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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이 쏘아올린 얼굴들 6

화동담론과 시대의 징검돌

by 박동민 Dec 29. 2023

○ 화동담론과 시대의 징검돌 


  코로나19로 1년 연기된 도쿄올림픽이 2021년 8월 8일 우여곡절 끝에 막을 내렸습니다. 예전에는 금메달을 못 따면 국민께 죄송하다며 눈물을 보이는 선수들이 있었는데 이번은 메달 획득 여부나 순위에 집착하지 않고 밝게 웃으며 인터뷰 하는 선수들이 많아 좋습니다. 결과를 떠나 큰 무대에서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노력과 과정 그 자체를 응원하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도쿄올림픽은 개최 전부터 취소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렸습니다.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가 열도에 퍼지고 일본 정부의 방역은 역부족입니다. 개최국은 개최국대로, 올림픽위원회는 위원회대로 취소시 감당해야할 천문학적인 경제적 손실 때문에 선수와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대회를 밀어붙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1964년 부흥의 도쿄올림픽을 2020년에 재현하겠다는 일본의 노림수는 실패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 한비자의 망국론입니다. 한비자가 밝힌 나라의 쇠망을 알려주는 징표가 있습니다. (···) 여섯째, 다른 나라와의 동맹이나 원조를 믿고 이웃 나라를 가볍게 보며, 강대한 나라의 도움만 믿고 가까운 이웃 나라를 핍박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192쪽, 밑줄은 인용자)


 『담론』을 읽다가 밑줄을 긋습니다. 다른 나라(미국)와의 동맹을 믿고 이웃 나라(대한민국)를 깔보고 협박하는 나라.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배상판결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 표시로 무역전쟁을 선포하고 우리나라를 겁박한 아베 전 총리를 비롯한 극우세력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우리나라가 아닙니다. 수출규제의 핵심품목인 액체불화수소는 국산화에 성공했습니다. 그동안 일본에 의존도가 컸던 소재, 부품, 장비 부문에서도 우리 기업들은 자체경쟁력과 거래선 다양화로 위험을 분산했고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일본의 야망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1945년 패망 이후 1970, 1980년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1990년대 거품이 빠지면서 장기침체에 빠져 있습니다. 평화헌법을 부정하고 메이지 유신 이후 제국주의 국가시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 극우세력이 나라를 장악했습니다. 집권 자민당을 대체할 야당 및 재야세력, 시민사회 영역의 토대가 약해 정권교체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회구조입니다.


▶ ‘화동(和同)담론’은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 소인동이불화(小人同而不和)를 줄여서 붙인 이름입니다. (···) 화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관용과 공존의 논리입니다. 반면에 동은 지배와 흡수합병의 논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화와 동은 철저하게 대(對)를 이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읽는 것이 옳습니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78-79쪽)


▶ 화동담론을 재조명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의 통일 담론으로서도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나는 통일(統一)을 ‘通一’이라고 쓰기도 합니다. 평화 정착, 교류 협력만 확실하게 다져 나간다면 통일 과업의 90%가 달성된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84쪽)


  시대마다 과제가 있습니다. 고려와 조선시대는 거란·여진·몽골·왜구 같은 외세 침략의 극복, 근대 개항기에는 신분제도 철폐, 일제강점기에는 광복, 해방 이후에는 민주화. 21세기 우리의 숙제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입니다. 북미 하노이 회담의 결렬과 대북제재의 지속, 트럼프의 재선실패, 바이든 정부의 대외안보라인의 인선, 코로나19의 확산 등으로 남북관계는 평창올림픽 이전의 교착상태로 되돌아갔습니다. 과거 김영삼-클린턴, 김대중-부시, 노무현-부시, 이명박-오바마, 박근혜-오바마, 트럼프-문재인처럼 양국의 진보·보수의 엇갈린 파트너쉽 체제에서 남북관계 진전을 이루는 것은 기적에 가깝습니다. ‘자주와 개방이라는 두 개의 축’을 바탕으로 정전협정과 평화체제 정착이라는 과제를 남·북·미·중·일·러의 고차방정식 속에서 풀어야 하는데 그 이론적 기초가 화동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도1호선이 출발하는 목포, 당신의 글씨가 새겨진 묘석이 있는 봉하마을, 촛불 혁명의 요람 광화문 광장, 전태일·김용균·노회찬이 묻힌 마석 모란 공원. 그 점들을 이으면 근현대사의 달력이 나타납니다. 2.8. 3.1. 3.15. 4.3. 4.11. 4.16. 4.19. 5.16. 5.18. 6.10. 6.25. 8.15. 10.4. 10.26. 12.12. 냇물을 건너는 마지막 징검돌이 놓여 개성, 평양, 원산, 함흥까지 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9월에도 국경일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간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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