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도 잔여 음이 남듯이...

4탄. 나의 취미는?

by 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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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의 인연을 통한 나다움을 끌어낼 수 있었던 시간.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실패라는 순간을 그냥 지나쳐온 것은 아니다. 물론 그 실패할 때의 기억은 좋은 추억이 된 것은 아닐 테지만, 그냥 아무런 의미 없이 지나쳤을 수도 있었을 시간이 ‘실패’라는 호칭을 달면서 그렇게 내 인생이라는 음악 속에 하나의 잔잔한 여음처럼 남아있었다.



오라고 재촉하지도 않았고 내가 달아보겠다고 억지로 가지고 와서 붙인 것도 아니다. 무엇인가 도전하고 이행했던 일 뒤에 경험치 상승과 함께 따라온 친구나 다름없다.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는 그 ‘실패*’라는 친구가 마냥 보기도 싫고 밉기만 했는데, 이젠 그 친구 덕분에 인생 저울 속 경험의 무게가 무거워지기 시작하면서 든든한 나의 버팀목이 되었다.


*실패 失敗; 일을 잘못하여 뜻한 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그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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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 ‘실패’를 경험해보지 못했다면, 지금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그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내 인생의 경로는 어떻게 바뀌고 나는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갔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매일 매 순간 선택의 경로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발돋움으로 이어지는 인생이니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이나 이치에 맞지 않은 선택을 했다면 지금 조금은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쁘다고 모두 나쁜 것도 아니요, 좋다고 모두 좋은 것도 아닌 각자의 시선과 관념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위치에 따른 해석은 달라진다. 그러므로 지금 힘든 상황에 부닥쳐 있더라도 그 상황을 어떻게 분석하고 판단하며 받아들이는 방법에 따라 지금 그 상태도 꼭 나쁘지만은 않을 수 있다. 그 현상을 통하여 모르던 부분을 발견할 수 있고, 또 다른 처지를 생각해 볼 수도 있으며, 더 좋은 판단을 실행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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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탄. 나의 취미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무의미한 것은 없다.’라는 의미는 음악 덕분에 알게 되었다. 눈을 감고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집중할 때면 나도 모르게 ‘힐링’이라는 시간으로 바뀌면서 내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해주는 묘한 매력을 가진 친구다. 이 친구 덕분에 내가 지치고 힘들 때면 다가와서 토닥토닥 어깨를 쓰다듬어 주면서 나를 달래준다. 늘 내 곁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받는 위로와는 또 다른 마력을 가지고 있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그래서였을까? ‘음악은 듣고만 있어도 이렇게 마음이 편해지는데 소중한 이들에게 선물해 줄 수 있는 음악을 내가 직접 만들어 봐도 괜찮겠다.’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기 시작했다. 나처럼 외로움에 허덕일 때나 정적이 흐르는 방 안에서 무엇인가 빈 곳을 채워줄 또 다른 친구를 옆에 놔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 부분을 음악으로도 조금은 감싸 안길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울적하거나 마음의 상처가 잘 아물지 않을 때면 잔잔한 음악을 찾게 되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속상한 일이 생기더라도 잠시 아무런 생각 없이 음악 속으로 퐁당 빠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음악 속 선율과 리듬에 중독되고 만다. 그 뒤에는 음악을 듣기 전의 감정을 잠시 잊어버린 채 다시 미소를 찾을 수 있겠다는 다짐이라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에너지가 채워지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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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음악 감상’도 하나의 힐링 타임이다. 그러면 명상과 연관이 되지 않을까? 잠시 눈을 감고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니 말이다. 이 시간에도 나만의 시간을 할애하여 나의 마음을 달래주는 시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또, ‘사색’이라고 했던가? 아무것도 모를 때는 ‘왜 사색하지?’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이젠 그 ‘사색’의 의미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오로지 내 마음을 살펴보고, 깊은 생각에 잠겨서 다방면으로 시선을 옮겨 볼 수 있는 시간 속 찰나의 순간에 빠져보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음악을 듣거나 사색에 빠진다고 하여도 진정 그 잔여 음을 사라지게 할 수 있는 명약은 없다. 제일 효과적인 방법은 나 자신을 잘 알고 내 마음의 상태를 잘 인식하고 있을 때만 시원하게 털어버릴 수 있는 내적 기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그것조차 발견하기도 어려워서 계속 쌓아두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게 쌓아둔 잔여 음들을 들어보면 정말 정해진 조성이나 박자도 없이 자유로운 의지로 만들어진 서양 현대음악 장르 중 무조성 음악이나 다름없다. 귀에서 가로막는 불협화음과 읽기조차 어려운 악보 표기 등 난해한 선율 소리에 나 자신도 모르게 그냥 손으로 귀를 막아버리고 만다. 유명하고 잘 알려진 음악은 들을 때마다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고 다시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지루하지 않은데 말이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싫고 미웠던 순간이나 작고 커다란 실수를 내 인생 속 증거인 듯 쌓아만 놓는다면 언젠가 그 무게에 못 이겨서 눈물을 호소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당장, 그 무게에 지쳐버린 나를 위하여 필요 없는 잔여 음은 깨끗이 지워나가 보는 것이 좋다. 음악 속 잔여 음처럼 계속 이어질 것 같지만 모이고 또 모이면 불협화음으로 변질할 가능성이 높아서, 내가 만들어 놓은 잔여 음에 대해 한 번 더 점검해 본다고 생각하고 잠시 경청해 본 뒤에 필요 없는 음들은 과감히 치워버리도록 노력해 보자.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그것을 지운다고 확실히 지워지는 건 아마 없을 것 같다. 하얀 옷에 묻은 김칫국물 자국도 아무리 애써서 지워봐도 잘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마음에 새겨져 있던 잔여 음들도 낡거나 삭아버린 곰팡이처럼 내 마음속 어딘가 자리 잡고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으니, 그 붙은 부분은 얼마나 아팠을까. 멍이나 피가 나고 진물이 흐르듯 그렇게 방치만 하고 있었다면 그 고통은 말로 표현 못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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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지금 당장 그 필요 없는 잔여 음을 깨끗하게 지워버리는 것도 나에 대한 예의이자 신의이다. 나를 아껴주고 위해주는 마음이 되살아나도록 인도해 줄 수 있는 사람도 나요, 나를 안아주고 쓰다듬어 줄 수 있는 사람도 나이기 때문에,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원동력을 발휘해야 가능하다. 아무리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막무가내로 내팽개쳐 놓고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인가? 그래도 바라볼 줄 안다면 다행이지만, 바라보기는커녕 한눈팔면서 무시해버리거나 건들면 더 아플까 봐 피해버리게 되는 게 일반적이다.



