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폴란드 바르샤바.
헝가리에서 폴란드 바르샤바로 작은 비행기로 이동을 했는데, 얼마나 작은지 통로를 한 줄로 서서 지나가는데도 버거웠을 정도였다. 천장도 낮아서 짐을 넣어놓는 천장 캐비닛은 내 눈이 있는 위치에 내려와있었다. 승객들은 모두 한 줄로 서서 탑승하고 있었고 다들 추위와 저녁인지라 침묵 속에서 앞사람만 바라보며 멍하니 걷고 있었다.
중간열쯤 왔을까, 나는 펭귄마냥 뒤뚱뒤뚱 걷다가 결국 캐리어를 의자에 부딪혔고 반동으로 캐비닛에 머리를 부딪혔다. 아주 큰 소리를 내며. 쾅.
너무 크게 부딪혀서 순간 한 줄로 걸어가던 모두가 멈췄고 나는 어질어질해서 이마를 붙잡고 고갤 숙였다. 그러다 내 뒤에 아직 많은 사람들이 한 줄로 서있고, 내가 움직이길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미안한 마음에 뒤돌아 쏘리... 했는데 뒤에 사람들이 진짜 무슨 안무 대형마냥 옆으로 머리를 제각기 다른 각도로 숙인다음 날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내 바로 뒤에 있던 외국인이 걱정스레 말했다. Are you okay...?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고 비틀비틀 내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잠에 들었다. 하지만 글쎄, 그게 잠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기절이었을지도..
폴란드를 생각하면 뼈가 시릴듯 추웠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아 진짜 이렇게 추울 수 있다고? 내내 유럽을 여행하면서 어느 정도 추위에 익숙해졌다고 자신했지만 북쪽으로 더 오니까 상상도 못했던 추위가 펼쳐졌다. 여행 마무리단계라 많이 지치기도 해서였을까, 우리는 따듯하게 밥부터 먹자며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거리는 연말의 분위기를 한껏 머금은듯 장식되어있었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황금빛 장식에 친구와 나는 찬탄을 하며 여기 꼭 다른 세상 같아!를 외쳤고 뛰어간 우리는 그 자리에 우뚝 섰다.
페레로 로쉐.
갑자기 이 낯선 땅이 마구 친숙해지기 시작했다. 친구랑 나는 잠깐 고민했지만 친숙하니 더 좋지 뭐!하고 서로 사진을 마구 찍어댔다. 왠지 집 갈 때가 정말 가까워진 것 같았다.
완전무장을 한 채로 걸었는데 유달리 추웠던 폴란드.... 그 와중에 나는 이어폰 고무패킹이 빠져서 콧물 흘려가며 길을 뒤지고 다녔다.
결국 포기하고 밥을 먹으러 갔지만.
폴란드쪽으로 가니까 나는 영어가 너무 알아듣기 어려웠는데, 메뉴판도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우리가 그나마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메뉴는 어니언스프와 염소 덤플링이라고 생각해서 시켰다.
하하. 우리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일단 어니언스프는 우리가 생각하는 프랑스식 어니언스프가 아니었다. 엄청나게 새콤한 무언가였는데, 아무래도 양파를 삭혀서 만든 것 같았다. 나는 그래도 따듯한 무언가가 있다는 게 좋아서 후룹후룹 마셨다.
그리고 덤플링은, 덤플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가? 싶었지만 아무튼 이것도 우리가 생각한 만두는 아니었다. 이것 역시 새콤한 소가 들어있는 밀가루피가 두꺼운 만두였고, 만두보단 수제비 식감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물에 넣어서 끓여 건져낸 뒤 요거트맛이 나는 크림치즈에 찍어먹는 것이었다.
혼란스러웠다. 어느 나라를 가도 어느정도 예상한 맥락의 음식이 나왔었는데 이렇게 내가 생각한 개념과 다른 음식이 나온적이 없어서였던 것 같기도...
근데 또 난.... 이런거 잘 먹어.. 야채와 징그러운 것만 아니면 잘먹는 나. 하하 어쨌든 먹어치웠다!
새삼 내가 폴란드를 오면서 폴란드에 대해 무지한채로 온 것 같아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길을 걸었는데 여기서 또 하나의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다.
문화과학궁전 옆엔 기아 이름이 아주 크게 새겨진 높은 빌딩이 있었다!!
내 심적 거리감때문인지 여기서 유난히 동양인을 볼 수가 없고, 은근히 위축되었는데 기아 로고를 보자마자 어깨가 절로 펴졌다. 여행하면서 만나는 우리나라 기업의 이름은 그것만으로도 꽤나 든든한 마음이 되어주었다.
너무 추웠고, 짧은 일정 탓에 아무것도 못했지만
우리 역시 많이 지쳐있기 때문에 일정이 길었더라도 많은 것은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유럽 여러나라를 돌다보면 다양한 억양의 영어, 다양한 화폐단위가 눈에 뛴다.
위즈티라는 화폐. 꼭 해리포터 마법사 나라에 있을 것만 같은 단위라 생소했다.
이것역시 공항에서 먹은 음식이었는데, 나는 포크커틀렛과 어니언스프를 시켰고 이때쯤엔 이 나라의 새콤한 스프에 어느정도 매료가 되었다. 그렇게 한 걸음 가까워지나 싶었는데 말이지...?
커틀렛과 준 나이프는 다시 또 한 걸음 멀어지게 했다. 대체 이건 어떻게 먹는 건지. 나는 내가 받은 나이프가 부러진 건 줄 알고 서둘러 식기를 가져갈 수 있는 곳에 갔는데 모두 다 이 상태였다.
친구와 난 무언가 휑한 나이프를 보며 낄낄거리며 여차저차 먹었는데, 그래서인가 아직도 폴란드하면 신비로운 나라처럼 여겨진다.
끝까지 나와 밀당을 하던 폴란드. 재미가 있던 나라였다. 피곤함에 쩔어있었지만 바르샤바의 겨울은 그 자체로 멋있었다.
혹시 폴란드에서 재밌는 일이 있었던 사람이 있으면 나에게도 공유해주길. 너무 추웠던 탓에 많은 추억을 못만든게 아쉽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