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치마와 <목화솜 피는 날>
국가적 참사는 다큐멘터리에 비해 극영화로 자주 재창작되지 않는다. 사건 왜곡에 대한 두려움, 유가족을 대하는 조심스러움, 그리고 적은 투자비용에 비해 막대한 제작비 등이 그 이유이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로부터 10년이 흐른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2019년 이종언 감독의 <생일> 이후 4년만에 극영화가 2개나 등장했다. 연분홍치마의 <목화솜 피는 날>은 조현철 감독의 <너와 나>에 이어 그 중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한다.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가 우리 사회의 여러 아픔에 가까이 다가가 목소리를 높인 지 벌써 20년이다. 인권단체 연분홍치마에서 출발한 연분홍프로덕션은 24년 올해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함께 ‘세월호 참사 10주기 영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김일란 총괄프로듀서가 있다. 최현숙 18대 국회의원 후보의 선거운동 다큐멘터리 <레즈비언 정치도전기>와 성전환 남성들의 이야기가 담긴 <3xFTM> 등을 연출한 김일란 프로듀서는 지난 2004년부터 성소수자와 여성들과 연대하는 연분홍치마에서 활동해왔다. 긴 시간 동안 그는 용산참사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 <공동정범>으로 사회적 슬픔에 연대하고 이를 공유하기 위한 발걸음을 바삐 움직였다. <공동정범>을 제작 중이었을 무렵 김일란 프로듀서는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1기 위원장까지 맡으며 피해 유가족들과 꾸준히 연대했다. 이제 프로듀서로서 세월호 참사 프로젝트를 들고 극영화를 향한 도전과 함께 세상 앞에 선 그를 <성균지>에서 만나보았다.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가 올해 2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첫 영화이자 기지촌 여성 이야기인 <마마상:리멤버 미 디스 웨이>의 제작 연도가 창단 연도와 거의 맞물리는데, 처음부터 연분홍치마가 목소리를 내는 매체로 영화를 고려하신 건가요?
그랬던 건 아니에요. 2004년도에 연분홍치마라는 단체를 발족하기 전에, 2002년도부터 시작된 준비 모임이 있었어요. 그냥 당시 대학원을 이제 막 마친 학원들끼리 재미나게 활동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고민했던 거죠. 대학원 지하 세미나실, 카페 같은 곳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결국 진짜 단체 이름을 만들고 시작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원래부터 ‘우리가 영화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한 건 아니고 인권 단체, 그리고 페미니스트 단체로서 운동을 하려다 시간이 흘러 다큐멘터리를 하게 된 거죠.
영화뿐만 아니라 4년 전부터는 유튜브 채널 연분홍 TV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데요. 코믹드라마 <으랏파파> 시리즈나 구독자의 사연을 각색한 웹 드라마 <애기레즈의 고백법> 등이 함께 등장했습니다. 연분홍 TV에서 어떤 계기로 웹드라마 제작, 연출을 시작하신 건가요?
영화 말고도 시민들을 만나는 다양한 방식을 찾아보고자 유튜브 콘텐츠들을 만들어봤어요. 매체가 점점 다변화되는 만큼 그 속도나 변화의 방식에 잘 맞춰서 우리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보고자 해서 제작했는데, 제가 늘 다큐만 했다 보니 <퀴서비스>나 <으랏파파>, <애기레즈의 고백법>같은 웹드라마나 시트콤을 연출하고 싶었어요. 사실 제가 정말 진지하고 남을 웃길 줄 모르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재미를 느끼고 싶은 욕망은 되게 큰 사람이거든요.
올해는 416연대와 함께 연분홍치마의 세월호참사 10주기 영화 프로젝트를 공개하는 해였습니다. 그리고 연분홍프로덕션에서 제작한 <목화솜 피는 날>은 세월호 참사를 다룬 극영화라는 점에서 실제와 창작의 경계에 놓였다고 말할 수 있는데요. PD님은 이 경계를 어떻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나요?