두렵다고 피하지 말자.

힘이 없다고 자책하지 말자.

이룰 수 없다고 단념하지 말자.



그걸 이룰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며, 이루면서 제일 행복해할 사람도 오로지 나 자신이다. 나를 위해 조금 더 나에게 다가갈 수 있는 내가 되어 보자.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해본 적이 있었다. 내 인생에는 정해진 규칙도 없고, 나를 인도해 줄 표지판도 없으며, 내가 살아가야 할 방법도 알려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렇게 무지한 세상에 태어난 것이 훨씬 괜찮은 게 아닐까?’라고 말이다. 이유는 그렇게 무방비로 노출된 인생 속에서 나에게 맞는 규율도 찾게 되고, 내가 좋아하거나 하고 싶어 하던 분야에 도전해 보면서, 나다운 내 인생을 내가 손수 그려가면서 살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큰 선물을 받은 듯한 전율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시각으로 그 상황을 판단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른 해석이 달라지는 하나의 ‘신기한 인생 소설책’ 같이 보이니 말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정말 인생은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음악처럼 너무도 많은 음표와 기호가 포함되어 있더라도 자신이 원하고, 자신이 감상하고 싶은 음악 선율과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서 자신이 겪고 있는 그 난관을 그냥 지나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 순간 나에게 힘들게 만들었던 고난이지만 그 고통을 빨리 놓아버릴 줄 아는 당당함도 당신은 이미 들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만 보고 걷다 보면 앞에 있던 큰 나무나 높은 가로등에 부딪힐 수도 있다. 하지만 앞과 옆 그리고 위를 보고 걸으면 내가 가고 있는 길에 무엇이 있고, 어떤 것이 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으며, 상황은 어떠한지 조금은 감지할 수 있어서 잘 피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곤 무탈하게 별일 없다는 듯 가던 길은 차츰차츰 원하는 방향으로 멈추거나 머무르지 않고 유유히 걸어갈 수 있다.



길을 걷는 것도 내 발로 걸어가고, 그 가는 길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도 나의 선택과 실천에 따른 분위기로 꾸며지며, 혼자서 걸어갈 수도 있지만, 누구랑 함께 가고 싶은지 고민해 볼 수 있도록 여유롭게 유유자적한 인생길을 만들 수 있다. ‘나’ 자신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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