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끝을 볼 수 있을까?
시작은 있었는데 끝은 없었다. 시도는 했지만 결과는 없었다. 중도포기를 밥 먹듯 했다. 내 인생은 한 편의 미완성 교향곡과도 같았다. 웅장한 서곡으로 힘차게 시작했지만, 절정으로 치닫기 전에 늘 멈춰 섰다. 끝을 보지 못한 멜로디는 내 삶 곳곳에 흩어져 불협화음처럼 울렸다.
오늘 아침, '더 좋은 문장을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을 끄집어냈다. 늘 그렇듯 아무 페이지나 펼쳐 필사를 시작했다. 한 페이지, 두 페이지. 오늘은 왠지 모르게 펜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쓴 후에야 책을 덮었다. 그리고는 내가 쓴 페이지들을 훑어봤다. 듬성듬성 채워진 글씨들 사이로, 아직 텅 비어 있는 흰 여백들이 눈에 들어왔다. 책을 구매한 지 100일 정도 되었지만, 300페이지가 넘는 책에서 내가 채운 부분은 고작 절반 정도였다.(필사페이지는 100쪽이다) 하루에 한 페이지씩 꾸준히 썼다면 벌써 끝났을 시간,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시작은 했지만, 끝낸 적은 있었던가?'
그때부터 내 머릿속에는 끝을 보지 못한 수많은 기억 조각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마치 미로에 갇힌 사람이 출구를 찾지 위해 지나왔던 길을 되짚어보듯, 나는 과거 발자국을 더듬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 나는 공부하겠다는 열정 하나로 교재를 수도 없이 사들였다. 특히 방학이 되면, 새 학년 교재와 비싼 전과, 심지어는 외국에서 직수입했다는 원서까지 책상 위에 쌓였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공부하겠다는 아들 말에 기꺼이 지갑을 여셨다. 새 책에서 나는 잉크 냄새는 내게 새로운 시작이라는 환희를 안겨줬다. 그러나 그 기쁨은 늘 짧았다. 첫 페이지의 깔끔한 글씨는 이삼십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사라지기 일쑤였다. 어떤 책은 3분의 2쯤 풀어놓고, 또 어떤 책은 절반쯤 손대다 멈췄다. 어떤 책은 표지에 내 이름만 적힌 채, 한 장도 펼쳐보지 못한 채로 방치되기도 했다.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공으로 하는 운동이라면 뭐든지 좋아했다. 내 방 한쪽 벽에는 축구공, 농구공, 야구공이 굴러다녔다. TV에서 본 유명 선수들 기술을 따라 하려 애썼다. 그러나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승부에서 참패할 때마다 나는 심한 좌절감에 휩싸였다. 공을 차고 던지는 즐거움보다 패배에 대한 분노와 고통이 더 크게 다가왔다. 결국, 하나둘씩 공들은 방 한쪽 구석에 쌓여 먼지만 뒤집어쓰게 되었다. 승차는 쉬웠지만, 하차는 너무나도 쉬웠던 미완의 시대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습관은 변하지 않았다. 호기심은 여전히 많았고, 시도하고 도전하고 싶은 욕구는 늘 뜨겁게 끓어올랐다. 그러나 결과는 대부분 포기, 아니면 참패였다.
아르바이트도 그랬다. 용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과 그 일이 궁금하다는 호기심에 여러 종류 아르바이트를 전진했다. 음식집에서는 친절한 미소를 연습했지만, 새벽 일찍 일어나야 하는 고됨에 지쳐 그만뒀다. PC방에서는 게임을 실컷 할 수 있겠다는 기대에 부풀었지만, 반복되는 청소와 손님 응대에 흥미를 잃었다. 주유소에서는 기름 냄새와 더위에 질려 한 달을 채우지 못했다. '재미가 없다', '일이 힘들다', '돈이 안 된다'라는 이유로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환승하며 짧은 경험만 쌓아갔다. 물론 그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스스로 위안했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는 늘 '끝까지 해낸 것이 있긴 한가?'라는 의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30대까지 내 인생은 그렇게 이어졌다. 10년 넘게 몸담았던 회사에서도 결국 퇴사라는 하차를 택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스스로의 의지로 포기한 것은, 사회생활마저 중도포기한 것과 다름없었다. 마치 종착역을 앞두고 급하게 내린 기차처럼, 나는 또다시 멈춰 섰다. 하지만 끝난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 이직이라는 또 다른 시작을 했으니까.
40대가 된 지금, 나는 아직 중도포기한 것은 없다. 여전히 흥미로운 일들이 눈에 들어오고,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끓어오르는 것을 보면, 내 안의 열정은 아직 완전히 식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오랜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도 수많은 고민과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제 그만할까? 포기할까?'
'이쯤 했으면 된 거 아냐?'
그럴 때마다 내 발목을 붙잡는 질문이 있다. 그건 마치 오래된 친구의 목소리처럼,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진다.
'끝낸 적이 없던 네가 이번에도 포기하려고?'
이 질문은 내게 포기를 종용하는 대신, 오히려 잊고 있던 힘을 불어넣어 준다. 그 질문 덕분에 나는 계속 시작을 이어가고 있다. 포기를 미루고,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밥 먹듯이 했던 중도포기, 시도만 남았던 결과, 시작만 보였던 끝. 이젠 이 모든 것이 끝을 향해 가는 과정이었기를 바라본다. 내 미완성 교향곡이 마침내 해피 엔딩이라는 마지막 장을 연주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내겐 끝까지 해내는 용기보다, 끝없이 다시 시작하는 용기가 더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오늘 내가 쓴 필사의 마지막 페이지는 아직 멀었지만, 나는 펜을 다시 쥐었다. 이번에는 끝을 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