딱 ‘극영화를 만들어야겠다’라는 결심을 했다기보다는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얘기해야 할지에 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 10년의 세월을 경유하면서 한국 사회가 달라진 점이나 이 참사를 오랫동안 사람들이 견뎌온 방식, 혹은 유가족들이 현재 어떻게 지내시는지와 같이 지금도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굉장히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중에서 저는 세월호 선체라는 참사 현장을 중요하게 떠올렸어요. 세월호라는 배를 어떻게 보존해야 하는지, 왜 기억해야 하는지, 또 그 현장 자체를 어떤 의미로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자연스럽게 세월호 선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원래는 극영화라는 형식을 먼저 생각한 것이 아니라 세월호 선체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해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 이야기를 할 수만 있다면 다큐가 됐든 극영화가 됐든 장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신경수 감독님과 인연이 닿아서 제안을 드렸고, 감사하게도 승낙해 주셔서 결국 극영화가 된 거죠.
극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감독과 프로듀서와 같이 만드는 사람의 의도와 시선이 크게 작용한다는 점인데요. <목화솜 피는 날>을 제작하기로 하셨을 때 어떤 부분을 선택해서 재현하고 싶으셨는지, 혹은 재현하고 싶지 않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연출자의 개인적인 아이디어나 하고 싶은 방향성이 있을 테니까 총괄 PD 기획자로서는 영화 제작에 있어서 별로 제한을 가하고 싶지 않았어요. 다만 선체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싶다는 아이디어가 처음에 있었고, 반대로 그 배가 침몰하는 순간을 재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죠. 왜냐하면 그 이미지는 지금까지 너무 많이 사용됐잖아요. 그 이미지가 참사를 대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참사의 많은 부분들을 단번에 축소하는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 이미지를 10년이 지나 지금 다시 보여준다고 했을 때 유가족들이 너무 힘들어하시겠죠.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인 거니까요. 그 배 안에서는 누군가의 생명이 꺼져가는 중이고 이건 그냥 단순한 의미의 ‘배’가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끔찍하잖아요. 그래서 그 이미지는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가이드가 있었던 것이고 나머지는 그냥 감독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신 겁니다.
영화 속 캐릭터 ‘병호’는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유가족들이나 봉사자들에게 ‘당사자가 아니면 자격이 없다’며 폭력적인 태도를 보이는데요. PD님께서2018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언급하신 '피해자다움', 즉 피해자가 선하고 순결해야 한다는 시선에서 벗어난 인물로 여겨졌습니다. 이처럼 병호와 같이 ‘당사자’라는 기준에 남들과 달리 과도하게 집착하는 인물은 어떤 역할을 대변하고 있나요?
첫 번째는 피해자들의 두려움, 공포죠. 그러니까 고통에 대해 공감 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우리는 누구라도 언제든 어떤 비극적 사건의 피해자가 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수없이 많은 비극적인 사건을 겪었음에도, 사건의 당사자가 됐을 때 그 고통을 어떻게 서로 나누어야 할지, 그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제도를 어떻게 갖추어야 하는지 우리는 아직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비극을 제대로 이야기하는 법을 여전히 우리는 알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누군가 비극을 이야기하는 순간 이 사회 안에서는 그것이 정치적이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사실 세월호 참사는 그냥 비극적인 사건이죠. 너무나 비극적인 사건인데 그것을 이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면 그 목소리에 특정한 프레임이 딱 씌워지면서 당파 정치 틀이 형성되는 것이 지금의 한국 사회잖아요. 만약 이런 비극적인 사건을 겪게 되었을 때 이 사회와 이웃은 결국 나를 외면할 거라는 공포가 분명하게 있어요. 사건을 겪는 것 자체도 힘든데 외면당할 거라는 공포도 같이 있으니까. 이런 것들이 얼마나 우리를 더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두 번째로, ‘내 고통은 아무도 이해해 주지 못해’라고 생각하는 당사자성이 병호를 통해 발현되는 것 같아요. 피해자가 당사자성을 느끼는 것은 너무 자연스럽지만, 사회는 이것을 통해 ‘피해자다움’을 또 요구하고요. 이 ‘피해자다움’안에서 피해자는 비호감이어서는 안 돼요. 예를 들자면 피해자들이 거친 언어로 욕을 하거나, 비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소위 말하는 ‘깔끔한 외모’를 가지고 있지 않을 수도 있죠.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피해자들의 언어를 더 쉽게 무시하거나 외면해요. 특히 여성들 같은 경우에는 더 단정하고 호감이 가는 외모여야 사람들이 그 얘기를 잘 들어주니까요. 이러한 고민들이 용산참사나 성폭력 피해 사건 등 여러 과정에서 저의 문제의식으로 들어섰어요. 그래서 <목화솜 피는 날>에서도 반영이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좀 복잡하죠. (웃음)
영화에서도 명확히 당사자로 보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로부터 한 발 떨어져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예를 들어, 부모에 이어 형제자매나 마을버스 기사, 세월호 인양 노동자들도 함께 등장합니다. PD님께서 긴 시간 동안 416연대와 함께하신 만큼 그동안 많은 분들을 만나셨을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짧게 지나가는 역할을 포함해서 특별히 프로듀서님의 지난 기억을 많이 끄집어낸 영화 속 인물이 있었나요?
