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일본 오키나와
여행 시작부터 기우뚱했던 오키나와. 대학생때는 친구들이랑 여행갈 때 돈이 어디있겠나, 알뜰살뜰 아끼며 가는 거지. 우린 그때 유행했던 초저렴한 일본 항공사를 골랐다.
이때 숙소나 항공사 선택 기준은 매우 심플했다. '저렴'하기만 하면 됐다. 20대 초반의 여행이라서 가능했던 거였다. 덕분에 바퀴벌레 우글우글한 숙소에서 우비를 입고 자보기도 했고, 도마뱀과 같이 침대에서 깨본 적도, 4층 정도는 좁은 계단을 25키로의 캐리어를 들고 왔다갔다 하기도 수십번이었다.
신기하게도 그때는 정말 그런 것들이 모두 괜찮았다. 지금은 어우, 내가 더 열심히 돈을 벌게!
이 날은 비행기를 타고 츨발을 한 지 얼마 안돼서였다. 비행기가 착륙을 했다. 뭐라고 뭐라고 방송을 했는데 일본어라 우린 하나도 못알아들었다. 한국인이 반이었지만 한국어도, 영어로도 방송은 없었다. 나는 오키나와 여행이 처음이니 정말 빠르게 도착한 줄만 알았고, 왜 안내려주지? 싶었는데 같이 갔던 일행이 구글맵을 켜보고서야 알았다. 우린 후쿠오카쪽에 비상착륙을 했다는 걸.
아니 이게 뭔일이야? 해서 스튜디어스를 불러봐도 당최 영어발음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임쏘리?를 반복하던 나는 설명듣기를 포기하고 기다리면 뭔가 해결이 나겠지 싶던 그때였다.
갑자기 어떤 사람들이 우르르 타더니 카메라로 승객들을 꼼꼼하게 찍기 시작했다. 당최 뭐때문인지 모르겠는데 우릴 둘러싼 한국인들은 수근수근 갖가지 가설을 내놓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저건 열화상 카메라이며 누군가가 심각한 유행성 질병에 걸린 게 아니냐고 했고, 어떤 사람은 범죄자가 탄게 아니냐고도 했다. 누군가는 연료가 없어 비상착륙 한 것 같다고도 했다.
뭐가 됐든 공포스러웠다. 어쩐지 비행기가 엄청 흔들리더라!(?) 우리차례가 되어 우리를 꼼꼼하게 찍는데 카메라를 봐야할지, 자연스럽게 시선을 피해야할 지 모르겠는 와중에 혹시라도 범죄자를 찾는 거라면 아닌척해야하는 거 아닌가.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가리키며 뒤로 이동하는 렌즈를 쳐다봤다.
그 이후로 별 일없이 다시 출발을 했지만, 이유가 뭐였는지는 아직까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어그러진 도착 시간부터 여행의 계획이 어그러졌다는 생각에 분주히 움직였고, 그 때문에 지금까지 오키나와 첫 방문은 종종거리고 돌아다닌 기억이 크다. 이번에 부모님을 모시고 갔을 때에도 똑같이 계획을 짰는데, 여행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두번째 오키나와에서도 종종거린 기억만을 심겠구나.
놔야겠다.
물론 성격상 놓는다해도 완전히 놓지 못할 것이란 건 알지만 적어도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어차피 계획이란건 100%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걸. 엄마아빠의 걸음은 내가 걷는 속도와 다르고, 중간에 풍경 좋은 곳 있음 또 바로 가자고 할 수 없으니 시간은 지연되거나, 생각보다 단축되거나 제각각이다. 그래서 나느 이번에 가는 동안 만큼은 엄마아빠의 속도에 맞춰보자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빡셌던 여행이었으나 가족들이 여행이 끝나고 마지막밤에 덕분에 너무 즐거운 여행이었다고 말해주었을때, 나는 무언가 감이 잡힌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번 오키나와 두번째 방문 때도 나는 모든 걸 계산해놨다. 그래야 놓치는 시간들을 감잡을 수 있고 비롯되는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심지어는 여행이 끝나갈 때즈음엔 놓친게 너무 많아 자책하고 있을 정도였다. 음식점에 가서 기다린다든지, 주력 메뉴가 뭔지 리뷰를 본다든지. 음식점을 너무 한 군데에만 알아놨다든지 하는.
하지만 스쳐지나가는 정도로만 묵자고 골랐던 첫번째 숙소는 생각외로 편하고 좋았으며, 두번째 숙소는 답답하고 그다지 편하지 않았다. 한국서부터 고심해서 고른 고깃집은 서비스도, 음식도 별로였고 대기줄도 길었다. 출출하다는 소리에 둘러보다 사먹어본 무스비는 엄마가 집에와서 해먹고 싶어할만큼 맛있었고, 계획에 없었으나(사실 나는 숙소에 가서 목욕 후 책을 읽고싶은 생각이 간절했으나) 동생이 가자고 졸라서 저녁 늦게 찾아간 이자카야에서 가족들과 제일 기억에 남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놓아주고 내게 남은 것들이 더 많았다. 이전 여행의 나는 과연 무엇을 잡고 있다가 어떤 것들을 놓쳤을까?
나의 이성에서 타성을 덜어내는 것. 그게 나에게 필요하다고, 나를 조금 놓아주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 스스로를 다독였다.
여행은 즐기는 것이다. 여행이 어떤 의미인지는 개인이 정의할 몫이겠으나 기본 개념은 결국 즐기는 것 아니겠냐는 소리다. 그 시간을 사유하고, 낯선 풍경들을 향유하고, 그리고 여행에서 얻은 것들을 집으로 돌아와서도 소중히 간직한다. 우리는 모두가 함께 각자의 삶을 여행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일상 속에 있으면서도 예상치못함을 즐겨보자. 그래도 돌아보면 여행은 충분히 즐거울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