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는 용감하고, 젊음은 무모하다
1학기가 끝나자마자 고민도 없이 없이 휴학계를 냈다. 이유는 단 하나, 공부가 너무 하기 싫었다. 학점이고 뭐고 다 귀찮았다. 도서관엔 자리만 잡아놓고 수업은 듣는 둥 마는 둥. 낮엔 놀고 밤엔 술에 절었다. 노래방, PC방, 당구장. 유혹의 손길은 어찌나 달콤하던지.
어느 날, 눈앞에 산처럼 쌓인 건 과제와 시험이었다. 나는 힘없이 무너졌다가도, 다음날이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망나니처럼 또 놀았다. 하루 24시간 중 정상인 시간은 30분이 채 안 됐다. 자는 시간을 빼면, 거의 매일을 비정상적으로 살았다.
참 대단하다. 저질 체력 주제에 어떻게 그렇게 미쳐 날뛰었는지. 젊음이란 이름으로 온갖 무책임을 정당화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래선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들었다는 건, 나도 내가 이상하단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렇게 알바를 시작하게 되었고, 장소는 한 여름의 해운대 백사장이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그늘 한 점 없는 모랫길을 양손에 닭 세 마리를 들고 걸었다. 아니, 뛰었다. 그날 기온 33도. 백사장 모래는 발바닥을 데울 기세로 달아올랐고, 신발을 신자니 모래가 들어와 찝찝하고, 걷기 힘들었다. 벗자니 발이 익을 판이었다.
치킨은 해수욕장 건너편 허름한 공터에서 튀겼다. 사장님은 허가를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좁디좁은 공간에서 종일 닭을 튀겨댔다. 나와 친구는 주머니 속 쌈짓돈으로 마리당 3,500원에 샀다. (2000년대 초반이었으니 당시 치킨 한 마리 판매가격이 1만 초반대였다. 12,000원에서 13,000원 사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너는 왼쪽, 나는 오른쪽. 다 팔고 중앙에서 만나자!”
첫날, 30분쯤 지났을까?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니 다 팔았나?”
친구는 벌써 다 팔았단다. 벌써 두 번째 치킨을 사러 갈 거라고 한다. 기가 막혔다. 나는 한 마리도 못 팔았는데. 한 시간 정도 걸려서 2마리는 팔고 1마리가 남았다. 파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뜨거운 백사장 위를 쉬지 않고 걸어 다니면서 “치킨 사세요 치킨!” 외치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빨리 파는 거지...?' 결국 남은 1마리는 가격을 깎아서 팔았다. 깎아도 남았다. 3,500원에 산 치킨 한 마리를 15,000원에 파니 12,000원에 팔아도 8,500원이 남았다. 재료비 3,500원, 내 노동비를 투자하는 알바. 나머지는 오롯이 나의 판매기술로 매출을 결정짓는 셈이다.
‘
친구는 계속해서 잘 팔았다. 하긴, 그는 평소에도 워낙 긍정적이고 넘치는 에너지의 소유자였다. 이게 이렇게 도움이 되는구나. 그날 나는 처음으로 느꼈다.
처음엔 열정적으로 덤벼들었다. 큰소리를 외치며 씩씩하게 걸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상도 체력도 점점 썩어 들어갔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치킨인 데다 파는 사람이 인상을 찡그리며 진정성을 보이질 않으니 누가 지갑을 꺼내들까. 너무 쉽게 생각하고 덤벼든 게 패착이었을까? 아니면 나와 맞지 않는 일이어서였을까? 사람들이 이상하게 나를 피했던 건 내 외모가 ’위생 불량‘이어서였을까? 흘러가는 시간은 내 머릿속에서 우울한 새드엔딩 영화를 막 찍어댔다.
첫날, 내가 한 마리 파는 동안 친구는 5마리를 팔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는 더 벌어졌다. 나중에는 내가 치킨을 파는 것보다 친구가 몇 마리나 더 많이 파는지가 궁금해졌다. 남 잘 되는 꼴 못 본다고. 악한 나의 본능이 그동안 잠자고 있었구나. 내가 치킨을 못 파니까 친구도 못 팔기를 바랐던 걸지도 모른다.
하루가 끝날 무렵, 몸도 마음도 지쳐 쓰러졌다. 치킨을 많이 팔았다면 마음은 천국을 오고 갔겠지. 싱글벙글한 친구는 묻지 않아도 많이 팔았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묻지도 않았다. 그가 부러웠다.
일주일 동안 해운대로 출근했다. 백사장은 예쁘지 않았다. 햇볕은 잔인했고, 모래는 무심했고, 바다는 아주 멀어 보였다. 걸을 때마다 발이 빠지는 모래는, 마치 내 인생을 계속해서 발목 잡는 기분이었다. 내가 생각한 알바는 좀 더... 뭐랄까. 쉬우면서 보람 있는 일이었길 기대한 지도 모르겠다. 현실은 달랐다. 닭을 들고 백사장을 헤매며, 닭보다 내가 더 팔리고 있었다. 혼신의 힘으로 ’이거 진짜 맛있어요~!‘를 외치고 나면, 뺨을 때리는 건 따가운 햇볕이 아니라 내 자존심이었다.
나는 일주일 만에 포기했다. 친구는 계속했다. 심지어 방송도 타더라. (6시 내 고향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백사장에서 열심히 치킨 팔던 게 눈에 띄었나 보다. 대단한 놈... 넌 뭘 해도 잘할 거야!) 누군가 사람 팔자 타고난다고 했다. 지금도 장사를 한다. 코로나를 힘들게 보내고 다시 재정비를 하고 있지만 그간 점포를 몇 개 더 내고 열심히 살았다. 암만 봐도 장사꾼 체질이다. (이런 부류는 꼭 성공한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 나는 뭘 하고 있을까? 여러분의 상상대로다. 직장인이 됐다. 에어컨 나오는 사무실에서, 가끔 모니터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면, 백사장에서 닭 들고 서있던 내가 생각난다. 그때 든 생각은 '공부가 제일 쉽다'였다. 확실한건, 정말 정말 정말 공부는... 백사장에서 치킨 파는 것보다 훨씬 낫다. 에어컨 앞에서 펜을 잡는 건, 축복이다. 명심하시라.
그걸 그땐 왜 몰랐을까. 아마 젊었기 때문일 거다. 바보는 용감하지만, 젊음은 무모했다.
누군가는 여름을 도서관에서 보냈고, 누군가는 여름을 백사장에서 치킨을 팔며 보냈다. 그 기억은 어느 여름날 튀겨진 닭처럼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