아무래도 버스 운전기사겠죠. 그 고통을 직접 경험해서 자신의 삶이 파괴되거나 붕괴하는 것을 겪는 사람만이 당사자가 아니라 그 삶을 함께 복구하려고 하는 사람도 당사자가 될 수 있으니까요. 말 그대로 ‘피해 당사자’가 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자기 삶 안에서는 당사자로서 고통을 경험하고 있는 거잖아요.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인 유가족들이 많죠.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 전체가 당사자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도 노란 리본을 만들어 나눠주는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있고 촛불을 든 시민도 있고요. 그런 분들은 이미 자신의 삶에서 세월호 참사의 당사자인 거죠. 어떤 부분에서는 그 고통의 고유함을 이해하기 위해서 당사자냐, 비당사자냐의 경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함께 연대하기 위해서는 그 경계를 넘어서야 하잖아요. 그래서 어떤 때에 이 경계가 분명해져야 하고 어떤 때는 흐려져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이 개인의 사회적 경험에서 발현되는 것 같아요. 사회적 경험이 축적돼야 우리가 학습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사회적 경험을 계속 늘려간다는 것은 결국에는 매체를 통해 대중적 경험을 늘려가는 과정일 것이고그런 면에서 다큐멘터리든, 극영화든, 또는 웹드라마든 이런 매체를 통한 운동이 저희에게는 중요한 인권 운동이었어요. 저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그 사회적 경험을 축적해 나가는 것을 중요한 실천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고요.
많이 접할수록 사람들이 더 오래 기억하고 인식도 개선이 되니까요. 특히 저는 영화에서 다양한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 만큼 서사가 더 다각도로 비쳐서 어쩌면 경은이가 현재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PD님은 제작자로서 이 영화를 어떤 인물의 시점으로 전개하고자 하셨나요?
저는 경은이라는 인물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지금까지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들을 대변하면서 열심히 투쟁하신 분들은 사실 부모님들이었잖아요. 당연하게도 참사 당시에 형제자매분들과 생존 학생분들은 10대가 많았어요. 그래서 10년이 지난 지금은 이제 막 성인이 된 분들이 세월호 참사를 재해석해서 세월호 참사 운동의 새로운 당사자,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당시에 생존 학생분들이 한 70여 분 정도 되는데 그분들의 운동이 지금 시점에서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부모님을 중심으로 한 운동과 형제자매를 중심으로 한 운동은 좀 다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떠오르고요. 그래서 10년이 지난 시기에 새롭게 참사의 비극을 이야기하는 주체들은 생존자들, 형제자매들이 아닐까 싶은 거예요. 저희의 세월호 참사 10주기 프로젝트 중 <드라이브 97>이라고 하는 종편이 바로 그러한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세 가지 안부> 안에 있는 영화죠.
네 맞아요.
저도 그 영화를 너무 보고 싶어서 열심히 찾아봤는데 단체대관밖에 못 하더라고요.
