 책임 또한 내가 다 짊어져야 하는 것. 고독사 하지 않고 건강하게 나이 들기 위해 유튜브 볼 시간에 운동이란 것도 하고 건강에 좀 더 신경 써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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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래도 퇴근 후 떡볶이에 맥주는 참을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