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 Nov 01. 2024

사람이 가지는 그 사람만의 분위기

두 번째, 일본 후쿠오카

 이전에 말했다시피, 나는 매우 새로운 것을 경계하는 편이다. 그런데 훈련받는 강아지처럼 긍정적인 기억이 계속 심어지다 보면 경계선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두 번째로 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 역시 언니와 함께였는데, 언니의 친구와 가게 되었다. 언니에게 괜찮다고는 했지만 그건 약간의 허세였다. 나는 쫌 허세가 있다. 인정. 머릿속에 오만가지 상상을 다했다. 언니 친구가 날 안 좋아하면 어쩌지 같은 어처구니없는 걱정을! 


 늦게 출발해 오사카에서 만난 언니 친구는 너무너무 착했다. 걱정한 내가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내 나이에, 그때의 나와 같은 동생을 만나면 콧물 흘리는 애기마냥 귀여울 듯 싶... 암튼 우린 급속도로 친해졌고 우리 셋은 여기저기 쏘다니며 누볐다. 언니들 덕에 적립한 새로운 마인드, 새로운 사람은 날 귀여워한다!

 여행 내내 부둥부둥 귀여움을 받으니 신나서 당시 유행했던 밈들을 따라 하며 재롱을 부렸다. 그니까.... 선명히 기억이 약간 부끄럽긴 한데, 그렉 님이 보고싶다를 부르는 걸 모창 하기도 하고 드라마 하이킥에서 호박고구마를 외치는 대화장면을 1인극으로 연기하기도 했다. 심지어 꺄르르 웃음이 터지면 뿌듯함에 연속으로 세 번도 함..

 우리는 밤에 자기 전 각자의 캐리어를 정리하다가 각각의 짐들이 결국 그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세 캐리어를 모아놓고 보니, 누구의 짐은 알록달록했고, 누군가는 차분했으며, 나는 온통 어두운 색뿐이었다. 나는 스스로가 어두운 색의 옷을 즐겨 입는지 전혀 몰랐는데 꽤나 사소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는 기회였달까. 난 검은색의 옷들을 입는 것을 좋아하는가? 

 결론은 No 였다.

 일본의 택시를 탔던 것도 생각이 난다. 나는 이때까지 일본의 택시가 자동문인줄 몰랐으므로, 문을 열려고 시도했다가 자동문에 감탄하며 차에 탔다. 그러나 택시 기사님은 살짝 짜증을 내며 우리에게 일본은 하이클래스라며 한국은 로우클래스라고 말했다. 덧붙여 중국은 애니멀이라고...

 이게 대체 무슨 개소리지?


 어버버 하던 나와 언니는 소곤거리며 계획을 짰다. 


 지금 우리가 따진다 한들, 차를 이상한 곳으로 몰고 가면 어쩔 거야? 미리 일본어 한마디를 외워놓고 내리기 직전 말하는 거야!

 난 즉시 번역기에 멍청이를 일본어로 번역을 돌려놓은 뒤 입을 굳게 다물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그때였다. 덜컹거리며 차가 방지턱을 넘자 내 엄지 손가락은 화면을 눌러버렸고 차 안에 아주 큰 소리로 번역기 속 멍청이 글자가 일본어로 울려 퍼졌다. 하필.... 내 핸드폰의 음향크기는 아주 그냥 고맙게도 최대 상태였던 것이다!

 다행히도 기사님은 반응이 없었다. 아니 있었다고 해야 하나, 한참을 떠들어대던 그의 입은 일순간에 다물어졌고 우리는 정적과 걱정 속에 목적지에서 무사히 내릴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난 일본 택시 기사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게 되었다가, 몇몇의 친절한 기사님을 만나고 여행을 거듭하면서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어느 나라에나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집단을 대표하는 얼굴이 된다. 그 집단은 나라이기도하고, 학교이기도, 직업이기도, 가족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친절해야 한다. 모두 돌고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에. 

 온천에서 만난 사장님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 비행기 시간을 잘못 본 탓에 우리는 마지막 밤에 사장님께 급하게 연락했다. 내일 아침은 먹지 못하니 차리지 않으셔도 된다고. 우리는 새벽 5시에 핸드폰 불빛을 켜고 산속에 있는 료칸에서부터 정류장까지 걸어가야만 했다.

 첫차를 무사히 타고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소리치며 달려와 버스에 탔다. 료칸 사장님이었다. 나와 언니는 퇴근하시는 줄 알고 (ㅋㅋ) 반갑게 여기서 다 만난다고 인사를 했는데 사장님이 우리 손에 급하게 봉투 두 개를 쥐어주시곤 인사하고 내리셨다.

 순식간에 휘리릭 사라지신 사장님께 얼떨결에 감사인사를 외치고 열어보니, 샌드위치와 커피였다. 



 이 새벽에 열린 곳이 없는데 급히 떠나는 손님을 위해 아침을 챙겨주려 달려오신 거였다. 서비스 정신이고 뭐고, 난 그렇게 후쿠오카를 사랑하게 되었다. 감동의 눈물이 핑 돌았다. 여행객으로서 이렇게까지 좋은 기억을 심어주셨던 그 마음 씀씀이가 이후로도 이곳에 발길을 딛게 했다. 

 정성은 언제나, 언젠간 통한다.

 사람은 타고나는 게 반이지만, 만들어가는 것도 반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아직도 삶을 여행하고 있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분위기를 가진 사람으로 기억될까, 그들은 나에게 어떤 향기를 남겨놓고 갔을까.


 어떤 길을 선택하든 모든 각자의 몫이지만, 분명 살다 보면 알게 되는 날이 오겠지. 나라는 사람을 설명할 분위기가 어떠한 것인지, 그것이 왜 중요한 것인지를. 나는 그걸 여행을 통해 깨달았고, 아직도 배워가는 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