공동체 상영을 하면서 학생분들이 많이 토론하면 좋을 것 같은 영화가 <드라이브 97>이거든요. 세월호 사건은 생존자분들이 딱 10대, 열여덟 살에 겪은 일이죠. 이 일의 기억이나 상처가 사라지지 않은 채 이제야 조금씩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데 사실 친구를 두고 나왔다는 경험은 아직 스스로 소화하지 못했을 것이잖아요. 그래서 이제 생존자들이 자기의 경험을 이야기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생존자들이 말할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살아남았다고 비난하는 게 아니라, 사회가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 자체가 중요할 테니까요.
현재 극장가 부진과 더불어 정부의 영화예술지원사업도 끊기면서 여전히 한국 영화계에는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연분홍프로덕션은 어떠한 돌파구를 찾고 계신가요?
사실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지금은 모두가 함께 위기론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큰 영화이면 큰 영화인 대로, 작은 영화면 작은 영화인 대로 어려우니까요. 또 매체적으로도 아주 예전에는 다큐멘터리라고 말하면 TV에 <인간극장>같은 형태를 떠올렸는데, 지금은 넷플릭스의 범죄 다큐멘터리를많이들 떠올리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만들려고 하는 <공동정범> 같은 다큐멘터리들을 사람들이 거의 상상하지 못해서 더 고민인 부분이 많아요. 혹시<공동정범>을 보셨나요? 이해가 잘 되시던가요?
저는 감독님의 긴 인터뷰를 먼저 본 후에 영화를 봐서 이해가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약간은 감정적인 편이라 다큐멘터리를 잘 못 보거든요. 사실 <공동정범>도 큰 용기를 내서 본 거였어요.
다큐멘터리를 못 보는 분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지루해서라기보다는 가공되지 않은 것을 보는 것이 감정적으로 쿠션 없이 직접 확 와 닿는다거나,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실재하는 이야기니까 마음 놓고 보기 어려워 하세요. 이렇게 날것을 볼 때 어려움을 호소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데 저는 그런 부분도 좀 흥미롭다고 느껴져요. 왜냐하면, 평소에는 수없이 많은 유튜브의 날것들을 다 보잖아요. 그럼에도 다큐멘터리를 통해 현실을 마주하는 것은 어려워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보면 ‘이 차이는 뭘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현실이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었을 때 관객분들이 어렵게 느끼시는 것일지, 또는 어떻게 날것으로 재현했을 때 이것을 유희로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인지 저한테는 꽤 고민인 지점이에요.
추후에 <목화솜 피는 날>과 같이 연분홍프로덕션에서 극영화로 만들고 싶은 소재가 있으신가요?
지금은 없어요. 그렇지만 연분홍치마는 계속해서 세월호뿐만 아니라 다른 다양한 극 영화를 만들지 않을까요? 다큐멘터리이든, 극영화든 그 무엇이든지요. 저는 지금 성소수자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데 아마 바로 다음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서 올해 안으로는 만나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 <목화솜 피는 날>은 지난 5월 22일 시민들의 후원으로 공식 개봉했다.‘목화솜’이라는 단어에는 열매를 맺고 터져나오는 목화나무의 목화솜처럼 세월호 희생자의 삶이 다시 새롭게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이 영화는 처음으로 스크린을 통해 세월호 선체 내부를 보여주며, 세월호에 아직 남아있는 우리 삶의 응어리를 풀어낸다. 해당 작품은 연분홍프로덕션의 세월호 참사 프로젝트 영화 중 하나인 다큐멘터리 <바람의 세월>과 함께 현재 네이버 시리즈온, 왓챠 등 OTT 플랫폼을 통해 시청할 수 있다. 또한, 인터뷰에서 언급된 옴니버스 3부작 <세 가지 안부>의 경우 공동체 상영 신청을 통해 스크린에서 관람할 수 있다. 어쩌면 경은이의 가족, 친구, 혹은 미래의 스치는 인연이었을 우리가 영화 속 여전히 남아있는 기억을 느끼길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