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여자4람, 혼자4는 이야기
지난 회차 글은 도서관이었는데 이번엔 박물관이다.
도서관은 나름 공부하는 느낌이니 혼자 놀기 가장 적합한 곳은 박물관이 아닐까?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은 진리이다. 그래서 난 박물관에 가면 전시 해설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싶은데 일행이 있다면 쉽지 않다. 보통 1시간 정도 되는 해설시간을 같이 듣자고 하면 상대방이 별로 안 좋아할까 봐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개별로 구경을 해도 각자의 페이스와 관심도에 따라 관람속도가 다르다 보니 정신 차려보면 혼자서 동떨어져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이러니 박물관은 꼭 누구와 함께 가기보단 혼자서 속 편하게 해설 듣고 관심 가는 것만 구경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다.
서울에는 다양한 주제로 퀄리티 좋은 박물관이 많이 있다. 거기다 대부분 공짜다. 안 갈 이유가 있나?
아.. 하나 있구나. 휴일인데도 머리를 감아야 한다는 것.
이런 약간의 귀찮음만 이기면 알뜰하고 생산적으로 휴일을 보낼 수 있다. 서울사람들 진심 부럽다. ㅠㅠ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서울의 박물관과 근처 산책 코스를 함께 소개해 보려고 한다. 혼자 식당에서 밥 먹는 게 어색하다면 유부초밥이랑 간식거리 챙겨 들고 고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이다. 다른 거 다 제치고 그냥 반가사유상이 있는 사유의 방 한 곳만 봐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용하고 어두운 방안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1500년 전의 조각상을 보고 있으면 잠시 다른 세계에 온 기분이 든다. 나의 짧은 문장력으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오묘하면서도 차분해지고 한 것도 없이 갑자기 깨달음을 얻은 듯한 느낌이랄까. 이 방을 나가자마자 다시 별 볼일 없는 내가 될 것 같아서 계속 이곳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예전엔 국보 78호 반가사유상과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을 번갈아 전시했었는데 요즘엔 사유의 방이라고 해서 두 반가사유상을 함께 전시해 놓았다. 누가 기획하신 건지 너무 감사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너무 커서 다 돌아보면 다리가 아프니 갈 때마다 하나씩 관심 가는 주제별로 해설시간에 맞춰서 가는 걸 추천한다. 해설 1시간 정도 듣고 사유의 방 보고 용산가족공원 돌면서 콧바람 쐬다가 적당한 벤치에 앉아 도시락 까먹으면 딱 좋은 하루 코스가 될 거다.
광화문에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대한제국 시절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간석기, 뗀석기부터 나오는 일반적인 박물관은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연관된 전시물을 보고 재미를 느끼는 반면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은 내가 본 적 있는 물건, 우리 할머니, 엄마에게 직접 들었던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어 좀 더 이야깃거리가 많고 친숙한 느낌이다. 내가 좋아하는 서태지의 음반도 전시되어 있고 우리 집에 있는 세월호 기념 팔찌도 보이고 2039년 청년의 날에 개봉될 BTS의 타임캡슐까지도 전시되어 있다.
얼마 전 오랜만에 방문했는데 4층은 아예 체험관으로 바뀌어있었다. 입장할 때 내가 몇 년생인지 랜덤으로 카드를 받고 들어가는데 내 카드의 연도에 유행한 노래에 맞춰 리듬게임을 하는 콘셉트도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들만 대상으로 하는 체험이 아니어서 좋았다. 평소 어디 가면 죄다 아이들용 체험뿐이라 만나는 직원마다 "혼자 오셨어요?"라는 말을 계속 듣게 된다.
어제도 날씨가 너무 좋아서 혼자 청주 동물원이랑 청주랜드에 다녀왔다. 같은 형식으로 카드를 받아서 체험을 하는 곳이길래 카드를 받으려고 했더니 애들용이라고 자유롭게 관림 하시면 된다고 하더라. 하든 말든 일단은 줘야 들어가서 기웃거리기라도 하지. 성인들도 체험 좋아한다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8층엔 옥상정원이 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곳에 올라가면 경복궁 전경을 바라볼 수 있다. 뻥 뚫린 공뷰라니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
박물관과 함께 구경하기 좋은 산책코스로는 경복궁도 좋지만 왠지 박물관 돌고 경복궁 한 바퀴 다 돌면 다리가 아플 것 같으니 삼청동을 추천한다. 골목골목 구경하다가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하면서 쉬면 딱 좋지 않을까 싶다.
서울의 역사를 테마로 한 박물관이다. 박물관 앞마당에 조형물들이 많아 사진 찍을 곳도 많고 여름엔 바닥분수까지 운영해서 주말에 애들 데리고 어딘가 가야 하는 부모들에게 가성비 좋은 놀이터로도 인기가 많은 곳이다. 박물관 마당을 시민들에게 내어주는 친근한 이미지이고 전시물 역시 70-80년대 서울 거리의 모습이나 주거공간을 재현하는 등 사진 찍기 좋은 진입장벽 낮은 박물관이다.
박물관을 좋아한다면서 역사를 탐구하고 선현들의 지혜를 배우고자 하는 게 아니라 순 체험하고 사진 찍는 것만 얘기하고 있다는 게 순간 부끄럽지만 가성비 좋은 데이트 장소로 박물관 만한 게 없다.
특히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도시모형영상관이 인기인데 우리 집은 어디쯤 되나 여기저기 찾아보는 재미가 있고 시간대별로 미디어아트도 상영된다. 미디어아트에 큰 기대는 하지 마시고.
박물관 구경 후에는 바로 옆이 경희궁으로 간다. 5대 궁 중에서 유일하게 입장료도 없고 관람객도 제일 적으니 궁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그리고 체력적 여유가 된다면 근처 돈의문 박물관 마을에서 스탬프투어까지 성공한다면 뿌듯한 하루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