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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Nov 01. 2024

개구리가 우물 밖을 나갔을 때

첫 번째, 일본 오사카

 내겐 너무나 어려웠던 스무 살. 

어디로 걸어야 하는지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세상으로 던져진 것만 같았다. 마치 투포환처럼.

 그렇게 막막히 일 년을 보내던 때에 친척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일본여행 가볼래?"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해외여행 경험이 전무했고 비행기야 제주도 갈 때만 타봤었던 때였다. 그런 나에게 가까운 일본조차도 내가 갈 수 있는 해외라고 인식이 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나는 내가 직접 하는 클릭 한 번에 비행기표를 살 수 있다는 게 굉장히 낯선 일이었다. 아, 쓰고 보니 불을 발견한 인류 같은 느낌.

 나와 4살 차이나는 언니는 어린 시절부터 나의 우상이었다. 예쁘고 인형 같은 언니는 늘 옷을 멋지게 입었고, 야무졌고, 영어교과서를 술술 읽어내는 똑똑이였다. 언니는 항상 어린 내게 유행하는 가요나, 종이인형 놀이 같은 걸 알려주곤 했다. (내가 제일 첫 번째로 좋아했던 가수가 장나라 님이었던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그래서 가족 모임이나 명절이 끝나고 집에 갈 때면 나는 차에서 엉엉 울었더랬다. 


 아무튼 시간이 흘러 성인이라는 타이틀을 단 내게  여행을 권유하는 언니는 또 다른 세상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혼자서 예약하고 돈만 걷으면 더 수월했을 법도 한데, 언니는 나에게 비행기표를 비교해서 살 수 있는 사이트를 알려주고, 처음부터 끝까지 옆에서 직접 하게 했다. 우리는 카페에서 오사카 여행 가이드북을 한 권 펴놓고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짰다.


 그렇게 해서 나는 우물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분명히 말해두건대, 여기가 지금의 나를 만든 시작점이었다. 기억하자. 삶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기회에 길머리가 바뀐다.



 어린 시절, 나는 지독한 책벌레였다. 초등학교땐 쉬는 시간도 모질라 하교 후 도서관으로 가 책장사이에 앉아 여념 없이 책을 읽다가 사서선생님이 부르면 선생님과 같이 퇴근하곤 했다. 집으로 와서 못다 읽어 빌려온 책을 읽다 보면 곧 엄마아빠가 퇴근했던 일상이었다.


 사서 선생님이 나를 찾아 데리고 운동장을 나가는 그 많은 나날 중에 어떤 대화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땅거미가 지는 운동장을 우리 둘만 나간다는 게 뭔가 기분이 좋았던 기억만이 있을 뿐이다. 아마도 따듯했던 선생님과 오늘은 어떤 책을 읽었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을까?





 이런 나는 충분히 예상 가듯이 말이 없고, 혼자가 편했다. 물론 겁도 많았다. 지금도 조금씩은 남아있긴 한데, 새로운 것들을 매우 경계하는 편이다. 그런 내가 지금은 낯선 환경에 남겨지면 적응력이 정말 빠르다. 어디서든 한두 번 눈치껏 쓱 훑고 나면 파악이 빨라 아르바이트할 때 요 능력을 참 잘도 써먹었다. 흐흐

 또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난 원하는 것은 무조건 해야만 하는 사람이 되고야 말아서 또래 친구들이 안정을 찾아가는 지금, 끝까지 하고 싶은 걸 하겠다며 버티는 중이다.



 나에겐 10시간도 더 걸리는 나라만큼이나 먼 거리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가까운 나라. 막상 그 땅을 밟고 나서 뭐야 별거 아니잖아?라는 생각에 나 스스로가 꽤나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어린 시절 친척이 미국으로 유학을 갈 때 몰래 나도 가고 싶어 컴퓨터로 비행기표를 검색해 봤다가, 그때의 나로선 들어본 적도 없는 어마어마한 금액에 (누군가 지식인에서 400만 원이라고 말해줬다.) 눈앞에 갖다 놨던 저금통을 고이 제자리에 모셔다 놓은 기억이 있다. 그런 내게 직접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코 묻은 돈으로 다른 나라를 갈 수 있다는 건 엄청난 매력덩어리였다. 물론 갈 때마다 엄마아빠가 용돈을 넣어주시긴 하셨지만, 내가 번 돈으로 비행기표 예약부터 캐리어 가득 기념품을 사 오는 것까지 오로지 '나의 여행'이 되어주는 것은 꽤나 많은 것을 사유할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주었다. 이건 사족이지만, 여행을 위해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는 것은 멘털 강화에 꽤나 효과적이라는 사실. 다양한 아르바이트와 다양한 손님들의 만남으로 쌓인 빅데이터는 어쩔 수가 없으니!




 세상은 넓고, 나를 모르고 내 언어를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은 굉장히 짜릿한 일이다. 예쁜 곳을 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비싼 곳에 묵고 하는 것들도 갖가지의 추억을 향유할 수 있게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닌 고차원적으로 '나'를 외부에서 타인처럼 인식하는 것은 더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해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사실 지금 와서 내가 하는 말이지만, 여행을 다니며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을 찾으라면 동서양 가리지 않고 다 찾을 수 있다. 어디는 명동 같고, 어디는 성수 같다. 또 바다는 동해도 맑고, 관악산의 단풍도 아름답다. 여행은 대체 무엇일까? 인간이기에 당연히 타국에서 안정과 동질감이 느껴지는 부분에 본능적으로 먼저 반응하는 것이 맞겠지.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끝이 아니라, 거기서부터 시작되어 다른 점을 찾는 것이 여행이라고 나는 나의 여행을 그렇게 정의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는데, 어차피 돈 들여 여행을 온 마당에 불평불만보단 바꿀 수 있는 내 시선을 바꾸는 게 훨씬 똑똑한 일 아니겠는가-! 이런 요상한 논리를 주장하며 여행하다 보니 이젠 습관이 그렇게 아주 들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나의 마인드는 앞으로도 여행 중에 꽤나 요리조리 잘 써먹고 다녔다는 사실.

 (어쩌면 자아만 철옹성처럼 비대해졌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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